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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넘기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혹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끝없이 던지게 되었다. - 아, 벌서 몇년째인가? 스스로에게 미안하다 아직 질문만 하니.
사실, 이제 갖 사회를 느끼는 후배녀석들에게는 1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인생담론을 펼칠 수 있지만, 고즈넉한 시간에 즐겨듣는 음악을 켜 놓고 자신과의 대화에 임하면 10분은 고사하고 5분도 견디지 못한 생각의 흐름은 흩어지게 된다.
추상주의와 구상주의의 영역을 굳이 구분하여 이러쿵 저러쿵한 기억이 있다. 사실 그 모두는 하나의 현상과 하나의 발현에 기인하고 수렴됨을 인지하지 못한 짧은 시각에서 들어난 평가였다.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하였던,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몰입도 이런 인지바탕의 빈약함으로 잘 못 된 결과를 가지게 되었다.
추구하고자 함이 흐리면 어떠하고, 가고자 하는 목표이 명쾌하지 아니하면 어떠한가? 짧은 문장으로 풀어 타인에게 설명이 가능한 정도라면, 그리고, 궁극의 방향이 한결 같다면 만족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은 31,250원을 지출해야지! 라고 계획하는 건 어리석은 일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