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집단의 노동총량

어느 시대든 어느 사회이든 하나의 모집단(母集團)의 노동총량은 같다.
오늘 같이 편리한 세상이 되었어도 그러함은 변함이 없다.
당신이 은행업무를 본다고 가정하자. 예전에는 번호표도 없이 창구 앞에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려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은행에 가기 위해 1시간 즈음은 걷거나 교통수단을 이용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친구들과 술을 나누며 이동전화기로 숫자를 찍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당신의 은행업무의 노동량은 비교하기가 부끄러울 만큼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을 만들고 가꾸고 유지하기 위하여 당신이 상상할 수 없는 인원과 자원과 시간이 투자된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말이다.
즉, 다수의 줄어든 노동량을 임의의 소수가 부담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임의의 소수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이 업계에 부푼 꿈을 안고 진입하고 청춘의 일부를 소진하고서 지난 날 부풀었던 꿈은 한 낱 허망의 세월만을 안기어 주었다는 사실에 후배들은 침울해 하고 이 좋은 세상 왜 이럴까? 하며 줄담배를 피길 마다하지 않는다. 그 때 나는 ‘어느 사회학자의 말인데 말이지…’ 로 위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런 이야기는 그 후배들과 나의 현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한번 넓게 조망하고 나면 그렇게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는다는 이상한 주관적인 통계가 있다. 물론 위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과적으로 사적인 예(例)를 겯뜨리기를 난 주저하지 않는다.

사실, ‘어느 사회학자…’ 라고 붙인 것은 거짓이었다.
이 일을 시작한지 4년이 넘었을 때 문득 너무 숨가쁘게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 보다가 정리된 나의 생각이었다. 4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난 ‘중요하고 거대하고 긴요한’ 그 무언가를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자부하였지만, 지금은 그저 다수의 줄어든 노동량을 충당하기 위한 ‘대체 인력’이라는 생각이다. 재미나게도 나 스스로를 ‘중요하고 거대하고 긴요한’ 존재로 여길 때보다 ‘대체 노동인력’ 이라고 치부할 때가 마음은 더 가볍다.

‘인생 뭐 있어?’ 라며 술 한 잔 기우리면 즐거웁지 않더냐?
‘난 중요한 사람인데…’ 라며 골방에 밖혀 인생의 잘 못된 순간을 일일이 만들어내고 곱씹으며 신세 한탄하는 것보다 말이지.

One Response to “모집단의 노동총량”

  1. 1
    jhin. Says:

    그렇다 난 지금 퇴근하여 집에 온 것이다. 불특정 다수들이 깨어 있는 시간 동안 위성을 통해 수신되는 흥겨운 엔터테인먼츠를 위해 당신이 잠든 사이에 일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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