憶
앞으로 걸어가다 기억에 걸려 주춤 주춤거린다.
잠시 옆으로 피해 조금만 돌아서 다시 앞으로 가려하는데,
이번엔 추억의 파편들이 내 등에 매달린다.
마음을 가슴을 들었다 흔들고 놓았다.
이 즈음에, 그래 그것들이 있었지 - 라며 잠시 쉬기로 하는데,
기억이 변하고 추하고 추억이 부끄럽게 옷을 벗는다.
하나는 잊고 둘은 모른 척하고 셋은 구석에 밀어 넣는다.
앞으로 걸어가다 기억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다 추억에 잡혀
서울사는 陳氏의 하루
앞으로 걸어가다 기억에 걸려 주춤 주춤거린다.
잠시 옆으로 피해 조금만 돌아서 다시 앞으로 가려하는데,
이번엔 추억의 파편들이 내 등에 매달린다.
마음을 가슴을 들었다 흔들고 놓았다.
이 즈음에, 그래 그것들이 있었지 - 라며 잠시 쉬기로 하는데,
기억이 변하고 추하고 추억이 부끄럽게 옷을 벗는다.
하나는 잊고 둘은 모른 척하고 셋은 구석에 밀어 넣는다.
앞으로 걸어가다 기억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다 추억에 잡혀
2008년을 지나와서 기억에 남는 것만 추려 기록으로 남긴다. 사와서 몇 번 들어보지도 못하고 어딘가에서 먼지만 먹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샀다는 사실 조차 잊게된 것들에게 심심한 본전 생각을 전하며, 극장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문화인으로서 그리할 수 없었던 몇몇 영화들에게도 울분의 본전 생각을 전한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놓친 영화들에게 안타까움을…(놓친 영화가 더 재밌어 보이는 법)
여전히 매스 미디어와는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잠깐 TV수신기를 붙혀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 보았지만, 얼마 가지 못하여 떼어냈다. 예상대로 잊혀져야 할 뒷집 식구들은 여전히 방을 안빼고 있었고, 좌우로 구분해야 할 줄서기를 앞뒤로 구분해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새로 이사 온 앞집 식구들이 잘하고 있는 모습을 찾아 보기도 힘들었다. 세상사 이렇게 혼잡하게 돌아가는 데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는 내가 굳이 알지 않아도 괜찮을 듯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안다고 하여 달라질 것도 없어 보였다. 80년대와 함께 사라졌어야 할 실체없는 유령들이 광화문을 누비고 있는 동안은 그저 음악이나 듣고 영화나 보다가 월급에 충실하게 살면 그만인 것이다.
유소년 시절, 일 주일이 죽었다 깨어나도 다가오지 않을 것 같아 안절부절이었는데, 오늘의 일 년은 봄 방학보다 짧게 느껴진다. 사실 위에 적어 넣을 음악과 영화에 대한 목록이 한 참 길었는데, 조사해 보니 2007년 심지어 2006년에 산 음반과 그 때 본 영화가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숙제이다. 버릇없는 아랫것을 다루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고, 일 못하는 상급자의 터무니 없는 지시에 적절히 대응하는 법 또한 배우지 못했다. 결국 하릴없이 그냥 하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하였고, 가족과의 유대도 간신히 연락받음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일 일 일도 못하는 녀석이 매일 일 타령이다.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혹은 스스로 나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난 끝없이 일에만 매달리는 바보가 되었다. 작년 이맘 때 내년에는 그러지 말자는 다짐을 했것만.
여전히 인정받고 싶을지언정 기대받고 싶지는 않고, 사랑이라는 굴레가 이유없이 타인의 이야기로만 생각된다. 행복의 기준은 모호하고 무엇을 위해 어떤 것을 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만 잘 하려는 안주가 나의 2008년 대부분의 시간을 채워버렸다.
good-bye 2008. 다시는 만나지 말자.
조금만 힘을 가지면, 청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금만 힘을 가지면, 청탁을 거드름 피우며 받아들여 자신의 지위를 과시한다.
조금만 안면이 있으면, 청탁을 하려한다. 이것의 성공여부가 유대의 가늠자가 되고 능력의 기초평가가 된다.
조금만 안면이 있으면, 그와의 유대를 미끼로 사람들을 농락하려 한다.
들이대기가 힘들면, 연신 굽신굽신 거리며 발가락이라도 빨아줄 태세이다.
들이대기가 실패하면, 세상에 동원할 수 있는 (그래봐야 얼마 없지만)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갖추어 그를 매장시키려고 안달이다 - 이런 치졸한 행위에 쏟을 시간과 노력을 미리 했다면, 세상의 옳은 질서 속에서도 안될 것이 없었을 터인데.
술과 연줄과 청탁과 원칙 위배가 성공의 열쇠가 되는 이 땅의 직장문화,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기반되는 한국사회의 구성방법. 이 것들에 익숙해지고 이 것들 틈에서 스스로 행함에 주저하지 않을 때 어떠한 거부감도 없을 때 비로소, 사회인이 되는 것이다 건실한 成人이 되는 것이다. 원칙과 소신 그리고 도덕률은 이미 난지도와 함께 지하 깊숙히 묻혀 버렸다. 흔적을 찾으려면, 시간을 逆으로 돌려 돌려 돌려 돌려 돌려 돌려 돌려 보아야 한다,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어려울수록 善業 쌓아야 禍가 福으로 돌아와 - 법정 스님, 동아일보
- 참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이것이 제 업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불교에서 ‘사바세계’란 ‘참고 견뎌야 할 세상’ 또는 ‘겨우 견딜 만한 세상’을 말합니다. 세상만사가 우리 뜻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이 때문에 인간들이 노력을 하게 되고, 여기에 삶의 묘미가 있지요. 또 힘든 일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인간이 더욱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 인간은 왜 그렇게 종교에 집착하고, 절이나 교회를 떠나지 못합니까.
“모든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 내 종교입니다. 절대 종교에 얽매이지 마세요. 특히 종파적이고 원리적인 종교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불교든 비(非)불교든 자기 종교의 좁은 길로 가지 말고 크고 넓은 보편적인 신앙의 길로 가야 합니다. 종교적 주관은 잃지 말되, 신앙생활 한다는 냄새는 피우지 마세요. 종교 때문에 가족 친구들과 다퉈서도 안 됩니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 法名이 있었고, 기억을 두둘겨 보니, 절간에 ‘잛게’ 기거하면서 정진하는 척을 했던 적도 있었다. ‘사바세계’가 원래 ‘겨우 견딜 만한 세상’이라니 위안이 되고, 노력하지 않아도 종교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나의 주관적 방탕함에 비웃음일지언정 입술을 실룩거릴 일이 있어 좋다.
세상, 보는 방향과 거리에 따라 많이 다른가 보다.
내일도 ‘참고 겨뎌야 하는 세상’ 속으로 뒷걸음치며 접어 들겠지.
믿음이란 얕아 보이는 바다와 같다.
- 난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