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귀가의 시간은 상념의 시간이다. 하루의 일 - 이 하루의 일들이 엮어내는 또 다른 시간 속의 끈들이 실타래가 되어 풀리고 뭉치고 가늘어졌다 사라진다. 시간의 감각은 상대적이고 무책임하게도 주관적이어서 붉은 신호에 멈추어서 있으면 상념의 깊이는 얕아지고 감각적으로 휘날려 썬루프의 틈사이로 연기가 된다. ‘오리’가 문득 떠올랐다.
冊을 사는 기준이 언제부터 표지 디자인에 좌우되면서부터 나의 독서에 대한 태도는 가벼워졌다. ‘라스 만차스 통신’.
새벽 03:18. 난 전화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이다. 잠든지 몇 시간되지 않아 처들어온 친구의 전화에 오늘의 잠은 날아가버렸고, ‘Publish’ 버튼을 누르면 출근할 작정이다. 인생이 계획된 큰 줄기에 벗어나지 않으려하는 관성은 무수한 일상의 변위가 빚어내는 생활불확정성의 원리 때문일 것이다. 작용과 반작용.
‘난 백조의 꿈을 꾸는 오리가 아닐까?’ 부조리와 불합리에 저항하는 것이 부질없음을 느끼는 건, 나의 존재 가치가 부조리와 불합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높은 분들보다 낮기 때문이다. 세상사 무게의 중심에 따라 가치와 철학이 수정되고 재평가 되지 않더냐.
오늘도 따뜻한 겨울이 연속될 것이라고 한다.
겨울도, 이 도시의 사람들처럼 제 값을 못하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