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15, 2016

어쩌다 이 책 - 여행자의 책

책을 고르는 습관 중에 집어 든 책을 이리저리 무작위로 읽어보는 것이 하나 있다. 혹자는 목차를 천천히 살펴 보고, 어떤 이는 중후반의 완성도로 전체를 가늠하고, 또 누구는 표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책 고르는 습관은 서점에 갔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온라인으로 책을 고를 때에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지 아니한 시간 동안 나를 이끈 이 습관은, 온라인으로 책을 사고 나서도 유효하다. 어쩌면 이 습관은 책을 고르는 습관이기 보다는 처음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나타나는 습관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자의 책. 온라인으로 샀다. 그 유효한 습관에 따라서 책을 이리저리 훑어 보는데, 마음에 상당히 걸리는 부분을 발견했다. 아마 서점에서 처음 이 책을 만났다면 난 사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시력이라는 것은 참으로 큰 범위 내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거의 모두)가 몽고인의 후예인 것은 분명하지만, 몽고인처럼 길러지지 못 해서 좋은 시력을 가질 확률은 매우 낮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이 젊은 신체를 유지하며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책의 편집자는 고유명사나 그와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을 원문으로 표기하는 친절함을 베풀었지만, 정작 나는 이 원문을 읽을 수 없었다. 서체 크기가 너무 작았다. ‘여행자의 책'을 사면 돋보기를 끼워 주는 걸까? 아니면, 젊고 활력 넘치는 사람만 사 봐야 하는 제한을 교묘하게 서체 크기에 걸었는가?

나는 악(惡)한 사람보다 예의없는 사람을 더 싫어한다. 악이라는 개념은 절대 가치가 아니기에 우리의 시점이나 입장이 변하면 달리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의는 절대적 가치에 가깝다. 예의 없는 사람은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모두를 어렵게 만들며, 모두를 힘들게 만들고 - 그 사람이 퍼뜨리는 무례는 브라운 운동하는 입자처럼 넓게 무한정 퍼져 나간다. 악은 함께 대응이 가능하지만, 무례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무너진다.

이 책의 편집자도 무례했다. 그 무례를 서체의 크기로 범했다. 난 116쪽의 그 내용을 전화기로 찍어 화면을 확대하여 확인하다가 화가 났다. 나도 순간 무례한 사람이 될 뻔했다. 나는 짜증을 감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