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앞에서 시작된 선동

계층은 나뉘어진다. 계급투쟁을 하나의 중대 과제로 채택한 공산당 혁명도 새로운 계급을 생산함으로써 실패의 시간에 가까워졌고, 어느 인류사에서도 어느 동물집단에서도 심지어 식물들의 개체군에서도 계층은 엄연히 존재한다.

인류사에서 계층 혹은 계급으로 불리는 것이 문제가 될 때는 계층 그 자체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계층이 불합리한 소통구조를 만들어버리고, 적절하지 아니한 방법으로 견고히 되었기 때문이다. 계층 그것이 존재함으로써 문제가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최근, 여당의 중요인사들이 어린 아이들 교실로 들어가 계급투쟁에 나서길 종용하는 홍보를 하는 듯 하다. 대상은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이며, 투쟁의 대상은 서울 강남권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다. 그들의 발언을 아무리 침착하고 냉정하게 곱씹어 생각해 보아도, 문제의 근원에서 많이 벗어나 말한다는 느낌이다. 전제를 부정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을 없애려 하는 것보다, 전제되는 문제를 인정하고 소통의 방법으로 융합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통령의 신년 화두에서부터 여당 중요 인사들까지 오늘 앞 다투어 말하지 아니하면 안될 ‘양극화’가 실재로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고, 그러한 논리에 따라서 서울 강남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악의 축으로 내몰리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말들이 사실이라고 하여도, 어린 아이들에게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일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도 나도 그 누구도 어린 아이들에게 지금의 우리 생각이 무엇이든 동조하게끔 조정하고 강요하는 행위는 나쁘다.

또한, 여당의 인사들이 어린 아이들 앞에서 적대 의식을 심어주는 듯한 발언은 솔직히 부끄러운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들의 행동이 밝은 내일을 가리키는 아름다운 선동이라고 하여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사기’인 선거가 너무 앞에 다가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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