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모이고 모여서 줄기를 이루다 결국 바다처럼 구분되지도 멈추지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거대한 짠 담수가 되어버린다. 너와 내가 구분되지 못하는 건 내가 개성을 잃어서도 당신이 특별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하나로 흘러들어 낮고 낮은 곳에서 만나 서로의 구분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아서이다.
하지만, 구분되지 아니하고 피부다 닿아도 느낌이 없다 하여도 아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럴 뿐이다.
2번째 시도와 8번째 시도를 넘어 16번째를 무시고 512번째가지 왔을 때에도 시도를 포기하지 못하더니 결국 이 모든 이치를 1024번째에서 절망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구분되지 아니하고 차이가 없다하여 나와 당신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 거대한 소금 가득한 담수가 되는 것일 뿐이다.
누구에게나 로맨스는 있고
누구에게나 행복은 있으며
누구에게나 고난과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있다.
가치측정은 무의미한 일.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세상이 존재하며,
낯선 곳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기 때문에.
72: 오늘 하루 수발신 통화 건수
147: 오늘 주행 거리
6: 오늘 새로 만난 사람 수
사람들은 제각각 스스로의 길을 제빨리 만들어 내어 오래 전부터 난 이 길 위에서 묵묵히 걸어 왔다는 식의 우쭐한 자세로 내일을 기약한다. 어제까지 동지였다고 생각했던 者들은 26시간 전까지 지켜왔던 명예 따위는 지금 점심값도 되지 않는다고 태워 연기를 만들었고, 이에 상응하여 실날같은 기대를 비추어 보았던 중립지대의 몇몇은 오히려 敵으로 돌변했다. 반들 반들 이쁜 사과는 맛의 승부 세계에 발을 딛일 수 없고, 진실의 세계에서 펴낸 금일백과사전은 출력소의 늦장으로 어제의 백과사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하루를 더 넘겼더라면 이름조차 애매해졌을 것이라며 만족의 웃음을 띄우는 편집국장은 곧 책상 위에 수두룩하게 쌓인 사표를 만나야만 했다.
나도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왜 나와 다르면 틀린 것이 되고, 나의 생각은 목소리 큰 무리에 일부가 되어야 하며, 그에 반하는 무리들은 모두 부정되어야 하는가? 논리적 思考는 도살장에서부터 적출되어야 하고, 공포와 연민과 위협과 비난 속에서 경직된 생각을 고수해야 하는가? 찬성과 반대 극단을 달리는 하나의 단어만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은 또한 만민 앞에 공개되어야 하는가? 위로부터의 살인적 독재적 행위가 끝나자 왜 아래로부터의 극악한 독재가 시작되는가? 무리의 목소리 뒤에 숨어서 폭력의 도구가 되길 서슴치 않을 때, 왜 의식있는 행동이라 평가되는가?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찬란한 봄의 향연을 4층 높이 2년간 닦지 못한 창밖의 - 건물 사이의 - 주자장 입구의 나선형 오름판이 보이는 - 짧은 햇살들의 조합으로만 느끼었다. 언제 한 번 공부하는 자세로 책상에 한 번 앉아 보지도 못한, 정서불안과 주의산만의 결정판인 내가 먹고 살기 위해 짤리지 않기 위해 덧없는 4과목의 시험을 준비하고 치루고 - 또 이렇게 월요일 새벽까지 책 앞에서 불안 불안해 한다. 나태함의 탄생기원이라고 찾아 내어 내 뼈 속까지 절어있는 이 기운을 도려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 편 나태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평온을 느끼는 - 익숙함임가 - 시간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1024시간을 투자했다면, 512분 정도 열중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며, 나의 밥 벌이에 충실할 수 있는 내가 신기하기만 하다.
대체로의 나라는 존재가 마음에 안들지만, 딱히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 또한 하기가 쉽지 않으니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