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ly 08, 2018

모나미 올리카, Monami Olika

사람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때, 사람답게 보인다. 그 표현의 방식은 누구나 아는 것과 같이 몸짓과 말하기 그리고 글쓰기라 할 수 있다. 이 중 가장 오랜 시간 그 생각을 남기는 방법이 글쓰기일 것이다. 물론, 특별한 사람들은 생각을 그 생각 그대로 전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 시리즈 파이널 에피소드 하나가 그렇지 않아도 위태롭던 전체를 전복시킨 그 유명한 형제 남매 자매들의 작품이 현실이라면 말이다.

용두사미의 전형을 보여준 센스8

생각을 표현 하는 방식 중 하나인, 글쓰기에 떼어낼 수 없는 도구, 필기구가 있다. 그 중 우리 세대가 가장 많이 손에 쥐었을 법한 것은 아마도 ‘모나미 153’일 것이다. Ball Point Pen이 제 멋대로 축약되어 볼펜이 되었고, 그 중에 대명사가 된 제품이다.

모나미에서 153 같은 만년필을 만들었다. 153 같은 만년필은 무엇인가? 153은 쓰기 시작하면 그 불편한 필기감을 어찌할 수 없다. 일단 내장된 ‘찐득’한 잉크를 1/3 정도 써버리기 전까지는 손끝에 적당한 힘을 주기 못 하면 제대로된 필기를 할 수 없다. 1/3 지점을 통과하면 이보다 부드럽게 써지는 볼펜이 세상에 있을까? 싶은 기분에 젖어 드는데 – 사실 이 또한 잠시이다. 잉크가 이제 1/3만 남는 지점을 통과하여 바닥을 항해질주하면 그 찐득한 잉크기 과도하게 나오기 시작하고 소위 말하는 ‘볼펜똥’이 군데 군데 묻어나기 시작한다 – 그러다가 운이 없으면, 펜 끝의 볼이 빠지고는 한다. 당황하지 말라, 방금 적었던 글자 속에 남아 있다. 잘 찾아 끼워 넣으면 조금 더 쓸 수 있다.

153은 그런 볼펜이었다. 절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고수해 줘서 고마운 그래서 다른 것들은 적당히 포기할 수 있는 그런 볼펜이었다. 거기다가 흑색 청색 적색까지 다양한 색상을 구비하여 자신의 공책과 참고서를 화려하게 꾸며 넣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 형광펜? 그건 한 참 뒤의 일이다.

모나미에서 153같은 만년필을 만들었다. 올리카. OLIKA라고 영문으로 적더라. 3000원 안팎으로 살 수 있는 이 만년필은 실상 萬年筆이 아니다. 萬年인 커녕 1년도 제대로 쓰기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만년필은 정말 좋다. 왜? 3000원이니까.


올리카는 처음 쓰기 시작하면 약간의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어? 이 감각은 무엇이지? 나에게 필기를 하지 말라고 하는가? 라는 느낌이 든다. 마치 50원에 사온 펜촉처럼 종이를 갉아 먹는 듯 거친 느낌, 일정하게 묻어 나오지 않는 잉크 – 혹시 촉이 막혀 있나 싶어 물 속에 한 참을 담궈 둔 적도 있다. 잉크 카트리지를 꽂아두고 한 동안 쓰지 않아서 그런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흑색(黑色)과 더불어 적색(赤色)도 함께 샀는데, 이게 QA가 제대로 되지 않는지 두 개의 같은 만년필이 필기감이 다르다. 그럴 리 없겠지만, 잉크 때문인가 싶어서 카트리지를 제거하고 충분히 물에 충분히 담가 씻어 낸 후 바꿔 꽂아 봤는데, 그럴 리 없었다. 그냥 QA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첫번째 카트리지를 다 쓸 무렵 이 만년필은 제대로 써지기 시작했다. 153같았다. 그런데, 세번째 카트리지를 중간 즈음 썼을 땐 이유없이 잉크가 많이 흘러나오는 느낌이 있었다. EF를 샀는데 신속히 F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꼭 153 같았다.

난 ArtPen을 좋아한다. 로트링 아트펜. F와 EF를 번갈아 쓰고, 1.1도 좋아한다. 어쩌면 난 공백을 글자들로 채워내는 행위에 즐거움을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트펜도 오래 쓰면 EF가 F로 변하고 F는 M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올리카와의 차이는 아주 천천히 진행되어 어느덧 변해 있다는 것이다. 1년 전 혹은 수개월 전에 적었던 문장을 꺼내어 봐야 ‘아, 원래 EF는 이런 굵기였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올리카는 며칠, 몇 주 사이에 이 변화가 진행된다. 기본 구성이 펜 1개에 카트리지 3개인 건 이런 이유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불행히도 네번째 카트리지를 넣을 무렵 그 펜을 잃어버렸다. 어느 회의실에서 굴러다니다가 사라졌거나 어느 카페에의 소파 틈에 갇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직 4번째 카트리지 이후 글씨의 굵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153같다. 그런데 이 올리카는 OEM이다. 중국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청자의 스테디 셀러를 벤치마킹해서 같은 감각을 전한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다. 생산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정성을 부가한 느낌이다. 대단하다, 21세기에 이런 품질이라니 – 하지만 이런 탄식은 아름다운 가격에 즉시 잊혀진다.

세개의 올리카 중의 하나, 유독 펜촉(Nib) 상태가 불량하다.
당신의 올리카도 이럴 수 있다. 

세번째 올리카를 샀다. 3000원이라는 가격과 그에 부합되는 저렴한 카트리지는 정말 매력적이다. 필기구란 잃어버리는 운명을 당연히 맞이해야 한다. 그런 운명에 적당한 내구성과 적당한 필기감을 가지고 있다. 만년필의 약간의 부실함은 의외로 공책의 성실함을 담보해야 하는데, 다른 어떤 만년필도 그렇겠지만, 더더욱 이 저렴한 만년필에는 몰스킨 정도가 좋고, 무지(無印良品)에서 묶음으로 판매하는 재생지 노트도 꾀나 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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