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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03, 2013

문장에 대한 옹졸한 나의 집착

(혹은 기성작가의 화가 날만큼 무신경한 문장 다듬기)

그간 한국 작가의 소설을 찾지도 않았다는 점을 교보문고를 들어서면서 알게 되었다. 매번 책을 사서 읽을 때 마다, '역자의 한국어 실력이 형편없어 이 모양'이라고 혀를 차는 대신 한국 작가의 책을 찾아 보기로 했다.

지난 여름,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개가 되었다는 기억으로 선택한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


하지만, 이야기가 시작된 후 책장을 몇 번 넘기고 덮어버리게 되었다.

  • '엄청난 볼티지의 전율'
  • '어머니는 마음을 쉽게 바꾸지 않는 순정파였다'
  • '그것은 오히려 류의 아버지가 사로잡힌 맹렬한 불꽃에 산소가 포화된 바람을 불어넣었다'

  • 볼티지가 뭔지 한 참 생각했다. 아! Voltage. 이 문장은 '볼티지의'를 지워도 좋다 = '엄청난 전율'. '엄청난 볼티지의 전율' 원문은 아무래도, '어둠의 다크니스' 같은 느낌이다.
  • '어머니는 순정파였다' 혹은 '어머니는 마음을 쉽게 바꾸는 사람이 아니었다'라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마음을 쉽게 바꾸지 않는 순정파'는 '부산역전앞'과 비슷해 보인다.
  • 마지막의 문장은 3형식으로 간추려 내거나, 다른 것으로 전체를 바꾸는 게 아떨까 생각했다. 같은 주격조사가 두 번 등장하는 문장은 그냥 지우개로 지우고 싶어지니까. 

  • '엄청난 볼티지의 전률', '어머니는 ... 씨니컬해져 있었다', '주말은 프리였다' - 외래어도 아닌 것을, 문체에 특정 뉘앙스를 묻어내려는 의도도 없이 '태연하게' 집어 넣는 건 읽는 고통을 더해 준다.

시작과 함께 걸려나오는 문장들. 난 이야기보다 문장에 더 신경쓰는 사람인가 보다. 그리고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너무 신뢰했다. 그래도 사기 전에 좀 뒤적거려 봤다면. 문장의 늪과 단어의 암초를 견디고 '류의 서사'까지 읽었다. 열한 쪽. 이 책은 당분간, 내 방 어느 곳에 놓아두기로 했다.


차라리, 구석 구석 어색한 번역이 있지만 '야구의 역사'가 더 좋은 문장을 가지고 있다. 문예서를 이긴 비문예 번역서라니. 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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