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는 집.

국민학교 때부터 내 방을 가지고 살았던 나에게 방의 의미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국민학교 친구들이 내 방이 있는 것으로 보고 부러워하고 때론 시기를 받았던 것을 그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 난 대체로 병약했음에 학교와 집 이외에 갈 수 있는 곳은 병원이었다 그래서 아주 친한 친구 말고는 타인들의 처지에 눈이 어두웠다. 그 때의 나의 방은 정말 아름다웠다. 양옥 실내계단으로 이어지는 2층에 차지하고 있던 내 방은 배란다 낭간에 메어달린 담쟁이 넝쿨과 남향의 아름다운 햇살 그리고 아랫층의 소음에서 적당히 벗어나는 구조였다. 기억이 맞다면 언제나 밝았고, 그 집의 2층은 모두 나의 것이었다. 2층에는 방이 두개였다. 늘 벽에 그림 - 부모님 입장에서는 낙서 - 를 그려서 혼난 것 말고는 2층 생활은 좋았다.

고등학교 즈음 되었을 무렵 문득 독립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 잡혔다. 그리고 그렇게 - 독립 - 된다면, 내 방 아니 내 집을 요새(要塞)처럼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심지어 방의 배치도 까지 그리고 꼼꼼히 점검했으니까.

이상한 공대에 우연하게 다니게 되었을 무렵, 현실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숫자(數字)와 수치(數値)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전공은 아니었지만, 내가 나의 집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은 작은 위안이 되기도 하였다. 시간이 있을 때 몇가지 흥미로운 일들과 장난거리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나의 노트 몇몇 귀퉁이에는 항상 내가 살고 싶은 집의 평면도와 입면도가 그려졌다. 하지만, 그러한 관심은 고작 대학에서의 두 학기가 끝났음에 집에서 더이상 등록금을 준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리면서 나의 뇌리 속에서 차지할 공간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한 자각은 휴학과 취직과 야간으로의 복학과 몇번의 추가적인 휴착과 늦은 졸업이라는 고리를 만들내어 오늘에 이르게 하였다.

10년 내가 경제적 독립을 한 것은, 5년 부모님과 더이상 같이 살지 않게 된 것이. 어찌되었든 철들 무렵부터 꿈꾸던 나의 방 혹은 나의 집은 가지게 된 건 사실이다. 이해할 수 없는 보증금과 엿같은 월세의 저울질을 떠난다면 구색은 갖춘샘이다. 사춘기 때 꿈꾸던 요새도 아니고, 대학 때 그려보던 살고 싶은 집도 아니다. 종전에 살던 곳에 여자친구가 찾아와 말을 잇지 못함에 드러나던 실망감은 결국 헤어짐으로 이어졌다. 사는 곳은 경제적 사정 그리고 사회적 위치 또 그리고 개인적인 취향을 여실히 드러내는 설정임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러했다. 지금도 그 때와 다른 것은 평수가 조금 늘어났다라는 것 제외하면 종전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출근시간이 약 두 배 가까이 걸린다는 사실은 절망에 가깝지만.

아직도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설계하며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사실 이럴 때는 저주하고 싶었던 공학사 학위 아래로 적혀 있는 전공이 고마울 때가 있다. 이전과 틀려진 것이 있다면, 연필과 오구가 마우스와 키보드로 대체된 것 뿐이다. 학교를 다닐 때만 하여도 나 또한 아버지처럼 아버지의 나이가 되면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지금 그 때의 아버지의 나이와 오차 범위내에 나의 나이가 위치해 있지만, 집은 커녕 월세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들면 순식간에 지난 한 달 동안 설계해 놓은 나의 미래의 집은 Shift + Delete 라는 키조합으로 순식간에 지워진다.

지난 주말 집을 정리해 볼까 하면서 게으른 내가 이리 저리 움직였다. 4시간을 그렇게 움직였지만, 상황은 더 안 좋아 보였다. 구석진 곳에 쌓여 있던 책들을 다 꺼내어 보니 온 집안은 먼지로 가득했고, 얼마 안 되어 보이던 책들은 산 더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 난 순순히 하던 일을 포기하고 배를 채우고 게임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애써 상황을 외면해 버린다. 난 이러한 나를 낙천적이라고 평가하고, 지인들은 숨이 막히는 듯 눈만 동그랗게 뜨곤 아무 말도 못하는 것 같다.

집은 구차하게 안락, 휴식, 가족, 재충전 같은 근본적인 문제만을 내포하지 않는다. 예전의 여자친구의 어의없는 반응처럼 경제적 능력, 사회적 위치, 개인적 취향 등을 포괄적으로 담아 내는 무언의 설명인 것이다.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위치는 그렇다 치더라도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 마저 집에 묻혀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끔 나의 어떤 것을 표현하거나 향유하고 싶을 때에는 적당한 크기와 이웃간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위치가 그것을 막고 있다.

오늘 문득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의 집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늘 자기가 사는 집이 어쩌구 저쩌구 해서 거지같다고 불만이 항상 많았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본 나로선 ‘어~ 정말 그래네’라고 짧게 말하고 화제를 재빨리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의 집 이야기를 계속하다가는 그 사람에게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오늘 이른 시각에 성장사까지 끄집어 내면서 집과 사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어쩌면 현재 사는 곳에 불만이 많았던 한 사람에 자극받아 정신 못차리는 ‘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 하고 싶은 말은, 거주함에 드는 비용은 너무도 많이 들고 그 비용을 감당해 내기엔 연봉의 인상률은 절망에 가까운 수치라는 것이다. 사실 뭐, 기아자동차 노조가 아니고선 별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내 인생에서 작은 바램이 있다면, 내가 살 집은 내 손으로 지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설사 꿈 같은 이야기에 실현 가능성이 지난 한 해 국내 증시처럼 바닥을 치다 못해 끝을 알 수 없는 추락에 가까울지라도.

소망함에 실현에 대한 가능성도 높아지지 않겠는가? 뭐, 또, 현실적인 문제가 덫을 놓고 기다린다면 어쩔 수 없이 발 한 쪽을 내어주고 잊어야 겠지만.

2 Responses to “집. 사는 집.”

  1. 1
    kuma Says:

    Que será ser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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