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02, 2024

아틀라스 ATLAS

주인공 명성에 기대어 쓰레기 같은 극본으로 적당히 눈이 즐거운 정도의 영상물을 만들면 모두가 좋아서 화면 앞으로 모일 것이라는 기대는, 지난 세기 이후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이 영상물을 보기 전까지는. 



공상과학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럴싸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에 몰입하는 이유는 저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진지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 영상물은 우리가 초등교육 때부터 하나씩 배워온 모든 과학적 지식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우리가 지금 말할 수 있는 물리학 이론들과 내일 아침까지 떠들 수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상식을 깡그리 부정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개연성 정도는 갖추는 게 예의 아닌가?




주인공은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남이 뭘 해주기만 바라며 징징거리고, 그녀의 일생 동안 쌓아온 히스테리를 우주 끝까지 쏟아낸다. 이런 류의 영화가 그러하듯 징징거리기만 하다가 그녀를 도와주려는 수 많은 등장인물들의 목숨과 바꾸어 혼자 살아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하지만, 극중 모두의 박수를 받는다. 

이 영상물은 청춘을 바치며 캐리어를 일구는 모든 이들에게 손가락 욕을 하며, 목숨을 바치며 국가와 시민을 지켜내는 모든 군인들에게 엄마욕을 날려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개인적 욕심과 비뚤어진 욕망이 있더라도 감수성 가득한 징징거림만 쉼 없이 쏟아낼 수 있다면 전인류적 재앙을 만들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현시점, 인류문명의 퇴보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의 방향을 갖추고 있다.

이 영상물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 있다.



Sunday, May 19, 2024

my Golf 6

난 이 차와 10년을 넘게 함께 했다. 여전히 아름답다. 누군가는 '취향이 확고하시네요' 라고 했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이 보다 멋진 차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자동차 디자인의 경향을 보고 있으면, 앞으로 이보다 멋진 차는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전기차가 세상을 지배하기 전에 엔진 기술의 정점인 차를 만끽하고 싶어 이렇게 저렇게 알아보지만, 이상하게 결론은 Golf GTI... 취향이 확고하긴 한 것 같다. 


며칠 전, 주차장을 떠나며 문득 뒤돌아 보니 여전히 예뻤다.


Monday, May 06, 2024

나의 키보드들에 관하여

나는 많은 키보드는 정리했다. 모두 다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역시 덕질은 부동산이 받혀줘야 하는 일인데, 나에게 그런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남아 있는 (영구 소장용으로 고이 모시고 있는 놈들은 제외하고) 키보드들 중에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사용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사용 시간 순

  1. Logitech Mechanical Mini for Mac
  2. Keychron C1
  3. LuPhy Air75 V2
  4. Keychron K3 V2
Logitech Mechanical Mini for Mac

Keychron C1

LuPhy Air75 V2

Keychron K3 V2

타건감 순 

  1. Keychron C1
  2. LuPhy Air75 V2
  3. Logitech Mechanical Mini for Mac 
  4. Keychron K3 V2

축 선택 가능한 것들은 모두 적축이다. 하지만, Keychron K3 V2의 적축은 정말 실망스러워서 청축을 사다 바꿔 꽂았다. Keychron 제품들이 다 그러하듯 명확한 축의 성격이 들어나지 않는다. 술에 술을 타 술을 만든 것도 아니고, 물에 물을 타 물을 만든 것도 아닌 듯한 기분은 마치 무알코올 맥주 (하이네켄 무알콜 맥주는 매우 뛰어난 제품이기에 무알콜 맥주를 떠 올릴 땐 하이네켄의 그것은 제외해야 한다) 같다. 이 키보드는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요즈음은 iPad 연결용으로 사용하는데, 그 효용 가치는 그렇게 높지 않다.

Keychron C1의 타건감은 축이 주는 이상한 줏대 없음을 키의 크기가 커버를 해 주는 느낌이다. 역시 키보드의 키 크기는 이 정도 높이는 되어야 하는 법.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쉽게 흐물흐물해지는 축의 낮은 내구도 덕분에 90년대 성실히 만들어낸 멘브레인 키보드 (난 영구 소장용으로 품고 사는 키보드 중에 DEC의 그 키보드 느낌과 비슷하다 생각한다) 느낌이 나는데, 오히려 집중하여 키 입력을 지속적으로 할 때의 만족감이 높다. 설계의도와 다른 부실이 역설적으로 만족감을 주는 제품이라니. 괜히 업무용 키보드가 멘브레인 일색인 이유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저렴한 이유가 제일 크겠지만.

LuPhy Air75 V2는 C1을 제외하고 나머지 low profile의 무선 키보드 중에 가장 좋다. 매우 좋다. 이 정도면 low profile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도 있지 않을까? 다소 무겁기는 하지만, 전용 파우치에 둘러싸고 가지고 다니면 없던 고급스러운 타건감이 묻어나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 예쁘다는 이야기이다. 처음 물건을 받고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하면서 열 손가락 끝에서 나의 뇌까지 전해지는 감각은,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쾌감이었다. 

Logitech Mechanical Mini for Mac은 나쁘지 않지만, 좋지만, 아주 좋을 수는 없는 그 정도의 수준이다. 내가 세상 모든 키보드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내 인생을 탈탈 털어 볼펜보다 많이 산 키보드의 수를 생각해 보면 주관적인 순위라도 의미가 있을 듯하여, 말해 보면, 대충 상위 20% 안에는 충분히 들어가는 수준이긴 하다. 즉, 나쁘지 않고 나쁘지 않고 나쁘지 않다. 두 손들어 환영하지는 않겠지만, 내 돈 내고 사기에 아깝지는 않다.

Keychron K3 V2 이 키보드에 타건감 따위를 논하면 안 된다. 그건 다른 키보드에 실례를 하는 일이 된다. 가격을 생각하면 가슴이 좀 아프다. 전용 파우치까지 사서 정을 붙혀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오타 낮은 순

  1. Keychron C1
  2. Logitech Mechanical Mini for Mac
  3. Keychron K3 V2
  4. LuPhy Air75 V2

Keychron C1을 여기에 놓고 오타 정도를 논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C1 이외 나머지는 low profile이다. 다만 이 키보드에 마음에 안 드는 것 단 한가지가 있는데, screen lock 전용 키가 우측 상단에 있다는 것이다. Page Up 키를 누르면 30%의 확률로 화면이 잠긴다. 빡친다. 이런 설계는 제정신으로 하는 설계가 아니다. Keychron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기념비가 될만한 제품을 망치는 경우가 있는데, C1의 경우는 이 screen lock 키의 위치가 그렇다. Keychron은 Logitech으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Logitech은 같은 기능을 목적으로 하는 screen lock 키가 같은 곳에 존재하지만, Fn 키와 조합으로 동작하게 설계했다. 얼마나 똑똑한 처리인가.

Logitech Mechanical Mini for Mac을 가장 오래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오타율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이건 키보드를 제대로 만들어본 인간들이 제 정신으로 그들의 사명을 다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키보드 마우스의 효율과 능률은 Logitech 만큼 높은 회사가 어디 있는가? 다만 취향의 문제 때문에 혹은 심미적 관점에서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지, Logitech은 입력장치의 명가이다. 타건감도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고 키 레이아웃이 창의적이지도 않지만 업무 효용성은 정말 극강이다. 

사실 일을 하면서 - 가끔 미친 듯이 키보드 질을 해야 할 때가 나에게는 종종 있다 - 생각을 글자와 문장으로 변환하여 문서를 완성해 나갈 때 가장 중요한 건 극도로 낮은 오타율이다. 오타가 나면 지워야 하고 생각을 멈춰야 하고 다시 입력하면서 생각을 다시 시작해야 하고 … 그래서 업무 효율은 낮아진다. C1은 집에서 고정되어 있고, 그래서 사무실과 혹은 다른 어느 곳으로 오갈 때에는 이 키보드를 가지고 다닌다. 업무 속도에 차이가 있다.

Keychron K3 V2는 의외로 오타가 적다. 키 크기 자체가 다른 키보드보다 같은 면적에 작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묘하게 키 간의 위치를 손끝으로 구분하게 해 주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인지 오타가 많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만족스러운 수준은 당연히 아니다.

LuPhy Air75 V2 나에게 기억에서 잊힐 뻔한 타건감에서 주는 만족을 선물해 준 이 키보드는 미친듯한 오타로 나에게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독특한 키의 모양과 높이 그리고 깊이가 다른 키보드 보다 아주 작은 차이를 전달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오타가 많이 생산되는 것은 키의 특별한 모양이 주는 차이는 아닐 것으로 짐작한다. 사실 이 키보드는 블루투스 연결에 간간히 문제를 만들고 있으며 (하루에 8시간 사용한다면 2 - 3번 정도 연결이 끊어졌다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옴) 베터리도 가장 빨리 닳고 (난 모든 키보드의 백 라이트는 끄고 사용한다) 같은 장르 키보드에 비해 무게도 제법 나가는 편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오타가 많이 나는 이유로 나의 선택을 잘 받지 못한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개인차가 클 것으로 생각하며 절대적 키보드의 완성도와는 거리가 있지 않을까 한다. 난 보통의 성인 남성보다 손이 큰 편이다. 피아노 건반 ‘도'에서 한 옥타브 위 ‘미'까지 엄지와 새끼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쉽게 소리를 낼 수 있다. 

기타 

Logitech Mechanical Mini for Mac : 로지텍은 오랫동안 그들의 입력장치의 무선연결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제품들은 뭔가 큰 노력의 결과를 자랑하는 것 같다. 매우 좋다는 말이다. 그리고 베터리 소모도 과하지 않고 신기할 정도로 덜하지도 않다. 무선 연결성은 최고의 만족, 베터리 유지도 좋다. 

Keychron K3 V2: 백 라이트는 끈다. 그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키보드를 눈으로 주시할 일이 하루에 몇 번나 있을지 모르겠다. 시선 밖에서 반짝 거리를 따위가 있으면 업무 효율성은 떨어진다. 정신사납다. 백라이트를 끄고 끄지 않고는 베터리 소모에 큰 차이를 들어낸다. 백라이트를 완전히 끄면 이 키보드는 언제 충전을 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할 만큼 오래 유지된다. 무선 연결에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다. Windows와 macOS 지원 방식을 스위치로 지정할 수도 있다. Meta/Windows key와 Option/Alt 키의 위치를 바꿔주는 단순한 역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가 될 수 있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유용하겠다.

NuPhy AIR75 V2: 블루투스 연결이 두어 시간에 한 번 정도 아주 짧게 끊어지는 걸 체험할 수 있다. 그래서 입력 시 키 하나 혹은 두 개 정도 빠진다. 이게 의외로 사람 성질을 건드린다. 시스템을 지켜보면 짧은 순간 끊어졌다가 다시 연결되는 걸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블루투스 오디오와 동시에 사용하면 10번 중 9번은 오디오를 씹어 먹는다. 한 번 씹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는다. 서로 채널을 바꿔가며 좋은 것을 선택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어느 것을 먼저 켜놓든지 상관없다. 내가 테스트한 오디오 장치는 다음과 같다: AirPod Pro, Sony WH-1000XM5, Surface Headphone, Ear(1). 베터리는 하루 8시간 안팎의 사용에 10% - 15% 정도는 사라진다. 당연히 키 입력의 빈도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적축에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타건감. Low profile의 단점을 느끼지 못할 만큼의 편안함. 창의적인 외형과 색 배치. 이 세가지를 제외하면 나머지 부분은 내가 가진 키보드 중에 제일 못 하다. 현재 이 키보드는 대부분의 시간을 전용 파우치를 입고 숙면을 취하고 있다.


멋도 없고, 뛰어난 재간도 없어 보이지만, Logitech Mechanical Mini for Mac 정도 되는 무선 키보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난 대부분의 시간에 이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다. Logitech MX Master 3S와 함께 책상 위에 두면, 그것의 수수함이 수려함으로 탈바꿈되는 것 같아 더 만족 스럽다.             

Saturday, May 04, 2024

힐빌리의 노래

성의란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몰입의 결과를 친절히 풀어서 설명하면 되는 것이다. '성의'가 헌신짝보다 못 한 시대에 이런 시작을 맞이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힐빌리의 노래를 읽기 시작하다.

Friday, April 26, 2024

테헤란로와 Love

어느 평일 저녁, 처음 만난 사람들과 고기를 굽고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에서 몇 시간 밥을 먹었다. 그리고 인사하고 각자의 방향으로 헤어졌다. 테헤란로. 내가 세 번째로 인식한 서울의 모습. 강남역에서 높은쪽으로 걸어올라갔다. 봄에 어울리는 바람이 불었다. 조금 전까지 비가 내렸나보다. 잎이 제법 자란 가로수들이 소리낸다. 차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이어달리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핸드폰을 처다보며 위태롭게 꿋꿋하게 걸어간다. 

나의 귓속에 the good humor man he sees everything like this가 흘러나오고 불안정한 하지만, 그들의 멋이 스며나는 엔딩을 3분 8초마다 반복한다. 몇 번이나 들었을까? 길 건너 빌딩들의 마루가 만들어 내는 풍광을 머릿속에 새겨 넣은 듯한 시선을 거두고, 나도 다른 이들처럼 꿋꿋하게 걸어가본다. 이유없이 이 거리가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노래는, 이 길과, 이 시간과, 나의 마음과 어색하지만 잘 어울린다. 난 Love,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순간이 잘 기억될 것 같다.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