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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une 17, 2016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Warcraft: the Beginning (2016)

원작이 있는 영화가 꼭 원작을 따를 필요는 없다. 영화는 원작을 모르는 관객도 상대해야 하고, 특히나 원작이 매우 방대하고 복잡하며 팬들 조차 해석에 따른 의견이 분분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극장에서 상영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적당히 잘라내고 중요 사건을 부각시켜 극적인 재미를 배가 시키는 것이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는 것이 또 다른 버전을 탄생시키는 - 그러니까, 재창조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관람하는 입장에서도.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이런 관점에서도 완전히 망한 영화이다. '워크래프트 팬들은 만족하겠지만…'이라고 누군가는 평론에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열렬한 팬인 나는 차원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실망했다.

이것은 영화이고, 앞서 말한 것처럼 각색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단 원작이라고 불러야 하는 ‘워크래프트: 오크 對 휴먼’부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드레노어의 전쟁군주’까지의 게임 스토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팬의 입장에서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속에 넣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게임은 게임이고, 영화는 영화이니까. 물론 소설도 있지만, 게임을 이끌거나 그 뒷 이야기를 다듬는 역할이니까...



그래도,
워크래프트 세계관의 절대적인 악의 축 역할을 하는 '간악한' 굴단이 너무 얕게 나온 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드'와 '얼라이언스'의 성립에 대한 설명도 없이 너무 빨리 그 설정을 가져다 쓴 것은 실수에 가까웠다 - 보통의 관객은 '오크'에 익숙해 지려 하는데 난데 없는 '호드'의 등장에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미국식 영화에서 흔하게 나오는 '엄청난 일을 겪다가 한가해 지면 센티멘탈해져서 자신의 과거사를 묻지도 않았는데 쏟아내는 장면'도 빠지지 않았다. 왜 항상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 앉아 그러는지.
특히나 이야기 전반을 이어가는 중심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가로나 하프오크'를 선택한 것은 과연 괜찮은 선택인가?에 대해서는 논란거리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녀의 역할을 탄생 비하를 뜯어 고치면서 까지(특히, 자식까지 낳게 된 그녀의 파트너인 메디브를 은유적인 방식으로 아버지로 바꾼 것 그리고 하프오크가 드레나이 어머니와 오크 아버지가 아닌 오크 어머니와 인간 아버지로 설정한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 '인간'과 '호드'의 가교 역할로 부여할 필요가 있었는가? 아마도 제작자나 작가나 감독은 언어가 다른 두 종족간의 통역과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이 들어나는 친근함을 이끌어 내는데 '가로나'라는 캐릭터를 활용 – 그렇게 하면 많은 고민을 해소할 수 있다 생각해서 그런 설정을 했으리라. 어쨌든 '가로나'가 '레인 국왕'을 죽이는 것은 결과적으로 원작과 같은 결론이라는 것은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살인은 모두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점도. (원터 솔저가 아니라, 가로나였어! 스타크! 아... 바리안? 아! 아니구나, 미안)


그런데,
‘스랄’의 본명, ‘고엘’을 아버지, 듀로탄이 지어준다고? (영화를 기준으로 하면) 홀홀 단신 서구의 어느 신화처럼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떠내려가 어느 인간 손에 길러지다 나중에 이름을 얻는데, 그 이름이 아주 우연히도 죽기 직전 아버지 듀로탄의 작명과 같다고? 아 이러지는 맙시다. 그냥 원작 설정처럼 이름없는 오크로 자라는 것이 더 좋다. 굳이 듀로탄의 아들이 고엘이라고 알려주지 않아도 되었다. 팬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보통의 관객은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니까.
다음 편 영화(가 제작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에서 스랄의 어머니이자 듀로탄의 아내인 드라카가 도주 중에 얼라이언스의 공용어를 신속히 배워 쉬지 않고 질주하는 동안 지필묵을 구해 ‘이 아이의 이름은 고엘입니다’라고 적어 바구니에 넣는 설정 따위가 들어가면 영원히 그 영화를 저주할 것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멋진 영상미와 잘 짜여진 이야기 박진감 넘치는 액션으로 채워졌다면 이런 불만 따위는 뒤로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딱 세가지로 추려 낼 수 있다.
  1. 배우들의 시선처리 혹은 없는 대상을 향해 흔들어버린 어색한 검.
    배우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질 ‘안 보이는 대상’ 앞에서 대사와 시선처리에 대한 어려움을 스크린으로 그대로 옮겨 주었다. 보는 내가 다 안스러워 걱정까지 했다.
  2. 어느 곳에도 엑센트를 찍지 못한 스토리.
    이런 식의 전개는 시종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원작으로 살리지도, 멋진 각색도 못 한 상태로 영화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3. 불편한 캐릭터 소비.
    앞서 언급한 스토리와 캐릭터의 설정에 덧붙혀서 메디브도 안타까운 캐릭터이다.
    로데론이 폐허가 되지도 않았고, 아서스가 서리한의 유혹에 넘어가지도 안은 상태에서 메디브를 퇴장시킨 것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메디브 만큼 갈등을 잘 유발시킬 캐릭터도 없는데, 메디브 만큼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을 만한 캐릭터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일리단이 불타는 군단을 막으려 했는데, ‘우리’가 공대를 꾸려 검은 사원으로 쳐들어가 일리단을 ‘잡아’버리는 바람에 일을 그르치게 되었다는 식의 설정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군단’ 확장팩에서 공식화 되고(WTF), 더 이상 새로운 반찬을 낼 수 없자 이미 끓여 먹은 사골국을 다시 끓여 조미료만 잔뜩 넣은 (그 놈의 시간여행) 드레노어의 전쟁군주에서 세계관을 뒤틀고, 첫번째 와우 확장팩의 배경이 되었던 아웃랜드와 일리단의 찌질한 모습도 사실 팬들에게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블리자드 너희들이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라 생각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신세계를 열어준 ‘오리지날’과 아서스 매네실의 가슴 깊이 요동치는 스토리가 묻어있는 ‘리치왕의 분노’가 가장 견고하고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고, 그 이전에는 워크래프트 3가 그러했다. (역시 나는 아서스 에피소드를 사랑하나 보다. '아서스! 나예요, 제이나!')
이렇게 원작이 되는 워크래프트-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도 자신의 설정을 뒤틀고 뒤집는 것이 빈번해서 어쩌면 영화의 스토리가 그리 되어버린 것에 대하여 뭐라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영화 속에서 카드가가 '양변'했을 때(미개한 생물에게만 통한다고? 무한 양변 당했던 난 ... 뭐?)와 메디브가 까마귀 옷을 입고 지팡이를 들었을 때, 꼬마 바리안을 보게 되었을 때 그리고 '아 카라잔 주위가 저렇게 황폐화 되었구나'라고 설득 당했을 때는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래도 무엇보다 가장 멋진 장면은 '블리자드' 로고가 등장했을 때였고 (얼어붙은 알파벳 속에 인간형상의 무언가가 들어가 있었다니) 영화 시작과 동시에 등장한 인간과 오크의 일대일 전투는 정말 멋졌다. 'For the Horde!'라는 외침은 가슴을 충분히 요동치게 했고 'Azeroth'가 '애저라'라고 발음될 때의 어색함은 또 다른 재미였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은, 게임에 등장한 '한국어판' 지명과 호칭 그리고 그 세계관 속의 언어들을 잘 가져와 썼다는 점이다. 영화가 다 끝났음에도 어색한 번역을 찾기는 매우 힘들었다.
참, 멀록이 나오긴 했는데 봤는가? 아옳옳옳옳 울어주는 덕분이 뒷태를 볼 수 있었다.

이 영화제작으로 블리자드가 경영의 어려움에 처해 더 이상 팬들을 만족 시켜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없게 된다면 '전쟁의 서막'이 아니라, '재앙의 시작'이 될 것이다. 내가 우려한 것보다는 잘 만들어졌지만, 팬으로서도 일반관객서도 만족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잘 다룰 수 있다면 그 어떤 소재의 대작 혹은 연작 영화보다 훌륭한 그래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수도 있을 터인데, 안타깝기만 하다.

극장을 나서면서 MCU를 생각하게 되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만들어 가는 마블 스튜디오는 정말 영리한 곳이다.

(스크린 샷 출처: UPI Korea Facebook)

Thursday, August 21, 2014

가디안즈 오브 갤럭시 Guardians of the Galaxy

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많이 웃으며 봤던 영화였다. 몇몇 유머는 코드가 전혀 맞지 않아 왜 저런 대화가 오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대부분 피식피식 웃게 만들어 주었다. 익숙한 구조의 캐릭터들이 만들 수 있었던 관습적인 이야기 전개로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았다. 쓸데없이 진지하지도 않았고, 혹여 그렇게 보일 찰라에는 약간 약간 삐뚤어져 ‘우린 안 그래요’ 말해 주어서 고맙기까지 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그리고 계속 진행되면서 계속 음악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메인 요리에 적절히 곁들여진 샐러드였다. 모든 음악이 영화에 매끄럽게 스며들지 않았는데, 딱 두 곡이 나에게는 그러했다.

한 곡은 오래된 미국 TV 시리즈, Ally McBeal (앨리의 사랑 만들기) 마지막 시즌에서 ‘춤추는 갓난 아이’가 앨리의 환각을 주도할 때 나왔던 Hooked on a Feeling… 일명 ‘우가차카 우가우가’. 이 음악이 흐를 때 앨리와 그녀의 침실 그리고 조악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탄생된 ‘춤추는 갓난 아이’가  생각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또 한 곡은,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10여년 전, 한 기술 컨퍼런스에서 오프닝 음악으로 쓰였는데, 지역 가수가 무대에서 열창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가수의 가창력이나, 가사 혹은 가락이 주는 감명 때문에 뇌리에 자리 잡은 건 아니고 … 당시 엄청난 수의 엔지니어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아주 한심하다는 듯이 반응했기 때문이다.

이 두 곡을 제외하고는 노래들이 영화의 장면들에 착 감기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음악이라는 것, 노래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마치 첫사랑처럼 정형화되고 특정 시점과 사건에 밀착되어 머리 속에 혹은 가슴 속에 고정이 된다. 과거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서 무겁게 극을 이끌어낸 한 곡이 유럽에서는 희화된 TV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여서 그 쪽 관객에게 영화감상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어떤 평론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나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개인적인 일이고, 전체적인 경험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 - 그냥 재미있는 나만의 애피소드가 될 것 같다.

노래들 말고도 거슬리는 것이 있는데, (그렇다) 몇몇 번역이 그랬다. 대표적으로 ‘지구’라는 번역. 외계인들은 스타로드의 고향을 ‘테라 Terra’라고 했고(욘두는 확실히 그리 말했다), 스타로드는 ‘지구 Earth’라고 했다. 하지만, 번역은 모두 ‘지구’. 공상과학물(Sci-Fi)에서는 지구를 지칭하는 언어에 이러한 차이를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번역한 사람은 그 간극을 자신의 무지 혹은 관객에 대한 오만한 배려로 두리뭉실하게 만들었다.

지난 해 잘 만든 영화 중에 하나였던 아르고에서 ‘텔렉스’를 ‘팩스’로 번역된 부분에서, 나는 순간 몰입하고 있었던 영화의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난 실소를 터뜨렸다. 그 시절엔 팩스 따위는 없었다. 번역가는 텔렉스가 무엇인지 몰라 자기 이해를 위해 팩스라는 단어를 선택했는지, ‘관객이 텔렉스를 모를 거야 그러니까, 비슷한 기능이 있는 팩스라고 번역해야 알아 들을 거야’ 라는 오만함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지구’라는 번역도 나를 확실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외화를 보면, 번역의 문제는 항상 아쉽다.
번역은 누가 하는 것이 좋은가? 나는 ‘팬’이 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다소 어법이 어설프고 한국어 표현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외부 자문으로 쉽게 해결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팬’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위트와 언어적 장치를 단순히 사전을 뒤져 문장 형식을 완성하는 것으로는, 의도된 재미와 깊이 있는 은유를 전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시대극이면, 그 시대를 잘 아는 사람이 적당할 것이며, 특정 계층과 사회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그곳에 몸 담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심도있는 기술서를 영문학도가 번역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영화 이야기로 시작해서 음악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과 번역 이야기로 괜히 글이 난잡해졌다. 그래서 결론은, ‘가디안즈 오브 갤럭시 Guardians of the Galaxy’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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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우리 영화공급자들은 왜 없는 ‘The’를 붙히고 있는 ‘The’를 떼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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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팝이 흐르고 여기저기 느껴지는 복고의 향기에 발 맞추어 영화의 제목을 ‘은하 수호자’ 이나  ‘은하 수호단’으로 했으면 어떠했을까? ‘스타로드’는 … (아,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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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나이를 아무리 계산하여도 저 팝송들이 그에게 익숙한 건 뭔가 시간대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차분히 영화의 마지막까지 보아라, Awesome Mix Vol. 1은 그가 만든 믹스 테이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 Awsome Mix V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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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 Walkman은 확실히 내구성이 안 좋은 제품이었다. 하지만, 아직 동작하는 걸 보니, 뭔가 특별한 제품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 현실성 없이 머리를 맴돈다. 그 때 그래서 AIWA나 Panasonic이 한 단계 위 고급으로 취급되던 시절이 있었다. 난 Panasonic이 몹시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실상 난 이 3가지 중에 하나도 소유해 보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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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정성을 가지고 보아도, Awesome Mix Vol. 1이라고 적힌 테이프는 그냥 동네에서 팔던 그저 그런 카세트 테이프인데, 늘어나지도 않았다. 아무리 마음을 잡고 뚫어져라 봐도 크롬이라든지 메탈이라든지 그런 테이프는 아니었다. (욘두가 정성을 다해 은하의 신비로운 기운으로 늘어나지 않게 조치를 해 줬을 리도 없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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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아무튼, ‘가디안즈 오브 갤럭시 Guardians of the Galaxy’는 유쾌한 영화였다. 오락영화는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 라고 가볍게 웃으며 알려주는 것 같은 여유도 있는 그런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