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ng, 移事에 관한 斷想

움직이는 것은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보다 많다. 세상에서 움지이지 아니하는 건 아마도, 그 움직이는 거리와 시간에 대한 물리적인 단서들이 주관적인 관념보다 너무 느려 느끼지 못 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이 한 곳에서 살다가 다른 한 곳으로 사는 곳을 옮기는 행위는 문화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바탕에 따라 너무도 평범할 수도 일생의 항로를 변화시킬 만큼 중대한 의미가 될 것이다.

난 철들기 이전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 곳에서만 살았다. 한 목욕탕을 20년 가까이 주말마다 갔었고, 오래 전 어느 식목일 날 심어 놓은 花木들이 싹을 틔워 거대한 풍채를 가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한 나에게 이사라는 것은 앞 선 문단의 후자처럼 큰 일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사를 자주 다녔던 경험을 풍부히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취사 선택의 문제에서 결코 망설임이 없는 듯 하다. 필요하는 취하여 사용하다가 그 용도가 희미하여 지면 버리면 그만일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하여 그렇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은 버리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 두고 보존하면 그 용도가 곧 밝혀질 듯 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이사의 시작은 버리는 것에 있을 것이다. 오래 두어 먼지와 함께 어울리는 일 말고는 용도가 불명하거나, 새로운 곳의 살림에 보탬이 되지 않거나 필요가 없어지는 것들은 제대로 정리하고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사의 마지막은 빈 자리를 메워가는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내일이면, 이사를 한다. 좁은 땅을 가진 나라에서 아무리 멀리가 봐야 몇 시간이면 닿는 곳이겠지만, 그게 쉬월하지 않다. 버려야 할 것들을 골라 두었다가 다시 가져가야 할 것으로 둔갑하기를 몇 번. 결국 거의 모든 것들을 가지고 갈 듯 하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움직인다. 그것은 모든 변화를 읽어낼 중대한 증거일 수도 있고, 물리적인 증거들이 단순한 ‘이동’이라고 지시할 수도 있다. 난 이런 움직임들이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나의 작은 행사인 ‘내일의 이사’에도 그러한 의미가 담겨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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