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

그냥 모든 것을 그만 두고 전세금 퇴직금 가지고 여행을 떠날까? 돈 떨어지면 돌아오는 것이지. 혹은, 돌아오지 않던가. 가만히 생각하면 나, ‘잘 한다’ · ‘좋다’ · ‘너 아니면 안된다’ 라는 사탕발린 칭찬에 너무도 취해 있었어. 그런 말의 이면에는 나를 더 이용해야 겠다는 복선이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싫지 않았던 것은, 따돌림 당하고 있는 아이가 자신에게 조금의 관심을 보여주는 가해자에게 미소를 띄우는 것과 다름이 없었던 것이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 잃지 않았다는 것. 능력이라는 것은, 너무도 상대적인 가치일 뿐. 내가 유지하고 내가 행하는 무엇이 나에게 행복과 성취를 그리고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면 잃어버리거나 무능력의 상태에 돌입하거나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살아간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들의 기억의 범주 내에서 존재한다는 것. 타인을 의식함으로써 생기는 생존과 유지와 연속에 관한 의무. 어쩌면 너무도 허위에 가깝지 않을까?

내가 조금만 더 똑똑하거나 조금만 더 멍청하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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