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허울, 돕는 사회는 허상

100명의 직원이 환경재해가 일어난 곳에 자원봉사를 간다고 언론에 보도까지 났다. 대부분의 그 봉사대의 직원들은 자신이 왜 강제동원 되어야 했는지에 대하여 짧게 고민하다 투덜거리다 ‘정말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라는 멘트를 날림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고 빼앗긴 시간은 휴일을 소비하며 보충해야 했다. 이 사회에서의 자원봉사라고 알려지는 것들 중에 정말 순수하게 받들어 질 수 있는 사건은 정말 몇 건이나 될까?

A라는 者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 요청을 받은 나는 허용범위를 다소 벗어날 듯 하는 한계를 보이며 그 요청에 응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처절한 실수. 그 이후의 A는 감사하다고 생각하기는 커녕, 지난 도움이 당연한 것이고 더 많은 것을 내어 놓지 않는다고 - 응당 그래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가진자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부조리가 80년대의 작품이라면, 오늘날의 유사 부조리는 가지지 못한자가 영민한 두뇌를 이용하기 시작하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가공하는 법을 익히면서 만들어지고 있다. 돕고 살자는 그런 사회를 만들자는 캠패인 따위는 허상이다. 능력이든 경제적 숫자이든 가지지 못한 척 나 또한 도움이 필요한 척하며 침묵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이 사회는 명랑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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