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25, 2024

잘 지내니, 준?

십년 전, 중국에서 황사만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가을 어느 날, 그는 북경의 어느 골목길 어귀에서 뺑소니 사고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나의 후배였고, 정확하게 신해철이 숨지기 하루 전이었다. 그의 죽음은 항상 기억할 수 밖에 없다. 떠들썩이든 소근거리든, 세상은 신해철의 부재에 대하여 늘 말하고 있으니까. 그의 부재에 대하여 기억하는 사람은 남겨진 가족 말고 또 누가 더 있을까? 그의 부재에 대하여 생각하며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이 쉽게 잊혀지지 않기를 바래 본다. 우리가 이름을 기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테니까.  

Thursday, October 17, 2024

돌아갈 수 없는 나날들, Porco Rosso

사람은 노스탤지어를 품고 있다. 있지도 않은 전쟁에 나갔다가 오랜 세월 후 떠나지 않은 고향의 풍경을 그리워하는 감성을 품고 산다.

Bygone Days, 歸らざる日日, 돌아갈 수 없는 날들

삶의 모든 것이 우연이듯 이 곡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의도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기억을 자극하는 변주를 우연히 들었을 때에는 더군다나 그 곡이 이 곡이라면

있지 않을 추억과 가져 보지 못할 감정과, 그래서 노스탤지어에 젖어 눈물을 훔친다 하여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Thursday, September 26, 2024

하고 싶은 일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그 돈을 좋아하는 일에 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풍요롭게 생활한다는 것은, 꿈이다. 영원히 이루지 못 할 진정한 꿈.

(이제 사회에 발 디디며 혼란스러워 하는 그대를 위한)

Saturday, August 31, 2024

House S8E12, Chase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176개의 에피소드 중에 최고는 시즌 4의 15화 16화 연작, House's Head와 Wilson's Heart라고 생각한다. 이 거대한 두 편을 마지막으로, 덕분에 6-8개 에피소드가 다른 시즌보다 적었다, 시즌을 마치며 주인공 하우스라는 캐릭터에 대한 탐구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 3개의 시즌을 거치면서 점점 (부분적 등락은 있었지만) 그저 그런 TV 시리즈가 되어갔다.

여덟 번째 시즌은 지난 3년에 대한 반성의 무개가 적절히 녹여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염두해 준 결과가 아닐까 한다. 난 그 중에, 12번째 에피소드 'Chase'를 시즌 최고의 에피소드로 꼽는다.

모든 시즌과 함께한 Robert Chase라는 캐릭터가 주인공이 된 에피소드인데, 배우 Jesse Spencer의 보여주지 못했던 연기력이 매우 돋보이기도 한다. 역시 배우의 연기는 연출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나에게 이 에피소드가 10년이 지난 오늘까지 기억되는 건, 다음의 대사 때문이다. House가 Chase에게 하는 말이다. 

You reassess your life when you've make mistakes. you didn't.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할 때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야. 넌 그러지 않았어.

선배가 후배에게, 실패자가 실패를 하려는 자에게 건네는 조언이었다.
그리고, 작년 병상에서 회사로 복귀하면서 내 귓가에 맴돌던 말이기도 했다.

Sunday, August 18, 2024

단편 소설 쓰기의 모든 것

단편 소설 쓰기의 모든 것 / Creating Short Fiction
데이먼 나이트 / Damon Knight 



유명한 책이고, 유명한 것은 사람을 불러모은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고, 살까 말까 고민을 반복하다가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읽을 요량으로 구매했다. 2018년 상반기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손에 넣은 날 마지막까지 다 읽어 버렸다. 출장 때 읽을 책을 따로 찾아야 했다.

이 책을 그렇게 빨리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용이 새롭거나 감명을 주거나 무릎을 치거나 소리내 ‘아!’ 외치거나 할 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을 때의 속도는 시각 정보로 받아들이게 되는 문자들로 의미를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기억과 대조하고 추론하고 어떤 다른 것과 견주어 보고 판단하는 등의 연계된 사고들의 속도에 좌우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복잡한 사고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중등교육 과정에 있는 ‘국어’와 ‘문학’이라는 교과에서 상당 부분 이미 접했던 것들이고, 늘 책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짓는 방법’, 혹은 ‘어떤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야기인가?’라고 물어봤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할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뿐이었다.

이 책을 사서 읽을지 말지 판단하고 싶다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책인지 여부를 가늠하고 싶다면, ‘2-10, 소설이란 무엇인가’ 챕터를 읽어보기 권한다. 

이 책은 전설에 가까운 책이다. 작가도 그렇고, 이 책의 생명력을 엿봐도 그렇다. 좋은 책은 좋은 다른 모든 것들과 다름없이 오래 살아 남는다. 신해철이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을 때, 청취자가 ‘어떤 음반을 들으면 되느냐?’ 라는 우문에, ‘오래된 밴드의 음반 중에 지금 살 수 있는 것을 들어라’ 고 현답을 한 일이 있다. 같은 의미로 이 책의 가치를 말하고 싶다.

이 책이 그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순간은, 막연한 동경으로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펜을 들고 빈 공책을,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 놓고 워드프로세서의 빈 화면을 바라만 보고 있는 누군가에게 주어졌을 때일 것이다. 그리고 습작을 매우 오랜 시간동안 해 왔음에도 이야기를 꾸려가는 실력에 발전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좋은 이정표가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