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23, 2023

침묵의 봄

10년 혹은 그 보다 짧았을 시간의 거리에서 난 우리 남해안을 돌아다니는 걸 무척 좋아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마을들과 그 사이사이의 풍경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어떤 어촌 마을에서는 하릴없이 해가 지는 걸 피부로 느끼며 수평선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기도 했다. 

한 마을은 벼농사가 컸는데 수확기에 가까워지며 논은 무거운 노란색을 띄기 시작했고, 산들 바람은 무늬를 만들어 내었다. 그 논과 논 사이를 걷고 작은 하천 옆에 앉았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동네가 너무 조용했다. 내 앞의 작은 하천의 물 흐르는 소리 밖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을에서는 대규모 그리고 다량의 벌레 채집기를 설치하여 익충이든 해충이든 어쨌든 벌레는 다 죽였고 그 벌레를 먹이로 삼는 동물들은 그 곳에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쌀 생산 극대화를 위하여 주변 생태계를 장악하고 조절하고 있던 것이었다. ('장악', '조절' 대신 '파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를 수도 있겠다)

나는 그 마을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생명들을 제물로 바치는 꼴로 보였다. 그 때는 그랬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침묵의 봄'은 10년전 내 생각과 결이 유사하다. 그리고 이 책은 1950대를 배경으로 한다. 우수하고 멋진 책이지만, 현대와 맞지 않는다. 세상은 많이 변했고 우리는 배웠고 (우리는 여전히 어리석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때와 비교하면 천지개벽이 여러차례 일어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있고, (이 책의 중심에 등장하는) 살충제를 매우 많이 뿌려대고 있지만, 이 책의 이야기와 같지는 않다. 우리는 더 나은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단위면적과 단위시간 당 생산성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고, 그 역할을 화학이 맡고 있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이 역설적인 사실이 지금 우리 인류는 뒷받침하여 문명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화학이 지구를 구하는 중이다.

한 개인이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의 개선 혹은 해결을 위하여 투쟁하는 방식 중에 저술만큼 멋진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류가 매우 멍청하게 살던 시절, 이를 지적하고 사회의 변화를 이 끌어낸 저자와 그 저자의 책에 나는 망설임 없이 기립박수를 보내어 존경을 표할 의지가 있다.

이 책을 소개하는 '50년 후 더욱 절실하게 감동으로 다가오는 책!' 이라는 수식은, 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서는 맞지 않다. 


침묵의 봄 Silent Spring
레이첼 카슨 Rachel Carson 著
김은령 譯
에코리브르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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