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26, 2016

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장면 장면 ‘박찬욱’이라고 외친다. 내가 사랑하는 감독, 봉준호 감독은 반면, 재밌지? 나도 재밌게 만들었어! 라는 느낌이다. 이번 영화는 박찬욱이 '박찬욱'을 덜 외친 영화이다.


아가씨를 봤다.
엄청나게 아름다운 장면에 거의 압도되었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김민희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배우인지 여실히 들어낸 영화였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재밌다.

아가씨를 봤다.
너무도 친절해진 감독은 ‘박찬욱, 박찬욱’을 살짝 감추는 대신 불필요하게 친절해진 면이 있었다. 그렇다, 조금 지루했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그의 영화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쥐’ 뒤로 이 영화로 놓을 수도 있겠다. ‘아가씨’와 경쟁해야 하는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이다.

아가씨는 멋진 영화였다.
연출도 대사 한 마디도 컷과 컷 사이 스쳐지나 가는 백작의 말아 피운 담배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불필요하게 배치한 장치 하나 없이, 작고 큰 의미가 가득한 멋진 영화였다. 그 멋진 부분들 사이를 가장 아름답게 채워낸 것은 김민희의 연기였다. ‘화차’ 이후 그녀는 우리 영화사에 이름을 남길 준비를 마쳤고, 아가씨는 아주 오랫동안 김민희라는 이름과 함께 분명 언급될 것이다.



원작 소설, '핑거 스미스'를 읽고 있었다.
난 영화를 보기 위해서 책을 먼저 읽으려고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팟캐스트, ‘빨간책방'의 ‘핑거 스미스’ 편도 아직 듣지 않았다. 책을 모두 읽고 영화 보고 팟캐스트를 들으려 했다. 하지만, 책은 다 읽지 못 했고, 영화를 봤다 - 이번이 아니면 극장에서 못 볼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혹은 내가 너무 게으른 나머지 완독하지 못 할 것만 같았다. 원작 모두를 읽지는 못 했지만, 영화는 참 원작을 잘 각색했다는 생각을 했다. 간결하게 필요한 부분을 적절히 가져와 재가공하여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시켰다. 일제강점기로 시대를 이동시킨 것부터 일어와 국어의 혼용, 숙희 · 옥자 · 타마코 그리고 각 인물의 처한 현실까지 과감한 각색과 연출을 행한 박찬욱의 승리였다. 그래서 난 박수.

참, 봉준호 감독의 다음 영화는 '옥자'이며 내년 초에는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진출처: 영화 아가씨 공식 홈페이지)

Friday, June 17, 2016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Warcraft: the Beginning (2016)

원작이 있는 영화가 꼭 원작을 따를 필요는 없다. 영화는 원작을 모르는 관객도 상대해야 하고, 특히나 원작이 매우 방대하고 복잡하며 팬들 조차 해석에 따른 의견이 분분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극장에서 상영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적당히 잘라내고 중요 사건을 부각시켜 극적인 재미를 배가 시키는 것이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는 것이 또 다른 버전을 탄생시키는 - 그러니까, 재창조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관람하는 입장에서도.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이런 관점에서도 완전히 망한 영화이다. '워크래프트 팬들은 만족하겠지만…'이라고 누군가는 평론에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열렬한 팬인 나는 차원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실망했다.

이것은 영화이고, 앞서 말한 것처럼 각색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단 원작이라고 불러야 하는 ‘워크래프트: 오크 對 휴먼’부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드레노어의 전쟁군주’까지의 게임 스토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팬의 입장에서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속에 넣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게임은 게임이고, 영화는 영화이니까. 물론 소설도 있지만, 게임을 이끌거나 그 뒷 이야기를 다듬는 역할이니까...



그래도,
워크래프트 세계관의 절대적인 악의 축 역할을 하는 '간악한' 굴단이 너무 얕게 나온 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드'와 '얼라이언스'의 성립에 대한 설명도 없이 너무 빨리 그 설정을 가져다 쓴 것은 실수에 가까웠다 - 보통의 관객은 '오크'에 익숙해 지려 하는데 난데 없는 '호드'의 등장에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미국식 영화에서 흔하게 나오는 '엄청난 일을 겪다가 한가해 지면 센티멘탈해져서 자신의 과거사를 묻지도 않았는데 쏟아내는 장면'도 빠지지 않았다. 왜 항상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 앉아 그러는지.
특히나 이야기 전반을 이어가는 중심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가로나 하프오크'를 선택한 것은 과연 괜찮은 선택인가?에 대해서는 논란거리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녀의 역할을 탄생 비하를 뜯어 고치면서 까지(특히, 자식까지 낳게 된 그녀의 파트너인 메디브를 은유적인 방식으로 아버지로 바꾼 것 그리고 하프오크가 드레나이 어머니와 오크 아버지가 아닌 오크 어머니와 인간 아버지로 설정한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 '인간'과 '호드'의 가교 역할로 부여할 필요가 있었는가? 아마도 제작자나 작가나 감독은 언어가 다른 두 종족간의 통역과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이 들어나는 친근함을 이끌어 내는데 '가로나'라는 캐릭터를 활용 – 그렇게 하면 많은 고민을 해소할 수 있다 생각해서 그런 설정을 했으리라. 어쨌든 '가로나'가 '레인 국왕'을 죽이는 것은 결과적으로 원작과 같은 결론이라는 것은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살인은 모두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점도. (원터 솔저가 아니라, 가로나였어! 스타크! 아... 바리안? 아! 아니구나, 미안)


그런데,
‘스랄’의 본명, ‘고엘’을 아버지, 듀로탄이 지어준다고? (영화를 기준으로 하면) 홀홀 단신 서구의 어느 신화처럼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떠내려가 어느 인간 손에 길러지다 나중에 이름을 얻는데, 그 이름이 아주 우연히도 죽기 직전 아버지 듀로탄의 작명과 같다고? 아 이러지는 맙시다. 그냥 원작 설정처럼 이름없는 오크로 자라는 것이 더 좋다. 굳이 듀로탄의 아들이 고엘이라고 알려주지 않아도 되었다. 팬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보통의 관객은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니까.
다음 편 영화(가 제작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에서 스랄의 어머니이자 듀로탄의 아내인 드라카가 도주 중에 얼라이언스의 공용어를 신속히 배워 쉬지 않고 질주하는 동안 지필묵을 구해 ‘이 아이의 이름은 고엘입니다’라고 적어 바구니에 넣는 설정 따위가 들어가면 영원히 그 영화를 저주할 것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멋진 영상미와 잘 짜여진 이야기 박진감 넘치는 액션으로 채워졌다면 이런 불만 따위는 뒤로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딱 세가지로 추려 낼 수 있다.
  1. 배우들의 시선처리 혹은 없는 대상을 향해 흔들어버린 어색한 검.
    배우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질 ‘안 보이는 대상’ 앞에서 대사와 시선처리에 대한 어려움을 스크린으로 그대로 옮겨 주었다. 보는 내가 다 안스러워 걱정까지 했다.
  2. 어느 곳에도 엑센트를 찍지 못한 스토리.
    이런 식의 전개는 시종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원작으로 살리지도, 멋진 각색도 못 한 상태로 영화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3. 불편한 캐릭터 소비.
    앞서 언급한 스토리와 캐릭터의 설정에 덧붙혀서 메디브도 안타까운 캐릭터이다.
    로데론이 폐허가 되지도 않았고, 아서스가 서리한의 유혹에 넘어가지도 안은 상태에서 메디브를 퇴장시킨 것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메디브 만큼 갈등을 잘 유발시킬 캐릭터도 없는데, 메디브 만큼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을 만한 캐릭터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일리단이 불타는 군단을 막으려 했는데, ‘우리’가 공대를 꾸려 검은 사원으로 쳐들어가 일리단을 ‘잡아’버리는 바람에 일을 그르치게 되었다는 식의 설정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군단’ 확장팩에서 공식화 되고(WTF), 더 이상 새로운 반찬을 낼 수 없자 이미 끓여 먹은 사골국을 다시 끓여 조미료만 잔뜩 넣은 (그 놈의 시간여행) 드레노어의 전쟁군주에서 세계관을 뒤틀고, 첫번째 와우 확장팩의 배경이 되었던 아웃랜드와 일리단의 찌질한 모습도 사실 팬들에게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블리자드 너희들이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라 생각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신세계를 열어준 ‘오리지날’과 아서스 매네실의 가슴 깊이 요동치는 스토리가 묻어있는 ‘리치왕의 분노’가 가장 견고하고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고, 그 이전에는 워크래프트 3가 그러했다. (역시 나는 아서스 에피소드를 사랑하나 보다. '아서스! 나예요, 제이나!')
이렇게 원작이 되는 워크래프트-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도 자신의 설정을 뒤틀고 뒤집는 것이 빈번해서 어쩌면 영화의 스토리가 그리 되어버린 것에 대하여 뭐라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영화 속에서 카드가가 '양변'했을 때(미개한 생물에게만 통한다고? 무한 양변 당했던 난 ... 뭐?)와 메디브가 까마귀 옷을 입고 지팡이를 들었을 때, 꼬마 바리안을 보게 되었을 때 그리고 '아 카라잔 주위가 저렇게 황폐화 되었구나'라고 설득 당했을 때는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래도 무엇보다 가장 멋진 장면은 '블리자드' 로고가 등장했을 때였고 (얼어붙은 알파벳 속에 인간형상의 무언가가 들어가 있었다니) 영화 시작과 동시에 등장한 인간과 오크의 일대일 전투는 정말 멋졌다. 'For the Horde!'라는 외침은 가슴을 충분히 요동치게 했고 'Azeroth'가 '애저라'라고 발음될 때의 어색함은 또 다른 재미였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은, 게임에 등장한 '한국어판' 지명과 호칭 그리고 그 세계관 속의 언어들을 잘 가져와 썼다는 점이다. 영화가 다 끝났음에도 어색한 번역을 찾기는 매우 힘들었다.
참, 멀록이 나오긴 했는데 봤는가? 아옳옳옳옳 울어주는 덕분이 뒷태를 볼 수 있었다.

이 영화제작으로 블리자드가 경영의 어려움에 처해 더 이상 팬들을 만족 시켜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없게 된다면 '전쟁의 서막'이 아니라, '재앙의 시작'이 될 것이다. 내가 우려한 것보다는 잘 만들어졌지만, 팬으로서도 일반관객서도 만족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잘 다룰 수 있다면 그 어떤 소재의 대작 혹은 연작 영화보다 훌륭한 그래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수도 있을 터인데, 안타깝기만 하다.

극장을 나서면서 MCU를 생각하게 되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만들어 가는 마블 스튜디오는 정말 영리한 곳이다.

(스크린 샷 출처: UPI Korea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