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September, 2005
return of my ThinkPad
A/S 완료.
ThinkPad 살아서 돌아옴.
모든 설정 사용자에 맞게 변경 마침.
금단현상 종료 – 그간 읽은 책 총 4권; 장하다.
desktop은 여전히 죽음 유지장치에 의존하여 현상태 고수.
desktop 부활 project를 가동하기엔 투자비용 산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
BLOGGING 가능!
E995 디지탈 카메라 메모리 비울 묘안을 생각해 내지 못함.
notebook은 절대적 업무용, desktop은 절대적 유희용이라는 정의를 깨어야함.
하지만, 나의 오래된 원칙을 변경하기엔 아직 나의 심리가 완고하게 작용하고 있음.
우주의 시작과 우주의 끝으로 연결된 worm-whole을 통하여 전달되는 시간 파장 해석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리학적 실마리가 불확실하고 강한 우연의 작용으로 지구로 떨어지는 명백한 확률적 계산이 가능할 때 이 원칙을 무너뜨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으며 함.
정리하자면, 결백증과 강박관념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음.
노동의 강도
지식 노동자라고 하여, 육체적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게는 치질에서부터 복부비만, 보행능력 감퇴, 시력저하 등등이 흔하게 일어나는 것들이다.
나의 직업은 하지만, 지식을 바탕으로하는 노동이 맞긴하지만, 상당한 육체적 노동도 뒤따르게 되어있다. – 앞서 예를 든 것들은 조족지혈에 지나지 않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 하나의 예로, 900Kg의 컴퓨터가 쓰러지지 않게 빠르게 대응하는 허리힘이라든지, 오늘처럼 10시간 가량 전후좌우 약 1평방 미터의 좁은 곳에 곧게 서서 손가락 놀림으로 작업에 임해야 하는 환경을 들 수 있다. 내가 잠시 앉거나 짧은 거리라도 걸을 수 있었던 시간은 대략 1시간 즈음 된 거 같으며 그 것은 저녁을 먹기 위해 이동하고 식탁에 앉은 것이다.
노동의 강도는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수리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강도이며, 나머지는 분명 심리적 강도라도 할 수 있다. 전자에 해당되는 강도는 분명 몇년 전과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지만, 후자에 해당되는 것은 그 배가 된 듯 하다.
방향성과 힘의 강도가 일정한 어떠한 작업에 임하였어도 신체적 고통을 느끼는 건 특정 부위였을 뿐이었다. 오래 서 있으면 그저 다리가 아프다든지, 물건을 많이 나르게 되면 팔이 아프다던지, 드라이버질을 연속적으로 하면 손목과 그 부위들이 아프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그 방향성과 힘의 강도와 신체 특정 부위의 놀림과는 상관없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쑤셔오는 것이 영 심상치 않다.
난 의심할 여지 없는 지식 노동자이다. 지식의 얇은 부분을 건널 때면 가슴을 조리며 목숨이 달아나지 않길 기도하며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니, 그리고 그 누가 보아도 그러함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나의 두뇌가 행하는 연산의 속도와 범위와 폭이 저하되는 속도에 제곱비례하여 체력이 받쳐주지 못함에서 오는 숙련도 저하는 아이러니하다 하겠다.
Band of Brothers
DVD를 구입한다는 행위에 대하여 회의를 느낄 때는, 사 두고 장식용으로 사용할 때이다. 나에게도 많지는 않지만, DVD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 중 3할은 회의를 느끼게 한다.
그렇지만, 그 중 (다시) 3할은 레이저가 알미늄 판박을 긁어 버릴만큼 (난 과장함에 부끄러움이 없다) 자주 보는 것들이 있는데 Band of Brothers가 그것에 속한다.

Band of Brothers는 유명한 TV 시리즈 외화 중에 하나임에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 내용과 배경과 등장인물 심지어 제작 배경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시리즈물을 이 토록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을 사랑해서도 2차 대전의 역사적 고증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어서도 넘쳐나는 시간에 대한 오락물로써 선택함도 또한, 범부들이 흔희 택하는 수법인 영어공부를 위해서도 아니다.
삶이 치열하다고 싶을 때, 그럴 때가 있다. 실연에 대한 이야기가 그러할 수도 있고 사소한 타툼으로 마음의 상처가 점점 커질 때도 그러하다. 나의 최근 생활은 (오 신이시여 그동안 너무 나태했던 탓이옵니까?) 적절치 못한 수면과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환경과 상식에서 벗어난 업무와 휴일없는 근무와 – 무엇보다도 – 이 모든 상황을 평범한 일상인냥 받아드려야 하는 나의 입장이 뒤범벅되어 진행되었다.
Band of Brothers는 보통 이러할 때 보게 된다. 지난 2주 동안 하루에 한 편 정도 귀가 시간에 상관없이 시청하였다. 오늘은 마지막 Bonus Features의 Making… 부분을 봄으로써 다시 한 번 전체 관람을 끝냈다. 나의 치열함은 아무것도 아닐 그들의 몇년간의 기록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의 행복은 상태적이라고 한다. 사실이다. 나의 고통도 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교재하여온 많은 친구들이 나의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동떨어진 현실에 내가 방치되고 있다고 느껴질 때 난 다른 비교 대상을 찾아야 한다. 혹은 무시해야 한다.
무시하는 일은 (아직 젊디 젊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힘들어지고 다른 대상을 바라보면서 나의 위안을 찾는 것이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Band of Brothers는,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도, 잘 만들어진 전쟁영화이다. Winters에 관한 개인 이야기가 될 수 없고, Nick에 관한 사적인 기록이 될 수 없을 E Company 소속 대원 모두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이다.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보게된 Band of Brothers. 여러 번 보았음에도 눈물이 필요할 만큼 감동적이며 사실적이다. 그들 중에 한 명이 되고 싶다는 생각 또한 변함이 없다.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임무를 하는 평범한 대원이고 싶은 것이다. 헛된 시간 속에 쓸모없는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보다 말이다.

난 사실, 누구보다도 Nick이 좋다.
Dick은 Nick을 [ru:]라고 부른다.
시간은
시간은 사람의 감정을 무디게 한다.
버스 창밖 지근거리에서 목격한 무명인의 죽음 또한 이제는 그 피빛마저 흐릿하고, 도살장을 뛰쳐나온 돼지의 울음소리가 어떠하였는지 정확히 말할 수 없다. 첫사랑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웠다’라는 다섯 음절 이상으로 설명할 수 없고, 수년전 하루의 삼분지 이의 노동과 개월당 단 일일도 되지 않았던 휴일수를 숫자로 기억할 뿐 그 때의 고통을 다시 상상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