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목적의식, 몰이해를 바탕으로 한

노력하는 자에게 당할 자가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노력만 한다고 하여 좋은 결과를 내는 건 너무도 순수한 삽질 뿐이다. 사실 삽질에도 적절한 삽의 선택과 자세 그리고 일기(日氣)등의 조건적 좌우를 이해하면 더 잘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강한 목적의식을 가진 자에게는 ‘열심히’라는 표현을 스스로 쓰기를 꺼리지 않고, 주위에서 그와 같은 표현이 담겨진 말을 들으면 격려로 빠르게 받아드린다. 강한 목적의식을 가진자에게 가장 위험한건, 그러나, 현재의 과정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복잡 다다단한 구조를 바라보는 자신의 이해력 결핍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에게 ‘열심히’라는 것에 대한 ‘좋은 결과’는 모하비 사막을 전남 곡창지대와 같은 옥토로 변화시키거나 북극에 지난 30년간 녹아 버린 빙하를 원복하는 것과 같은 기적이 깃들어야 가능할 것이다.

어제 한 흥분되는 주제의 회의에서 지루한 토의를 지켜보면서 몰이해가 가져다 주는 재앙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생각했다. 그 재앙의 첫번째 단계는 부끄러움이었을 것이고, 두번째는 희망없음에 대한 회의, 마지막은 무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 왜 있나? 끊임없이 생각하다가 준비된 몇가지 이야기(정말 중요하고 핵심이었지만, 적당히 무시당했다 - 나의 지적이 받아드려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없었음에 ‘무시’와 다름 없었으며, 그것은 그들의 ‘무지’에서 시작되었음에 가타부타할 것이 못 되었다)를 강조없이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포함되는 ‘우리’라는 울타리에 조소(嘲笑)를 보내는 이들에게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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