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의 작은 소동

11월 11일 저녁 지하철. 난 그 시각이 12월 24일 이라든지, 뭐 그런 날로 착각할 뻔했다. 언제부터 11월 11일이 명절이 되었을까? 아무튼, 이 험난한 통조림과 같은 지하철에서 난 앉았으니 언덕넘어 재식전투 보기처럼 지하철 안을 감상할 수 있었다.

SCENE #1

30대 중반의 얼굴을 한 한 남자가 내 앞에 섰다. 역한 냄새를 풍기며 검은 정장에 우끼는 회색 조끼에 오랜지색 YEPP을 목에다 걸고 코미디 영화에서 나올법한 어색한 퍼머 머리를 하고 있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휘청 휘청거리며 서서 졸는 것이다. 자신이 휘청거리다 누군가에게 부딛히면 사과하여야 마땅할진데, 오히려 욕지거리를 하는 것이다. 들릴 듯 말듯 모기소리로. 예를 들자면

‘이년아 전화 끄고 똑바로 서 시발’
이라든지,
‘아 이 새끼 4개월만에 사고치게 만드네’

라든지 전혀 위협적으로 들리지 않을 억양으로 말이다. 하지만, 표정은 아주 진지하다. 더 재밌는 건 한 번도 눈을 마주치면서 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하철은 점점 통조림이 되었고, 결국 그 이상한 30대 중반 남자가 하는 욕 비슷한 욕은 누구에게 향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굳이 그런 것을 신경쓰면서 타인의 행동에 관심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은 무시함으로써 그 상황을 비켜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SCENE #2

그 남자의 모습이 심심하였던 나에게 일종의 재미를 주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사건이다. 사람이 조금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그 남자는 다시 만세 자세를 하면서 서서 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여지 없이 뒷편 사람과 부딛혔다. 뒷편 사람이 신문을 펴고 있었다는 사람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다시 욕을 하기 시작했고, 욕과 동시에 코를 팠다. 코딱지를 튕기는데 거의 나를 스치듯 지나갔다. 이 순간, 그 남자가 ‘4개월 전에 친 사고’는 코딱지로부터 기인하였을 것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렸고, 재사고가 임박했다는 것을 나의 불쾌함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SCENE #3

그리고 몇 정거장을 지났을까? 난 그 남자를 관찰하는데에 너무 피곤한 나머지 - 집은 너무 멀었고, 지하철의 용존산소량은 너무 적었다 - 잠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옆자리 아줌마의 전화기 수다에 깨어났을 때 그 남자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당연 나도 같이 쳐다봐 주었다. ‘대가리’를 나에게 거북이처럼 쭉뽑아 쳐다보는 꼴 앞에서 무시 때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말을 걸었다. 이럴 땐 적당히 반말과 존대말을 섞어 주어야 한다.

‘이봐, 왜 쳐다 보나요?’ 라고 하자,
‘아씨, 쳐다보면 안되?’ 라며 거북이 ‘대가리’를 치웠다.

역시 모기소리에 풀린 눈에 자신감 결여된 발언이었다. 술 취함김에 한 번 지르는 모양이다. 잠시 같이 눈을 맞추어 주다가 내가 빈정거리는 모양으로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거만한 앉은 자세’로 전환하고 다시 한 번 쳐다 봐 주었다. 그리고 계속 실룩실룩 웃어주었다. 나도 사는 게 꿀꿀한데 너라도 나에게 즐거움을 주신다면 기꺼이 응하겠다는 생각에 다시 눈을 맞추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 남자 주섬주섬 문쪽으로 가더니 지하철이 정차하자 내려버렸다.

… AND

그 남자 내릴 때가 된 것일까? 아니면 응대하는 상대가 적절하지 못하여 피해버린 것일까? 나의 불쾌함을 남겨두고 무책임하게 가버리는 건 예의가 아닐터인데. 집에서 찍소리 못하고 회사에서 상사에게 항상 눌려 살다가 술의 기운을 빌어 지하철의 양아치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그냥 가시는구나. 약지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가 아깝다. 나가 죽던지 ‘4개월만에 사고 쳐’ 감옥으로 투항하여 지난 30여년의 인생을 하나씩 복습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죄송하지만 ‘쓰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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