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청문회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
더 이상 시험으로 능력을 겨루어서 원하는 학교를 갈 수 없게된 도시민들은 가족을 분할하여 원하는 학교가 있는 학군으로 위장전입을 해야한다고 믿는다. 그것을 해내는 것은 능력자 그렇지 못하는 자는 무능력한 자로 분류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보니 그다지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살만한 도시민들은 자신의 아이들은 더 나은 나라의 국적을 세상에 나오면서 자동으로 취득할 방법을 고안한다. 그곳에 사는 동류들은 이를 위한 상품도 만들어내며 이와 같은 경향에 가속을 더한다. 역시 능력자와 무능력자의 구분은 확실해진다.
꼬박꼬박 통장으로 입금되는 월급만으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생각은 이제 상식이 되어서, 적절한 투자를 해야한다고 도시민들은 입을 모은다. 그것이 쪽방이라도 상관없다. 재개발이 되면 거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을 것임으로. 능력과 무능력을 넘어서는 투자의 기법은 경이롭기까지 한데, 투기와의 경계를 정확히 구분함에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투기는 공직자나 공직자가 될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이고, 공직자가 아니거나 공직자자 될 의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건전한’ 투자일 뿐이다.
위 세가지의 경향은 정상적인 월급을 상당기간 받아온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모습이다. 특정 지역의 특정 계층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떠벌리고 다니지 않거나 자신의 일거수가 타인의 주목을 받지 않아 사람들의 입방정에 오르지 않기에 스스로도 잘 알아차리지 못 하는 가운데, 정당한 자본시장에서의 행위로 포장된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더 큰 잠재이익을 거두고 있는 상위에 위치한 ‘능력자들’에게는 혹독한 도적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이러니깐 이 땅이 썩어가지!’라며 술자리 안주거리 삼는다.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모두들 손가락질에 여념이 없다. 그들은 물론, 보다 나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직에 진출 할 리 만무한’ 다수의 우리가 낮은 수준의 도덕성에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너와 나로 갈라 놓고 생각하기는 이제 그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하는 이유 – Jerry Royster
야구라는 것을 처음 관전한 것은 국민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 구덕운동장에 갔을 때였다. 아마도 롯데 자이언츠의 시즌 개막전 혹은, 연습경기였으리라.
사직구장을 처음가 본 것은, 어린이날 행사 때문이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그 구장이 다목적 운동장이었다는 것과 관중석이 기계장치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난 그라운드에서 친구들과 무슨 행사에 참여했던 것 같다.
야구에 열광하기 시작한 때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부터였다. 주형광 · 진갑룡 · 염종석 – 후배 · 동기 · 선배이다. 선한 얼굴에 미소를 항상 잃지 않았던 (그라운드에 흩어져있던 연습구를 바구니에 일일이 담아내면서 웃었던 주형광, 그는 바로 지난 주에 대통령배 우승의 주역이었다 – 하지만 다시 2학년 생으로 돌아와서 선배의 공을 챙겼다) 그들. 봉황대기 그리고 대통령배까지 우승을 석권하던 그 해, 우리학교 야구부는 나의 학력고사보다 그 때 나에게 더 중요했다.
95년 가을 야구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었던 그때를 지나 – 선배 동기 후배가 많았다는 이유로 좋아하던 롯데 자이언츠는 내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역동적이지도 않았고 본받을 만한 정신으로 무장하지도 않았으며, 음주사건이 연일 보도되었고, 롯데 간판스타들의 쓸쓸한 이적, 특히 혹사당한 주형광과 염종석 선배의 어깨는 나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888로 시작되는 일곱자리 비밀번호는 결국 완전히 관심사에 밀어내기에 충분하였다. (겨우 기억해 낼 수 있는 건 ‘이대호와 여러 난쟁이’라는 비하 가득한 조롱뿐이다)
그런데, 제리 로이스터(Jerry Royster)가 왔다. 그가 오고 모든 것이 변했다.
외국인 감독이라는 것으로 눈길을 끌었던 그,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뭔가가 달랐다.
no fear, never give up!
패배의식을 완전히 지웠으며, ‘꼴데’는 이제 비아냥이 아닌 지금의 훌륭함을 감사할 수 있는 거울같은 단어가 되었다. 국내 리그 어느 감독이 선수들과 크게 웃으며 승리를 자축하며 부등켜 안을 수 있는가? 그라운드에서 생기는 선수의 분쟁에 적극 개입하고, 선수의 좋은 경기에 덕아웃을 뛰듯 나와 제일 먼저 큰 웃음과 큰 박수로 반기며, 선수들의 연습공을 챙기고, 언어장벽 따윈 생각치도 않는다는 모습의 끝없는 대화와 토론 – 가끔 개그처럼 느껴지는 손짓 발짓과 가끔 육두문자를 내뱉으면서 까지 질타하고, 하지만 끝없이 선수들을 감싸 안으며 한 경기 한 경기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볼 수 없었던 ‘감독’의 모습이었다.
롯데에서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김민성은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불러 트레이드와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는 자기구단 운영팀이나 상대구단 운영팀에서 연락이 와 트레이드 사실을 알게 된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도 6번 트레이드될 동안 별의별 연락을 다 받아봤다. 우리 팀 매니저로부터 통보받은 적도 있고, 다른 팀 운영팀에서 연락이 와 알기도 했다. 감독이 직접 불러 트레이드 경위를 설명한 기억은 거의 없다
[출처] ‘6번의 트레이드’ 최익성의 회한과 교훈 |작성자 박동희
성난 눈빛으로 선수들을 노려보기만 하며, 사소만 잘 못을 해도 2군을 당장 강등시켜 버리고, 뒷구석에 앉아 수첩에 무언가를 적거나 손짓으로만 그리고 코치들하고만 신호를 주고 받으며, 경기에 져버리면 뒤도 안 돌아보고 성질난 얼굴로 뒷문 열고 돌아서버리는 뒷방 노인네 모습이 아니었단 말이다.
야구를 승부로 보지 않고, 인생으로 보는 한국리그 유일한 감독. 선수들 사이에서 ‘로이스터 감독이 연임되게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내야한다’라는 말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난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로이스터 감독이 있는 롯데 자이언츠 팬이다.
이제 나도, 투수의 四球 출루허용을 누구보다 싫어하고, 타자의 삼진과 병살타구를 무어라 하지 않는다. 수비수는 경우에 따라서 다양한 포지션에 배치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 눈 앞의 승수를 위해 선발이 혹사당한다면 침을 튀기며 화를 낼 것이다.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이후, 결국 말 뱉은 자들도 잘 못 말했다 싶을 정도의 음해에 시달렸다. 그리고 시즌이 막바지로 가고 있는 요즈음 언론에서는 적극적 흔들기를 하고 있다. 보지만 않을 뿐 실제하는 손이 거들고 있는지, 야구에 밥숟가락 올렸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그에 대한 거부감에 그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흔들기’가 한 번씩 느껴질 때 폐쇠적인 그들의 리그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로이스터 감독을 생각하게 된다.
롯데 자이언츠, 로이스터 감독이 있기에 이제 진정한 야구구단이 되었다. 이기기 위한 경기가 아니라, 팬들과 선수들과 함께 즐거운 경기를 하고 있다 – 그 속에서 그들은 승리를 찾는다.
팬으로서 난 그, 로이스터 감독을 아주 오랫동안 보고 싶다. 한국리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Chrome 6 – new look n’ feel
Chrome. 6 beta에서 look & feel이 보다 solid하게 변했다. 좋다.

google chrome에서 가장 빛나는 기능은 아마도, bookmark sync일 것이다. 여러 대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와 같이 반가운 기능은 없을 것이다. bookmark sync는 하지만, google bookmarks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firefox나 internet explorer에서 사용할 수 있는 google toolbar가 제공하는 google bookmarks는 아이러니하게도 google chrome의 bookmark sync와는 별도이다. bookmark sync는 google docs에 그 내용을 저장한다.
다행이 google chrome은 대부분의 linux 배포판과, mac os x, 그리고 microsoft windows xp 이상 모두를 지원하니 firefox 다음으로 다양한 platform을 지원한고 있다. 물론 (얼마전에 Oracle로부터 사형선고 받은) OpenSolaris, Solaris, Windows 2K는 지원되지 않는다.
홍성흔, 그의 부상
로이스터 감독이 김성근 감독이 아닌 이상, 홍성흔의 부상이 ‘경미한’ 수식어로 감춰지고 진정한 (인간미 없는) 타점기계로 혹사당할리 만무하다.
오늘 아침 야구 쪽에 숟가락 올려 놓는 사람들은 홍성흔의 부상으로
- 롯데의 4강 유지가 어렵겠다.
- 이대호의 7관왕 독식이 있을 수 있겠다.
- 홍성흔 없는 롯데와 이대호는 모두 좋지 않을 것이다.
로 축약되는 글들을 쏟아 내고 있다.
일단 난 롯데 자이언츠의 4강 유지, 3년 연속 가을야구는 관심에서 멀어졌다. 뜨겁게 응원하고 그의 큰 성공을 기원했던 나에게 그러한 數字들은 무의미해졌다. 홍성흔을 올해는 더 이상 타석에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중요하다. 우리는 SK식의 야구를 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물론 롯데 자이언츠의 일부 코치들은 사람 중요한지를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글에서도 인간 ‘홍성흔’의 땀과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보기란 쉽지 않다. 단지 짤막하게 ‘규정 타석을 채웠으니, 지명타자 부분의 골든 글러브는 무난하겠다’라는 모하비 사막같이 건조한 몇 어절의 한 문장이 고작이었다.
무관의 재왕, 그에게 우리 팬들이라도 멋지고 세상 누구나 부러워 할 왕관 하나 선물하였으면 좋겠다. 끝없는 관심, 멈추지 않는 성원 – 으로 만들어지는 큰 사랑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