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28, 2021

넷 로칼리티 Net Locality - 책을 읽고

나에게 최근 몇 년 산 책들은 만족도가 상당히 낮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온라인 주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어쩌면 요즈음의 새로운 정보와 어떤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내는 - 사람들이 '통찰'이라는 단어를 쓰던데 이 단어는 너무 거대해 보인다 - 독서 경험은 이제 '출판사'를 통하여 세상에 소개되는 유무형의 '책'이 아니라, 온라인 네트워크의 구석에 파편화 되어 널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넷 로칼리티' 원제, 'Net Locality'인 이 책은 표지에 걸려있는 문장처럼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에서 위치는 왜 중요한가?'라는 이제는 의미없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위치정보가 왜 중요한지 우리 모두가 알고 있고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은 그 '질문'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래서', 혹은 '앞으로', 그러니까 '우리는' 등의 (그 놈의) '통찰'을 기대했다. 아니다, 이 책은 그 다지 새롭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주제에 대한 주변 정보를 엮는데까지만 힘을 쏟았다.

간단히 말해 이 책은 대학에서 교원들에게 요구하는 '성과'를 적당히 채워 넣기에 적절한 수준의 책이었다. 그리고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를 당황하게 했던 - 우리 모두의 기억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어 끄집어 내는데 몇 초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 Geocities를 예를 든 순간 부터, 마지막 쪽에서 '20년'이라는 언급이 있는 곳까지 어느 하나 새로운 것이 없었다. 거의 모든 예시들이 대략 10년 전 혹은 그 이전의 시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검색해 보았다, 원서가 2011년에 출간되었더라. 10년이나 된, 기술을 기반한 책을 이제와 번역하여 시장에 내어놓는 건 좋은 행위라고 할 수 없다.

한국어로 번역된 이 책은 2020년 10월에 출간되었다, 그래서 기대했던 것이 있었다. (이 책을 구매한 것도 지난 겨울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하지만, 내가 판단을 잘 못 했던 것이었다. 검색엔진에 원서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넣어 봤어야 했다. 

이 책은 많은 부분에서 부족했는데, 특히 직역에 가까운 번역은 독서를 많이 방해했다. 그리고, 역자의 전문 지식도 부족해 보였는데, 'Great Firewall of China (防火長城, 만리방화벽)'을 '중국의 위대한 방화벽'이라고 번역한 지점에서는 실망스러운 책 내용 탓에 지루해 하던 난 뜻하지 않게 웃을 수 있었다.

아무쪼록, 원서의 저자나 번역서의 역자나 대학에서 요구하는 성과를 이 책으로 충분히 만족시켰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걸 출간하여 나처럼 뜻하지 않은 사람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일을 만들지 않기 바란다.

서명: 넷 로칼리티
원제: Net Locality
저자: Eric Gordan, Adriana de Souza e Silva
역자: 권상희, 차현주

Friday, March 19, 2021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6시간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렸다. 한 번의 작은 사고를 목격했고, 한 번의 큰 사고를 비켜갔다. 그리고 주차장 같은 도로를 벗어나 휴게소에 들렸다. 편의점이었다. 걷는 것과 손을 사용하는 것이 무척 힘들어 보이는 엄마가 세살은 되었을까? 하는 아이의 손을 이끌고 들어왔다. 아이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서럽게 울고 있었다. 엄마는 우유를 하나 샀고 계산대에서 빨대를 받았다. 작고 예의 없는 비닐 포장을 빨대에서 벗겨내지 못 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이는 더 크게 울었고 엄마도 곧 울것만 같았다. 계산대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 손을 뻗으며 한 걸음 다가 갔을 때 계산대에 있던 점원이 그 예의 없는 포장을 벗겨 없애 주었다. 모자는 걸어 나갔고, 엄마는 아이 아빠를 소리쳐 찾았다.
난 순간 밀려오는 슬픔이 혹은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뒤흔들었다. 행색이 엉망이었던 그 모자는 남편을 아빠를 찾아 다시 가던 길을 갔을까? 목적지는 어떤 곳일까? 왜 아이는 목이 쉬고 얼굴이 엉망이 될 때까지 울고 있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슬프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왜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있었을까? 왜 아직 그 알 수 없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을까?
차로 돌아왔을 때, 몇 시간 전 부동산 업자에게 화냈던 내가 옹졸하게 느껴졌다.

12시간 전,
오늘은 회사가 운영하는 한 공장으로 가야 하는 날이었다. 어르신들이 동네 산책을 시작할 무렵 난 잠에 들었다 일어나, 머리를 감으며 수면과 기상의 경계에서 휘청거렸다. 그렇게 집을 나서려는 순간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사는 전셋집을 사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이사 나갈 수 있느냐? 라는 문의였다. 계약기간의 겨우 절반 정도 산 나로서는 그리고 임대 시장이 개박살난 이 시절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소리내어 웃었다. 참 예의가 없었다. ‘이사비를 줄 게요' 그 이사비는 보잘것 없었다. 만약 집을 못 빼면 전출 신고라도 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보증금 중에 1/3을 먼저 드릴게요' 그것은 그들의 돈이 아니라 내 돈이고, 그저 미리 주겠다는 것이고, 전출 신고를 해 달라는 건 나의 법적인 임대계약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난 또 웃다가 욕 하지 않고 화를 냈다. ‘어차피 계약 끝나면 나가셔야 하니까, 조금 일찍 나가달라는 것 뿐이에요' 난 이 말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달려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넌 네 인생의 절반 이상 살았고 어차피 죽을 건데 지금 죽는 건 어떠냐?’ 라고 짓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구매의향이 있다는 솜털 뽀송뽀송한 부부와 부동산 업자에게 영원한 저주를 걸 수 있다면 내 남은 수명의 절반이라도 바치고 싶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알 수 없는 서러움이 가시질 않았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도 한 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래도 약속에는 늦지 말아야지’ 난 하릴없이 핸드 브레이크를 내리고 기어를 넣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도로는 더럽게 막혔고, 오디오에서 나오는 어떤 음악도 내 마음을 진정 시키지 못 했다.
‘난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18시간 전,
지난 새벽 외국어로만 가득한 회의가 몇 건 그래서 몇 시간을 걸쳐 계속되었다. 커피를 들이키며 졸음을 쫓으며 지구 저 편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질문하고 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그 시각이면 한국어도 서울어도 부산어도 어떤 말도 제대로 못 할 것인데, 외국어로 이 모든 것을 하려니 혀가 제대로 놀려지지 않았다. 회의가 끝났지만,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 하고 생각에 잠겼다. 
난 어디 즈음에 있는 걸까? 지난 몇 년 간 난 내 생명을 태워내며 일하는 느낌이다. 힘에 부친다. 이건 나의 젊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도 아니고, 내 능력에 의심이 생겨서도 아니다. 알 수 없는 근원을 가진 불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안. 그 끝없는 구렁텅이에 매 순간 굴러 떨어진다. 해가 뜰 것 같은 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지난 하루, 난 뜻하지 않게 많은 감정을 소모하며 영혼에 상처를 내었다, 아까징끼라도 바르고 대일밴드라도 붙이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낫게 된다면.

Friday, March 05, 2021

run like a robot

(생각을 멈춰, 그건 저 분들께서 대신해 주는 거야)

Monday, March 01, 2021

1998


아마도, 1998년 기억의 오차가 심하다면 1999년. 저 PC는 Cyrix 6x86이 동작하고 있었을 것이고 싸구려 디스크를 하나씩 집어 넣다보니 자리를 잃어버린 FDD는 저 모양으로 달려 있었을 것이다. 운영체제는 OS/2 Warp가 아니었나 싶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필름으로 찍어 놓아서, 정확한 촬영 시점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사진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가끔 지금이 순간이 저 만큼 시간이 흐른 뒤가 되면 어떤 기억이 남아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Tuesday, February 16, 2021

유닉스의 탄생 UNIX: A History and a Memoir

서명: 유닉스의 탄생 - 세상을 바꾼 운영체제를 만든 천재들의 숨은 이야기
원제: UNIX - A History and a Memoir
저자: 브라이언 커니핸 Brian Kernighan 
역자: 하성창
참조: 네이버 책교보문고, 알라딘


2020년을 돌아봤을 때 행복했던 이유를 (굳이) 찾을 수 있다면, 무엇인가? 라고 누군가가 물어온다면, 난 '유닉스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었다는 말로 답을 하고 싶다.

UNIX의 아름다움은 파이프에 있다는 말을 중얼거리고 살아왔는데, 이 책의 저자도 같은 이야기를 적은 것에 깊은 감동을 한 순간은 책을 읽어나가면서 생각하고 흥분하고 키득거린 것들에 비하면 너무 작은 부분이었다. 정말 UNIX의 아름다움은 파이프에 있다.

만약 1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생각해 보지 못 했을 다른 경험도 있었다. 예를 들면, 어떻게 조직은 운영되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어떻게 함께 일 하고 훌륭하게 되는가? (훌륭한 사람들이 동료가 되어 함께 일 하는 조직이 아니다 - 인과의 방향이 다르다) 등일 것이다.

몇 몇의 부분에서는 내가 잘 못 기억하거나 최초에 잘 못 학습한 내용을 발견하고 '앗차!' 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것을 후배들에게 잘 못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후배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 일례를 들자면 아직 21세기라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고 있을 때, 회사의 구석 방 하나를 독점해서 사방의 벽에 인쇄된 종이를 빼곡히 붙여가며 운영체제의 역사에 대해 알려준 일이 있었는데 설명을 잘 못 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좋은 교양서다. 조금 전 회사의 기술직종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메일을 쓸뻔했다, 일독을 권한다는. 


혹시, 책을 읽을 형편이 안 되거나 인쇄매체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다면, 이 책의 저자 이름으로 유튜브를 검색해 보는 것도 좋다, 유쾌하고 멋진 노년의 신사(물론, 청년의 모습도 있다)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 줄 것이다. 나의 말년도 이 분처럼 멋지고 싶다.

(지난 1월 초 즈음, 다른 곳에 게재 했던 글의 바탕이 된 메모를 읽다가 옮겨 적음)

그리고: 원서는 독립출판 형식으로 만들어져서 인쇄와 제본 품질이 좋지 않은 듯 하다. Kindle 형식도 PDF 본의 연장이라 Kindle 특유의 자유로운 활자 전환 등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원서를 구입하고 싶은 사람은 참조해야 하겠다. 어쩌다 보니, 한국어판이 엄청난 품질을 자랑하는 번역본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