Tuesday, October 28, 2014

안녕, 준.

나는 키보드를 좋아한다. 국민학생 때 키보드는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 같은 것이었다. 키보드는 필기구와 같다고 믿어왔고, 그래서 나에게 맞는 멋진 키보드는 고르는 일은 피천득의 만년필 감별과 같은 품위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도 나와 같았다. 그래서 감명받은 키보드를 그에게 부쳐주었고, 그도 자신의 감명을 같은 방법으로 나에게 전달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 일했지만, 그는 타국 낯선 도시에서 근무하였기에 우리는 아주 가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함께 마신 커피가 더 많을 것이다. 그와 나는 많은 나이 차가 있었지만, 친구 같은 분위기에 웃으며 가볍고 흔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 갔다 - 가령 안드로이드가 업데이트 되면서 미친듯한 연사가 가능해 졌다는 사실을 접하며, 아이폰도 iOS 7이 되면서 달라졌다는 실증을 한다든지.

그는 자신의 진로와 선택의 문제가 생겼을 때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의 조언이 그의 인생을 값지게 만들지는 못 하겠지만, 그가 복잡한 머리 속을 말로 풀어낼 대상이 나였다는 것에 참 고마웠다. 우리는 이런 대화를 흔한 주제로 만들었고, 그는 곧 귀국할 계획이라고 했다, 일이 잘 풀린다면.

오늘은 아침부터 유난히 되는 일이 없었다. 어제도 그랬다. 무언가 할 일이 잔뜩 있는데 거드름을 피우는 듯 한 내가 못 마땅하기도 했다. 시험기간에 꼭 해야 할 것만 같은 책상정리처럼 느지막한 오후부터 이 키보드 저 키보드를 꺼내어 내 손가락 끝이 기억하는 감각과 내 머리가 기억하는 감각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두 기억이 가장 근접한, 그의 키보드를 책상 위에 두었다.

보통의 월요일이 다 그렇지만, 오늘도 보통의 다른 요일보다 뭔가 잘 못 된 기분이 들었다. 신호등은 항상 내 앞에서 바뀌었고, 미친듯이 대가리부터 들이미는 버스들과 트럭들에 적당히 화도 났다. 조금 늦게 일어난 탓에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유료도로는 돈 값을 못 했고, 회사 주차장에 좋은 자리는 커녕 내 차 하나 적당히 둘 곳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매니저와의 미팅에 늦게 되었고, 예상과 다름없이 좋은 소식은 하나 없었다. 아무래도 나의 겨울은 길고 몹시 힘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이, 질 것이 뻔한 경쟁에 윗분들 욕심으로 제안서를 준비해야 하는 허망함이 내 머리를 점령했다.

거의 모두가 퇴근한 시각, 밖은 이미 어두워 졌고 회의는 방향을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되게 하려 한다 하여 될 수도 없는 것에 인생의 며칠을 낭비해야 하는 우리 모두는 어두웠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그는 이제 서른을 넘기고 조금 살았다. 너무 착했던 그는 나에게 좀 다부지게 조금 독하게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다. 대체로 성실했고, 대부분 웃는 모습이었다. 전화를 하고 있어도 표정이 보이는, 문자 메시지에 마음 상태가 느껴지는 그런 순수한 청년이었다. 그는 올해가 지나면 귀국 하겠노라 말했다. 그래서 술 잔 아래 고기 굽자고 했다.

그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가, 오늘 아침 낯선 도시에서 차 사고로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의 말투에서 나쁜 소식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와 친했냐는 말에 그의 불행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충격받지 말고 잘 들어라는 말에 그에게 너무 큰 불행이 닥친 건 아닐까? 먼저 걱정했다. 하지만, 내가 직전에 한 걱정은 그 범위가 너무도 좁아서 대비가 되지 못 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몇 초 뜸을 들이고 말했다. 그가 죽었다고 했다. 그의 죽음을 알리는 한 문장을 듣고는 현기증이 느껴졌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경위를 설명해 주었던 것 같은데, 나는 같은 문장 같은 단어로 여러 번 같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의 고향이 어디이고 부모님은 어디 사신다고.

한 시간 즈음 뒤, 그 도시에 사는 다른 이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들어서 기억하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했다. 그리고 전화받은 사람에게 전후 이야기를 들었다.

집으로 오는 길은 길었다. 서너번 흐느낌 없는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난 속도를 줄여야 했지만, 차를 멈출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와 함께 일했던 시간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았던 대전의 한 거리가 이어붙힌 필름처럼 계속 뇌리를 돌고 돌았다.

집에 도착할 무렵, 내 친구 하나는 신해철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몇 시간 전,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난 2014년 10월 27일을 세상 많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굿바이, 준.

Sunday, October 26, 2014

2014.10.25 準PO4 NC 3:11 LG, 잠실

흡사 1차전의 재방송을 보는 듯 했다. 약간씩 어긋난 듯 비슷한 4차전은 이상한 예감처럼 그리고 1차전처럼 끝나버렸고, NC 다이노스의 가을 이야기는 끝이 났다.

1차전의 이재학-웨버는 웨버-이재학으로 만들어졌고, 3차전에 눈부셨던 원종현-이민호는 처참하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두 명의 베테랑 투수, 손민한과 이혜천이 묵묵히 남아 있었던 아웃 카운트들을 쌓아갔다. 그리고 우리의 가을 이야기는 끝이 났다.


선취점은 곧 승리이다 - 라는 공식에 선수들이 너무 집착한 것일까? 모두 안절부절하던 모습은 결국 LG의 득점 순간에 매우 흔들렸다. 김태군의 포효도 사라졌고, 불안했지만 제 몫을 하기 위해 힘을 주던 마운드도 붕괴되었다. 몇 번의 찬스는 허무하게 끝이 났고, 모두 차가운 웃음으로 덕아웃으로 향했다.

준PO는 누가 더 못 하냐?에 대한 싸움이었다. 모두 제 기량을 뽐내지 못 하였으며, 특히, NC 다이노스의 최대 장점이었던 선발 투수의 우위와 발로 만들어가는 야구를 전혀 보여주지 못 했다. 하지만, NC 다이노스를 무어라 할 수는 없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패자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었고, 세상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NC 다이노스의 2014년은 화려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순위표에서 1위를 기록도 하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4위 내 스스로를 랭크시켰다. 긴 부진 속에서도 차근차근 할 일을 하여 좌절하지 않았으며, 그 속에서 만들어낸 크나큰 성과는 한국 야구의 역사를 새로 쓰게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팬들에게 감동을 전해 주었다.


그래서, 짧게 끝난 ‘가을 이야기’는 멋진 이야기였다. 우리는 언제나 이기는 ‘강팀’을 원했던 건 아니다. 언제나 NC 다이노스 다운 경기를 하는 그런 모습을 원했다. 그리고 NC 다이노스는 응답했다.

go Dinos! We’re NC Dinos!

(사진출처: NC 다이노스 홈패이지)

Saturday, October 25, 2014

2014.10.24 準PO3 NC 4:3 LG, 잠실

3루와 홈 배이스 사이 90 피트, 그 사이를 뛴 3명의 주자(LG)는 결국 홈으로 들어오지 못 했다. 그래서 NC 다이노스는 이겼다. 세상의 모든 운이 LG에게 있었는데, 오늘부터는 그렇지 않았나보다. 이번 경기는 누가 더 잘 하느냐?의 문제였다기 보다는 누가 더 못하는가?에 대한 결과였다. 거의 모든 이닝에 선두 타자가 출루한 LG는 홈으로 들어오지 못 했고, 이것을 허용한 찰리는 1자책 승리 투수가 되는 기현상이 있었다.


김종호의 수비는 경기의 긴장감을 끝까지 이어가게 만들었고, 타석에서의 침착함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영리한 주루 플래이는 이번 경기의 우위를 점령하는데 탁월할 역할을 했다. 나성범도 제 역할 이상을 했고, 이호준도 테임즈도 무엇을 해야할 지 알고 있었다. 특히 이종욱 부상으로 교체투입된 권희동과 홈을 지켜내고 타점을 올린 김태군도 빛난 경기였다.


결과적으로 LG 트윈스가 NC 다이노스보다 조급했고, 집중하지 못 했다. 2차전의 승부처에서 테임즈를 막고 나성범을 지워버린 김용의는 이 번 경기에 NC 다이노스의 수호천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NC 다이노스는 이겼고, 다음 경기까지 시리즈 승부를 이어갔다.

어쨌거나, 이겼다.

Thursday, October 23, 2014

2014.10.22 準PO2 LG 4:2 NC, 마산

세상의 모든 기운은 LG 트윈스에게 가 있었다. 어떻게 치든 공은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관중석에서 멈추기도 하였고, NC 다이노스는 역전할 수 있는 기회 기회 마다 잘 못 한 것도 없는데 잘 못 한 것처럼 결과가 나왔다. 난 박민우의 포구실패(9회초)가 LG의 본해드 플래이를 득점으로 승화시킨 순간보다, 테임즈의 멋진 타구가 루상의 나성범까지 잡아버린 더블플래이(4회말)가 되어버린 것이 더 안타까웠다. 테임즈는 핼맷을 벗어던졌지만, 난 TV를 잡아 던지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운은 LG 트윈스에게 가 버린 것 같다. 그리고 더 이상 남은 운이 없기에 NC 다이노스는 순순히 패배를 받아들여야 할 것만 같았다.

이종욱 나성범의 자리 교환으로 생긴 불안은 이종욱 스스로가 불식시켰다. 그는 실점을 막는 수퍼세이버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 그리고 1할 타자 포수 이태원의 멋진 적시타가 있었다. 테임즈는 홈런도 쳤고, 이호준도 출루했고, 나성범도 쳤다. 마운드도 괜찮았고, 타선도 이 정도면 괜찮았다. 다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2패이다. 금요일부터 잠실에서 경기가 있다. 2010년 김경문의 두산이 2패를 안고 3승을 달성하여 시리즈를 승리로 마감했던 기억이 있다. (상대는 로이스터의 롯데) 우리는 그 때 기억을 끄집어 내어 내일을 응원해야 겠다.

go Dinos! we’re NC Dinos.

(사진: NC 다이노스 홈패이지)

Sunday, October 19, 2014

2014.10.19 準PO1 LG 13:4 NC, 마산

이재학은 1차전의 운명을 일찍이 결정지으려 했다. 하지만, 감독은 1회초가 끝나기도 전에 그를 내리고 웨버를 올림으로써 이재학의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를 꺾으려 했다. 하지만, 웨버는 그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를 받아들임으로써 더 이상의 노력은 헛됨이라 말하였다.


그리고 이민호가 있었으며 노장 이혜천이 있었다. 이혜천의 별명은 ‘핵’이 들어가는 이름이었고,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알려주었다. 그렇다. 마운드가 LG에게 첫 승을 바쳤다.

난 웨버가 어떻게 되든 길게 길게 던져서 투수의 소모가 없었으면 했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이렇게 저렇게 이어가다가 손민한까지 나오게 되었다. 너무 많은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이종욱과 나성범의 자리 바꿈은 내일부터 취소해야 할 것 같다. 나성범도 실책을 기록하고 이종욱도 그랬다. 나성범은 공을 보며 뛰어오는 순간순간이 불안했고, 이종욱은 우익수 때의 힘으로 공을 던져 3루에서 여정을 마쳤어야 할 공을 LG 덕아웃까지 배달했다.

언제나 그렇듯, 필요할 때 터지지 않고, 찬스와는 거리있는 ‘나만의 홈런’을 자랑하는 이호준, 오늘도 그랬다. 난 선발 라인업에 이호준 대신, 권희동과 김종호가 번갈아가며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예상치 않았던 마운드 운영에서도 LG는 당황하지 않았으며, 흔들리지도 않았다. 모든 부분에서 LG 트윈스의 승리였다.

김경문 감독은 두산 시절 포스트시즌에서 롯데를 만나 두번이나 시리즈의 반전을 이룬 경험이 있다. 그 기적적인 짜릿함을 이제 기대해야 할 듯 하다. 내일은 비가 온다던데, 어찌 되었든, 공룡들에게 좋은 영향이었으면 좋겠다.

(사진: NC 다이노스 공식 홈패이지)

Friday, October 17, 2014

직업

직업이라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참 오래동안 생각했다. 학생 때 읽게 된 교과서에서는 자아실현의 장이라고 했고, 한 선생님은 사회에 대한 공헌이라고 했다. 이 질문을 아버지에게 던졌을 때에는 기억에 남을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 했다.

어떤 직장에 다니느냐, 어떤 직종에서 어떤 직책 직급으로 일하느냐가 중요하겠다 믿은 적도 있다. 내 명함 위에 등장하는 회사이름이 마치 나를 대변할 것만 같은 느낌, 그랬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이 오랜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러한 마음을 가질 리 만무하여 보인다.

직업이라는 건 그저 밥 벌이의 방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도 사로잡혀 보고, 인간사회의 알 수 없는 규약같은 것이어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가늠할 수 없는 테두리 밖에 있는 문제가 아닐까? 라고도 생각해 봤다.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를 읽어보아도,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보아도, 옛서양의 길드, 중동의 키부츠를 살펴 보아도 나에게 좋은 생각을 전해주지 못 하였다.

하지만, 꾸역꾸역 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절대 조건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성취 - 자아실현 -  사회공헌 - 윤택한 삶의 시작 이 모든 건 그 이후에 엮일 수도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매일 아침 저녁 긴 거리를 회유하는 이유가 사실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냥 주어진 몫에 충실해야만 할 것 같은, 그저 그런 이유. 그래서 사람답게 보일려는 무리의식. 그것을 초월하는 의미는 아직 찾지 못 했다.

그렇다면,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수(數)라도 즐거우면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