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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May 31, 2011

SM3 - VW Golf, Thinkpad - T43 - T410 그리고 한글 - 한국어

새로운 차를 살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1년째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내 차가 총주행거리 100,000Km를 돌파하였습니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였습니다.





사실, 앞에도 뒤에도 차가 없는 한적한 고속도로에서 여유있게 찍은 것입니다. 정면 주시하고 전화기를 계기판에 밀어 넣어 찍는다고 뭐 잘 찍히지는 못 했습니다. 나름 안전을 생각한다고 한 행위이지만, 이 행위는 시작부터 잘 못 된 것이니 할 말은 없습니다. :-(
그나저나 5년 동안 실내세차 1회라는 기록이 반영되고 있군요. 더럽습니다.

SM3Golf

내 차는 계기판이 말해 주듯 SM3입니다. VW Golf에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오다가 이제는 실행에 옮겨야 할 때이다 - 라고 마음을 먹는 순간, 지금의 차가 스스로 튜닝이라도 한 듯 신차의 성능을 냅니다. 참 고민이 됩니다. 이 녀석이 내 마음을 읽는 무기체인지는 모르겠으나, 차 한 번 잘 만들었다는 생각도 합니다. 연비도 신차에 가깝고, 성능도 기대 이상(신형 쏘나타와 경쟁 가능하다 말하고 싶습니다, 이유? 모르겠습니다. 혹시 수동이라서?)이며 나머지 어떤 것도 10만 킬로미터를 주행한 차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VW Golf를 보게되면 가슴이 뭉클 두근 욱씩거립니다.

  • 뭉클: 사춘기 때부터 정말 가지고 싶은 차이기 때문에...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 두근: 나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Dream Come True!

  • 욱씬: '가능성' 이전에 이성적 판단을 해 보면 사서는 아니되기에; 이 연결성 부족한 결론 도출은 마치, '사랑하기에 떠나보낸다'라는 지난 유행가 가사처럼 마음으로 읽히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엇과 같다.



brand new car?

오늘 고속도로 진입직전 만난 저 차는 무엇일까요? 새 차들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의 계절입니다. 사람이 관심을 한 군데 가지면 그 대상과 그 주변이 무척 대단하고 크게 보이는 법이죠.

가슴을 뛰게 한다고 하여 항상 새로운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ThinkPad T410

ThinkPad T410의 터치패드 모습입니다. (더럽군요)

ThinkPad T43

ThinkPad T43의 터치패드 모습입니다. (더럽습니다)

디자인의 차이가 눈에 들어오는지요? 신형인 전자는 팝파랫과 터치패드가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후자는 터치패드가 조금 아래로 들어간 모습입니다. 이게 무슨 차이를 만들까요?

타이핑을 하거나 '빨콩(트랙포인트)'을 다룰 때 손바닥이 터치패드를 눌러 입력을 간섭하는 것을 T43은 방지할 수 있고, T410은 그렇지 않다 - 라는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회사에서 받은 T410. 아직 집에서 현역 생활을 하고 있는 T43. 하루에도 몇 번씩 신경질적인 반응을 자아내는 T410. 몇 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사랑스러운 T43. 너무도 사소한 부분인 것 같지만,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엔지니어링에 무지한 산업 디자인은 이렇게 실패하고 그 반대는 저렇게 명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겠죠.

사실 이쁘게 만들기 위해 기술적인 요소를 무시하거나 편리를 포기하는 경우는 Apple의 제품에서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이런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친 언어를 포함하여 이 발언에 대하여 심각한 비난을 할지 모르겠지만, 진실입니다 :P 언제 시간이 허락되면 연제를 하고 싶은 마음도... (후훗)

음... 아무튼, 이 말은 하고 싶은데, ThinkPad의 '빨콩'은 인류가 고안해 낸 많은 전산입력 장치 중에 버금상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으뜸상은? 전 키보드라고 생각합니다. 마우스? 글세요... 마우스는 대체 가능한 유사 기술이 많고 그 중에 하나가 '빨콩'인지라...

(다시) 가슴을 뛰게 한다고 하여 항상 새로운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Ubuntu 11.04 on ThinkPad T410

Ubuntu 11.04를 설치했습니다. 회사에서 Big Brother의 쁘락치를 지울 수 없게 설치(이럴 땐 속어인 '깔아놓았다'가 제격인 듯)해 둔 Windows 7 체제에서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과 업무 특성 상 Microsoft Office는 OpenOffice.org로 대체 가능하고, Microsoft Internet는 안써도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T410을 받기 전에 쓰던 Lifebook은 Ubuntu로 Solaris로 지속적인 삶을 살기도 하였습니다.

Ubuntu 11.04 on ThinkPad T410

아... 설치 과정에서 보여는 화면조차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 ~ ~ ~ ~ 그리고 딱 3일을 동거했습니다. Lifebook의 마지막 OS 버전이었던 Ubuntu 10.10으로 다시 설치했습니다. Canonical에서 Unity라는 GUI Shell을 Ubuntu 11.04에 넣었습니다. 참 아름다웠습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무엇이든 '아름답다고' 모든 게 용서되지 않습니다. 춘기발동기 인간 수컷들이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Ubuntu

Unity Shell은 여름 한 철 농약 한 번 안뿌리고 방치한 사과농장 같았습니다. 유기농도 좋지만, 사람이 먹을 만한 걸 수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각양각색의 버그들이 구석구석 집을 짓고 자리를 잡고 있더군요. 그래서, Unity를 무시하고 Gnome 3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 이 마음이 싹트는 시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후회로 보상되지 않는 아픔이 찾아왔더랬습니다. 지금은 Ubuntu 10.10으로 재설치하여 안도와 안락을 동시에 맛 보고 있습니다.

Ubuntu를 내 취향에 맞게 최적화를 하고 이것저것 네트워크를 뒤져 필요한 것들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쓰던 IME의 이름도 잊어버려 허우적 거리다가 한국어 입력 등에 대하여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참 이상한 반응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용자가 '한자'입력의 불편함등에 대하여 적은 글의 대수의 반응은 '중국어 입력기를 쓰세요'였습니다. 아니 이건 뭐라고 해야할지. 그리고 한 배포판의 기본 서체에서 한자를 무조건 한글발음으로 바꾸어 보여준다는 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자 대다수의 반응은 '한자는 청산해야할 사대주의', '한글만세' 였습니다. 어이쿠...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이들은 대부분 '한글'과 '한국어'도 구분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가, 이 땅의 이 순간이, 과장된 혼돈과 무질서적인 가치혼란을 조장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사회·정치적 운동에 줏대없는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영합하는 결과, 우리가 아닌 너와 나로 구분되는 사고의 판단이 요구된다지만. 할 말이 없습니다.

그나저나 눈이 침침한데, 안경은 도체 어디둔거지?

안정화된 Ubuntu에 LaTeX는 더이상 '삽질'하지 않아도 Ko.TeX 패키지까지 순탄히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LaTeX로 이력서를 새로이 적는데, 옛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이렇게 견고하고 아름다운 마크업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이름없는 많은 이들에게 감사해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밤입니다.

Monday, March 07, 2011

after Singapore Days - 한국인에 대하여

싱가포르에서 엿새를 보내면서 든 우리에 대한 생각.

종종 주위의 한국인들의 무례한 행위로 내가 한국인임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은 마지막 날 한 번 더 일어났습니다. 바로 Red Dot Design Museum에서였습니다. 그 곳은 멀티미디어를 활용하기도 하여 절대 정숙이 요구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특정 제품은 인터랙션을 통해 그 가치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촬영도 적극적으로 허용되고 말이죠. 하지만, 있는 물건 없는 물건 다 만저보고 툭툭 쳐보고 이건 어디 쓰리고 한 거야? 저건 뭐야? 색깔이 왜 이래? 뭐라고 써 놓은 거야? – 동네 백화점 세일 기간에 몰려다니며 기본적인 예의는 집에다 모셔놓고 이 상품 저 상품 툭툭 건드리고는 아무 곳에나 집어 던져 놓고, 점원들에게 반말로 일관하면서 마치 옛시절 종부리듯 하는 아줌마 무리 같았습니다. 공교롭게 그 무리도 같은 性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 부끄러웠습니다. 그 무리가 지나가는 곳마다 설치되어 있던 제품들이 (천장 고정으로 매달려 있던 것들은) 전후좌우로 진자운동을 하였고 (반짝 반짝 닦아 놓은 것에는) 지문이 덕지덕지 묻어버렸습니다.

흔희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보면 애국심이 생긴하고 합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정말 그게 사실인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물론 전 외국 체류에 보낸 시간 중 가장 긴 시간이 고작 보름 남짓이기에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 삼사일 바다 건너갔던 사람도 민족과 국가와 역사와 현시점에서의 국가 발전상과 미래를 위해 정부가 (이런 일장연설에서는 절대 ‘화자’를 포함한 우리가 아님이 특이합니다, 정부가 뭘 해야한답니다) 무엇을 당장해야 한다고 들먹이는 것 보면, 무슨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 같습니다. 입출국장에 공기 중으로 살포하는 약품이 있을까요?

우리는 서로 이야기합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예의없고 시끄러워서 가까이 하기 싫다고. 서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경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며칠전 Singapore Flyer 속에서 만난 중국계 가족에게 저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어떠할까요?

미안하지만, 며칠 전 모 상점에서 점원이 한국어로 인사했습니다. 얼굴로 국적을 알아보다니 대단한 식별력입니다. 전 영어로 인사했습니다. 영어만 썼습니다. 앞에 한 한국인 관광객 무리가 대단한 일을 벌이면서 지나갔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Singapore Flyer의 중국계 가족과 다를 바가 없을 뿐더라, 그 중국계 가족은 미친듯 뛰어놀 시기의 아이들이 있었지만, 그 대단한 한국인 무리는 모두 성인이었습니다.

여기 싱가포르에서도 한국의 자취를 심심하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TV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방송되고, 즐비한 쇼핑몰에서는 일본어로 된 노래보다 한국 아이돌이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를 더 흔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고급 음식점이 아니더라도 주문 중에 서로 애매한 순간이 오면 웨이터는 한국어 보통명사를 꺼내어 주문을 마치고자 노력합니다. Singlish, 만다린어 다음으로 한국어로 물어옵니다.
대로에는 한국 기업의 간판을 볼 수 있으며, 비록 택시이기는 하지만, 한국산 차가 거리를 수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스쳐지나가는 한국인들은 과연 이런 위상에 걸 맞을까 – 생각해 봅니다. 중국어는 대체로 소란스럽습니다. 언어자체가 그러하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어나 일본어는 비슷한 소리대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표에 그려넣으면 한국어나 일본어는 오선 중 가장 아래 밑 도에서 파 정도에 머물고 중국어는 한 옥타브가 높다는 생각입니다. 아 근데 왜 한국어 관광객들의 목소리를 중국인 무리들 보다 먼저 알아차릴까요? 한국어 사용 무리는 더 멀리있는데. 단순히 모국어에 귀가 쫑끗해지는 태생적 반응일까요?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영어가 단일 공식어이고 영어로만 대화해야 하는 환경의 지역에 가면 한국인들 정말 조용합니다. 물론 정확한 수치적 통계도 아니고,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조사 및 분석한 것이 아니라, 저의 경험을 배경으로 한 것이기에 객관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저의 느낌을 전 사실로 굳히고 싶습니다.

불필요한 문화적 열등감과 더 불필요한 문화적 우월감이 한 번에 교차된다고 전 분석하고 있습니다. 둘 다 매립해버리거나 소각해버려야 하는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 같은 것입니다.

한국인임이 떳떳하여 어떤 가치보다 바꿀 수 없는 자랑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가다간 세상만사 심각히 어려워집니다, 20세기 두번의 큰 전쟁으로 우리는 그 부작용을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임이 부끄럽고 들키고 싶지 아니한 느낌이라면 이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이라는 가치가 다른 문화와 만나게 되면, 마치 80년대 강남개발로 졸부가 된 무지랭이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요? 제가 밖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은 딱 졸부 느낌입니다.

다른 문화에 주눅들 필요가 없는 것처럼, 다른 문화를 천대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문화는 가치가 있는 인류의 유산입니다. 내가 하는 말을 상대가 알아 들을 수 없을 것이다며 입 닫아버리고 시선을 피할 필요가 없듯이, 내가 하는 말을 타인이 이해할 수 없다고 마구 떠들어 댈 필요도 없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외국인들이 많습니다. 음식점 같은 곳에서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점원들은, 하지만, 말 안 통할 것이다라고 미리 단정짓고, 입 닫아 버립니다. 그리고 금액이 표시된 숫자만 보여주고 딴청을 부립니다. 참 안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만 사용하더라고 친절을 표하면 상대는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지만, 친철을 배풀고 인사를 하고 안내를 하면서 깍듯했던 한 일본음식 점의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싱가포르 커피점의 젊은 매니저가 생각납니다.

어떤 무언가가 변화해야 한다고 느껴진다면, 흔희 우리들은 '법'과 '제도'와 '정치'와 '가진 자들의 행위'에 대하여 말합니다. 사실, 변화가 필요하다 느껴졌을 때 느낀 자부터 변하면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