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01, 2026

나의 꿈(이었던 이야기)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라디오 DJ를 하고 싶었다.

단어와 단어를 엮어 문장을 만드는 일, 글을 짓는 일은 정말 고귀하고 근사한 직업으로 보였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글을 짓는 것 중에 가장 으뜸은 소설로 세상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난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작고하신, 박영한(朴榮漢) 선배님의 아라베스크의 짜임새를 유심히 보았고,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앉은 자리를 뜨지 못 하게 했던, 198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임철우의 '붉은 방' 같은 소설도 적고 싶었다. 나는 사실 어린 시절 소설보다는 시(詩)를 더 좋아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김수영과 기형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유년시절은 라디오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그다지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지 못 해 주간활동이 제한적이었던 탓이었는데 밤 늦은 시각까지 잠을 자지 못 했던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 난 집에 있던 라디오에 전파를 맞춰가며 이런저런 방송을 들었다. FM 영화음악실이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는 아직 머릿속에 DJ들의 목소리가 고스라니 남아 있다. 

어학공부용으로, 당연히 그랬겠지만, 가지고 있던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는 라디오 기능도 함께 제공되었는데 - 내 것은 삼성 '마이마이'였다 - 덕분에 밤이 깊어지지 않아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다. 이수만의 팝스투나잇, 이수만과 함께는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물건너 바깥의 최신 팝을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이어 받은 (가수 이수만은 DJ를 그만 두고 현재의 SM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었다, 그를 연예사업으로 이끈 건 그가 만든 곡 이지은의 '러브 포 나잇'이었지 않았을까) 프로그램이 '배철수의 음악캠프'였다. 내 기억이 맞다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첫 곡은 '뉴키드 온더 블록'의 '스텝 바이 스텝'이었을 것이다. 

DJ는 멋진 직업처럼 보였다. 그런데 난 그들처럼 그렇게 다양한 지식과 음악에 대한 큰 애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지금의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잘라 말하겠지만, 학창시절의 난 말을 정말 못 했다. 완전한 한 문장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도 힘들었고, 글을 소리 내어 읽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영원이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사람이 증거이니까. 

그래서, 난 말하지 않는 DJ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공중파에서 이런 사람을 써주지는 않을 것이 분명해서 나중에 소설가로 성공하면 돈을 들여 작은 지역 방송국 하나를 운영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난 두번째 꿈을 꾸며 긴 인생의 항로를 잡고 있었다.

나는 지금, 30년 가까이 IT 업계에서 그저 그런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끔 오랜 친구를 만나면 내가 직장인으로 월급을 받고 사는 모습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튼 밥벌이 하고자 시작했던 일이 이렇게 될지는 나도 몰랐다.

시스템 아키텍처는 사실 잘 짜여진 소설만큼이나 유기적이고, 코드는 시와 다름이 없어 보인다. 데이터센터는 색인이 잘 된 도서관만큼이나 하모니가 느껴질 때도 있다. 어르신들이 '인생은 무엇이다'라는 말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세상을 몇 걸음 뒤에서 보게되는 여유가 생기면 혹은 그럴 만큼 현실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면 지나온 모든 것이 비슷비슷해 보이는 이유이지 않을까?

이 나이에 인생의 항로를 바꾼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코밑에 수염이 자라기 시작할 무렵의 나는 어떤 인생을 살기 원했는지 기억해 버렸다. 시간은 너무 빨리 가고 나는 너무 게을렀고 세월은 정말 야속하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