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31, 2016

통근시간

집에서 회사까지 2시간이 걸린다. 조금 더 빨리 도착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 그냥 2시간이라고 해도 좋다. 물론, 집으로 오는 시간도 2시간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통근시간은 4시간.

한 달에 20일 출근하고, 1년에 11달 근무한다고 보면 (몇 번의 공휴일과 다 쓰지 못 하는 휴가를 생각하면 이런 계산이 합리적이다) 1년 중 880시간이 반복적 행위로 채워진다.

880시간. 이 시간은 무려, 36일보다 긴 시간이다. 이 것을 정확히 2년 반복했다. 1760시간. 24시간 기준 하루로 나누어 보면, 73.33333...이 된다. 73일 그리고 몇 시간.

난 2015년 그리고 2016년 중 73일 이상을 버스와 지하철과 거리에서 두 개의 목적지에 닿기 위해서 사용했다. 꼬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대단히 잘 못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내 인생의 일부분이 사라졌고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다.

Wednesday, December 21, 2016

예의없는 것들로부터 도피, 유튜브 레드

유튜브에서 광고를 없앴다. 광고를 없애니까, 신천지가 열렸다. 그렇게 가입하면, '유튜브 레드'라고 부르더라. 한 달에 1만원 남짓한 돈으로 광고를 보지 않아도 되고, '유튜브 뮤직'이 함께 제공된다. 유투브 뮤직은 iOS와 Android에서 앱으로 동작하며, 웹 버전은 현재까지 없다.

유튜브에서 광고를 안 보는 게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대수가 맞다. 유튜브 광고는 기발한 것도 많고, 재미나는 것도 있고, 그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산적도 있을 정도로 괜찮은 광고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서는 광고로 지쳐 유투브 들어가는 것이 꺼려질 때가 생기고 있다.

한국 회사들의 유튜브 광고들은 대체로 무례하다. 모든 광고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 한국 광고는 높은 음량으로 사람을 놀래킨다. 이건 예의가 없는 것이다. SKIP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시작 후 5초간은 고통이다. 화가 난다. 어떤 광고는 시작 직후 개그맨이 나와 목청 터져라 소리 지르는 것도 있었다. 미쳤다.

내가 본 어떤 유튜브 광고는 5초 동안 소리조차 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어떤 광고는 5초 동안 조용한 음악만 흘렀다. 모두, 외국 광고였다. 한국 사람들은 시끄럽게 떠들면 사람들이 관심있게 지켜본다고 생각하는가? 건물에 원색으로 광고판을 가득 채워 건물을 완벽히 가리는 옷이 되어버린 한국의 거리 모습을 유튜브로 옮겨 놓은 느낌이다.

그래서, 난 이 광고들을 없애고 싶었다. 광고를 보기 싫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구글이 나에게 한국에서도 유튜브 레드에 가입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자 바로 가입했다. 기다리고 있었다. 무례한 광고들을 피하는 대가로 따지자면 구글이 나에게 요구하는 금액은 적당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가입을 환영하는 메일에서 '유튜브 뮤직'이라는 것도 더불어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 난 오늘도 '애플 뮤직'에서 탈퇴할까 고민하고 있다. 고민한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할 정도, 딱 그 정도로 좋다, 유튜브 뮤직.



Saturday, December 03, 2016

몰스킨 롤러 펜 Moleskine Roller Pen

일단 중요한 것부터 전하겠습니다.
  • 품명: 몰스킨 롤러 펜 블랙 0.5mm
  • 가격: 23,100원
네 맞습니다. 여러분께서 흔하게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볼펜’입니다. 그리고 2천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2만으로 시작하는 가격입니다.

저는 필기구에 애착이 있습니다. 잘 쓰여지는 펜으로 글자가 만족스럽게 쓰이는 아침이면 이유없이 그날 하루는 좋은 일들이 가득할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그런 이유로 로터링 아트펜을 사랑하고, 같은 이유로 대한항공 기내에서 받은 특징없는 펜을 아끼고 있습니다.

그날은 서점을 서성이다가 구분없이 붙어있던 문구점에서 2017년 몰스킨 플래너를 산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플래너 바로 옆에 비치되어 있던 ‘몰스킨 롤러 펜’을 집어 왔다는 것을 귀가하던 버스 속에서 알아차렸습니다. 그래도, 이름 값은 하겠지 생각을 했습니다.

위로부터 몰스킨 롤러 펜, 스태들러 옐로우 펜슬 134-HB, 로터링 아트 펜
(EF이지만 닳아서 F와 비슷), 대한항공 로고가 있는 이름없는 펜.  


필기감 아주 안 좋습니다. 본디 유성 펜은 시간이 지나면서 본연의 감각을 선사하지만, 이것은 그렇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내가 느끼고 있는 빡빡하고 이상한 종이와의 마찰은 참아내기가 힘듭니다. 아무리 몇 달을 쓰지 않았던 볼펜이라도 뱅글뱅글 동그라미 몇 번 그리다 보면 잉크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태생부터 종이와의 무슨 불화가 있는지, 한참 동안 종이를 긁어 구멍이 생길 때 즈음 쓰여지기 시작할 때도 있습니다.

파지가 매우 나쁩니다. 한 쪽으로 눌린 듯 한 직사각형 모양인 이 펜은, 엄지 손가락의 손톱이 검지 손가락의 살을 파고 드는 모양새를 유도합니다. 힘을 주어야 제대로 써지는 펜, 힘을 주면 검지 손가락이 아파오는 펜. 통증을 참아내며 글자를 '긁어야' 하는 이유를 쉽게 찾기 힘듭니다.

몰스킨 노트 하드커버에 끼워 넣을 수 있게 디자인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내가 가진 어떤 하드커버 노트에도 쉽게 들어가지 않았으며, 소프트 커버도 내지를 조금 희생시키면 끼워넣을 수 있는데, 그렇게 보관하고 다니다 보면 잃어버릴 것이 분명해 보여 쓸모없는 디자인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리필용 '저것'은 무려 5,500원입니다.
그리고, 제트스트림(Jetstream)은 여전히 최고입니다. 빅(Bic)도 있습니다.


그리고, 노트 시리즈로 여전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는 몰스킨이지만, 그 애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Monday, October 24, 2016

S822LC for HPC를 만나다! GTCx Korea 2016에서

최근 하드웨어 관련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하드웨어는 이제 어셈블리나 코볼이나 포트란처럼 존재하기는 하지만 거의 잊힌,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GTCx Korea 2016에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IBM Power Systems S822LC for High Performance Computing. 개발 코드 이름은 Minsky. 인공지능학계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Marvin Lee Minksy 박사님의 이름을 따서 썼다. 그 분의 별세 소식을 접한 당시 개발팀에서 애도 표하고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Minsky라는 이름을 '감히' 따서 섰다.

S822LC for HPC는 세계 최초로 NVLink가 탑재된 서버이다. 잠깐만! DGX-1이라는 Nvidia의 레퍼런스 시스템에도 NVLink가 있지 않는가? 그렇다 맞다, 하지만 S822LC for HPC는 DGX-1과는 달리 GPU to GPU NVLink가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최초의 설계 사상에 따른, CPU to GPU NVLink도 탑재되어 있다. 진정한 NVLink가 동작하는 최초의 하드웨어이다.


그렇다면, NVLink라는 것이 GPU 간의 버스로 동작하면 그만이지 굳이 CPU와 GPU간의 연결 버스로 설계되어야 하는가? 그렇다. 큰 차이를 만든다. GPU를 통한 연산을 할 때 가장 큰 병목이 발생하는 구간이 CPU와 GPU 간이다. 종례의 3세대 PCIe x16를 사용할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최대 I/O 대역폭은 32GB/s, 그러나 NVLink는 80GB/s의 대역폭을 지니고 있다. NVLink는 또한, 다른 모든 I/O가 사용하는 PCIe와는 달리, CPU - GPU - GPU만을 위한 독립 버스이다. 만약 당신의 GPU 기반의 병렬연산이 그렇게 빠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있다면, 바로 제대로 된 NVLink가 필요하다는 뜻이고, S822LC for HPC를 지금 써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S822LC for HPC는 이렇게 생겼다. 사진 하단이 정면이고, 전시를 위해 상부 덮개는 제거해 두었다. 아, 전면 덮개도 떼어 놓았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공기 흐름는 메모리 > CPU + GPU > GPU + PCIe 를 단계로 거치게 된다. 메모리 모듈이 가장 먼저 '찬 공기'를 만나는 설계이다.

앞 쪽에 4개의 팬이 있다. 우측에 검은색으로 보이는 부분은 디스크 혹은 SSD가 장착되는 SFF 베이이며, 사진 속 전시 제품은 960GB SSD 두 개가 있었다. 우측에 전원 스위치와 USB 3.0 포트도 나란히 있다.



가운데 부분은 메모리 모듈이며, DIMM 4개가 한 보드에 장착되어 시스템과 연결된다. 전시 제품은 16GB DIMM이 장착되어 있었으며, 하나의 메모리 모듈 당 4개의 DIMM이 설치 될 수 있다. 그리고 메모리 모듈은 총 8개가 시스템에 연결된다. 16GB * 4 * 8 = 512GB 메모리가 장착되어 있었다. 이 제품은 4GB · 8GB · 16GB · 32GB DDR4 DIMM을 지원하니, 최대 1TB 메모리를 장착하여 사용할 수 있다. 전시제품의 DIMM 제조사는 삼성전자.


구리색 방열판 아래에 있는 칩이 Nvidia의 Tesla P100이다. 이 시스템은 최대 4개의 P100이 장착될 수 있고, 사진 속의 시스템도 그렇다. 은색 방열판 아래에 있는 칩은 POWER8 CPU이며, 8 core 3.25GHz 또는 10 core 2.86GHz POWER8 CPU가 2개 장착된다. 앞서 강조한 NVLink를 위한 GPU 소켓이 마더보드에 있고, 바로 옆에 CPU 소켓이 설계되어야 하기에 DIMM 슬랏이 제거되고 모듈 형태로 독립된 구역에 설계되었다. 흥미로운 구조이다.


뒷면에서 보면 이런 모습이다. 두 개의 전원공급장치가 위치하고 있다, 각 1300W라고 기억한다. 사진으로는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Mellanox에서 제작한 IB 카드와 10Gb 이터넷 카드도 장착되어 있다. IBM · Nvidia · 삼성전자 · Mellanox, OpenPOWER 재단의 주요 회원사들간의 부품들이 있는 것이다.

옆 부스에서 DGX-1도 봤다.


아랫쪽에 Intel Xeon과 DIMM이 장착되는 큰 서랍이 있고, 상부에 P100 8개가 장착되는 구조였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거대했다.


위 사진은 상판 덮개와 앞쪽 덮개. 자세히 보면, S822LC라는 모델명을 읽을 수 있다.

부스에서 방문객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두 가지에 놀랬다. 하나는 질문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와 질문을 했다는 사실이다. 둘 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 기계는 기계가 잊힌 시대에 기억되는 기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Tuesday, October 04, 2016

어떤 매체의 원색적인 질문에 대한, 가벼운 답변

지난 봄, 어떤 IT 매체가 내가 속한 조직의 대표자에게 질의서를 보내어 왔다. 춘계특집물이었던 것 같다. 그 질의서에서는 'UNIX와 x86의 경쟁구도'로 서버시장을 설정하고 이런 저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질의들이 담겨 있었는데, ‘누가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에 승자가 되겠는가?’라는 원색적인 질문을 내가 맡아 답변서를 적게 되었다. IT에 대한 기본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시장에 대한 해안도 없어 보였고 특집에 걸맞는 질문도 어니었지만, 아무튼

나의 답신은;

(의견 요청) 클라우드 시대에 어떠한 서버 플랫폼이 궁극적인 승자가 될 것으로 보십니까?

(회신 내용) 질의하신, ‘클라우드 시대’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재화를 구입하여 직간접적으로 운영하는 시대에서 벗어나 계약 기간내 사용한 컴퓨팅 자원을 탄력적으로 사용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금전으로 치루는 것을 의미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서버 플랫폼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어색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 제공자는 사용자와의 ‘계약조건’에 적합한 IT 인프라를 구성할 것이며, 사용자는 ‘비용효율’과 ‘서비스 수준’을 고려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경제구조에서 서버 플랫폼의 CPU 아키텍쳐와 OS의 종류를 종례와 같이 고려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클라우드 시대’에 ‘어떠한 서버 플랫폼’이 마지막 ‘승자’로 예상하는 것은 유효한 판단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재 많은 서비스 제공자들이 8x86 CPU 아키텍쳐에서 Linux 커널 기반의 GNU 운영 시스템을 권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지금의 경향일 뿐일 수 있습니다. ARM 그리고 OpenPOWER가 좋은 대안으로 고려되고 있고, UNIX 혹은 윈도 서버 또는 우리가 아직 언급하지 않고 있는 새로운 운영체제가 각광받을 수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비용효율’과 ‘서비스 수준’만 만족할 수 있다면 대안은 언제든지 등장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입시문제처럼 ‘준식’에 의거한 ‘정답’이 존재하던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는 점입니다.

Tuesday, September 27, 2016

어쩌다 그 곳 - 화견소로 花見小路 하나미코지

그러니까, 2010년 봄, 교토[京都]로 가게 되었다. 한 신문사의 일본특파원과 전자우편을 주고받을 정도로 세상을 향해 활력 있게 다가가던 때였다. 철학의 길[哲學の道]을 걷게 된 것도, 화견소로, 하나미코지[花見小路]에 가게 된 것도 순전히 활력 넘치는 호기심과 체력 덕분이었다.

화견소로는 두 번 걸어 보았다. 한 번은 2010년 봄이었고 한 번은 2015년 가을이었다. 그 시간의 차이 속에 현격하게 다른 것을 느꼈다면 그 거리의 중국인 관광객 비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점의 차이와 협소한 개인적인 체험이 일반화될 수는 없겠지만, 2010년 봄에는 중국어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고 기억하고 있고, 2015년 가을에는 중국어 이외 다른 언어는 듣기가 어려웠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화견소로는 2010년 봄이다. 그 길에서 난 시간여행을 하는 듯 신비로운 체험을 했으며, 한적한 곳이 노을과 함께 활력을 얻어내는 신비도 목격했다. 종종걸음의 기모노 차림의 여성과 어느 사진관에서 나온 초로의 사진사가 공들이던 촬영도 지켜볼 수 있었다. 화견소로에서 옆으로 뻗은 작은 골목들 사이에서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었고, 저기 멀리 나지막하게 들리는 중년여성의 대화도 정겨웠다 -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난 그 길에서 최대한 천천히 걸었고, 해가 지는 시간 속에서 오늘과 수십년 전 과거를 오갈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화견소로는 2015년 가을의 그곳이다. 2010년 봄과 같은 시간대에 그곳에 갔다. 입구부터 일단 인산인해와 깃발을 따라다니는 단체 관광객 그리고 차와 사람이 얽혀 있는 길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적함은 찾을 수 없었던 그 길에는 정겨운 대화는 사라졌고, 중국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고성이 가득했다.

실내복인지 잠옷인지 외출복인지 모를 옷을 걸친 가족 단위 중국인들 그리고 히말라야를 등반할 준비를 마친 한국인 중년주부들의 계모임으로 완전히 점령당한 그 거리는, 상해(上海)의 남경로(南京路)인지 서울의 명동(明洞)인지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내가 기대했던 시간여행은 커녕 공간이동을 당해 버렸다.


나는 그 길을 좋아했다. 그 길에서 피어났을 수많은 이야기들을 상상했고, 그 상상은 좋았다. 오래전 선물 받아 잘 읽고 간직하고 있는 일본 근대를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들을 마음대로 기억에서 꺼내어 가져다 붙이며 즐거워했던 2010년 봄이 그리웠다.

Thursday, July 28, 2016

어쩌다 이 책, 나는 항상 옳다 - 길리언 플린

나는 항상 옳다[The Grownup]. 길리언 플린(Gillian Flynn), 우리에게 '영화'로 더 유명한 소설, 나를 찾아줘[Gone Girl]의 저자(著者)이다.

매우 짧은 소설이다. 한 쪽 당 단어 수는 웬만한 책의 1/3 쪽에 수록될 만큼 적다. 그리고 총 쪽수는 100이 되지도 않는다. 얼추 생각해 보면, 일반적인 책의 20장 정도 40쪽 미만에 수록될 내용이다. 퇴근 길에 잠깐 들린 서점에서 샀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기 전에 다 읽었다.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낼 때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었다. 수음(手淫)을 돕는 직업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책'을 디딤돌로 삼아 능숙한 거짓말을 구사하는 점쟁이로 넘어갔다. 점쟁이라는 장치에 필연적으로 따라와 버린 퇴마와 귀신들린 집은 지루함을 만들어 낼 뻔도 했지만, 다행히 익숙한 결말로 내닫지는 않았다. 몇 번의 작은 반전 같은 장치가 있은 후에 이 이야기는 다시 '책'을 짚고 일어서서 종국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매우 낯선 독백으로 책은 끝난다.


확실히 분량은 한 권으로 묶어 내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마지막 몇 페이지는 분량의 문제를 걷어 내려 했다. 순식간에 마침표를 맞이한 이야기는 독자가 상상을 완성하기도 전에 소설이 끝나는 낯선 경험을 해야 한다. 속도감은 정말 뛰어 났지만, 이게 최선인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Friday, July 22, 2016

오픈소스, OpenPOWER 그리고 GPU

변화와 혁신의 진원, 오픈소스 운동과 OpenPOWER 그리고 GPU로 여는 새로운 컴퓨팅의 세계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지난 세대도 지금의 세대도 앞으로의 세대도 변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일반원칙이 가장 잘 적용되는 곳이 바로 IT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초기의 컴퓨팅 환경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한 번의 연산을 수행하기 위하여 책상 위에서 완성한 코드가 적힌 공책을 손에 쥐고 키 입력의 순서를 기다리는 프로그래머들의 모습은 구텐베르크 혁명 이전의 시대, 세상에 몇 없던 도서관에서 중요한 서책의 한 부분의 필사를 원하는 수도사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네트워크 장치와 통신 방법의 발전과 일반화로 변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협업과 세속적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조금씩 보편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거의 모든 컴퓨터가 항상 온라인 상태를 유지하고 심지어 지금 우리의 호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전화도 매우 훌륭한 정보단말기로서의 역할을 온종일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통신의 발전은 컴퓨팅이라는 일반연산 수행 방법과 결과 조회의 상황에 많은 변화를 주었습니다. 서버 없는 서버 설계가 가능하게 되었고, 소유하지 않으면서 정보를 생성하고 조회하고 가공하여 가까운 미래를 누구보다 먼저 예측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발전은 매우 급진적이고 눈부셔서 당장 다음 세대를 예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되었고, 어쩌면 다음 주의 IT 헤드라인이 무엇이 된다 하여도 아무도 놀라지 않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혁신에 혁신을 더 하고 그 혁신이 창조적인 방법을 만들어 내고 창조적 방법들이 미래를 오늘날로 당겨오는 과정을 빠르고도 빠르게 진행시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혁신의 주체는 과연 누구일까요?
아무도 아닐 수 있을 만큼 모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종례의 시간에는 비즈니스 리더쉽에 의존한 몇몇 독점적 특허와 판매 모델로 무장한 소수의 사람들이 부를 장악하고 그 장악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소개함으로써 기술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습니다. 몇몇 건전한 기업은 이를 통하여 전인류의 복리에 기여했겠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독점적 지위에 편승한 제한된 혁신을 매력적인 제품에 차등 주입함으로써 가까운 미래를 먼 미래로 돌려 보내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혁신은 이와 같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세계에 산재(散在)되어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소리를 내던 해커들이 차근차근 이어온 오픈소스의 작은 혁명은 새로운 협업의 좋은 예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기업들은 보다 개방적 혁신을 세상에 제공하기 위하여 이러한 사상을 수용하였습니다. 그렇게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보다 실속 있고 현실 세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주효한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세상 지금의 IT의 혁신은 바로 이 오픈소스 운동에 기반한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오픈소스 운동은 70년대를 거치면서 자가개발 운영체제에 탄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최초의 설치가능한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는 모두 오픈소스였다고 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오픈소스 운동은 소프트웨어의 발전 동력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픈소스 운동은 운영체제 커널을 비롯한 각종 소프트웨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드웨어 그것도 가장 핵심적인 중앙처리장치(CPU)에서도 이미 진행 중입니다.


IBM은 수년 전 자사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 중의 하나인 Power 프로세서를 오픈소스로 기술을 공개했습니다. 바로 OpenPOWER가 그 이름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재단도 설립하였습니다. 원천기술을 제공한 IBM을 비롯한 NVIDIA, Google, Mallanox, Tyan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삼성전자가 함께 시작한 이 OpenPOWER는 현재, 전세계 주요 IT 회사들 뿐만 아니라 연구소 등 단체와 개인들이 참여하여 함께 꾸려가는 또 하나의 거대한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CPU 설계 기술을 공개했을 것만 같은 이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리눅스가 기반하는 컴퓨팅의 자유를 더 넓은 세상으로 확대하게 되었고, 주요 배포판 제작사들이 모두 참여하는 든든한 바탕이 완성되었으며, 이러한 결과로 IT 인프라를 설계하고 주요 워크로드의 적절한 배치를 고민하는 기획자들에게 유효한 선택자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아주 좋은 사례로 Google이 자사의 IT 인프라에 OpenPOWER를 선택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더 빛나는 결과는 이제 곧 펼쳐질 예정입니다.

GPU, Graphic Processing Unit은 과거 단순한 연산의 결과를 화면에 출력하는 프레임버퍼 역할에서 독자적인 연산 즉, CPU와 버금가거나 어쩌면 그에 우월하는 일반연산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1999년 이 장(章)의 첫 쪽을 멋있게 연 Nvidia는 GeForce라는 이름을 게임을 즐기는 한정 사용자 뿐만 아니라 IT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까지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누구보다도 앞서서 혁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1999년 이후 거듭 세상을 놀라게 했던 GPU는  그래픽 출력의 영역을 일찍이 넘어 CPU와 더불어 연산의 차원을 확장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CPU의 발전의 제한을 GPU를 통하여 뛰어넘는 결과가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Nvidia는  NVLink라는 놀라운 버스 기술을 선보였고, Pascal 마이크로아키텍처를 바탕으로 하는 Telsa P100 GPU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세대의 GPU, Pascal 마이크로아키텍처를 완성하는 NVLink는 OpenPOWER 재단을 중심으로 IBM과 Nvidia의 수 년간의 협업을 통하여 완성되었으며, 곧 출시될 코드네임, Minsky로 알려진 최신 Power Systems에 세계 최초로 탑재됩니다. 오픈소스 혁신은 이렇게 하드웨어의 영역에서도 빛나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NVLink는 CPU와 GPU 간 데이터 교환을 PCIe 인터페이스를 거치지 않고 CPU와 GPU 그리고 GPU와 GPU가 직접 통신할 수 있게 설계된 새로운 버스입니다. NVLink의 최대 대역폭은 80 GB/s로, 16GB/s인 최신 PCIe 3.0 x16과 비교하여 5배 빠른 속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송 bit당 소모 전력은 PCIe 버스에 비해 낮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Power Systems는 NVLink로 완성되는 GPU의 혁신을 가장 먼저 세상에 선보입니다. 서버의 최고 성능을 담보하는 고차원 컴퓨팅의 가능성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 에너지부(Unite States Department of Energy; DoE)에서 NVLink를 기반으로 하는 'Summit'과 'Sierra'라고 알려진 두 종류의 수퍼컴퓨터를 IBM과 Nvidia를 통하여 공급받기로 계약을 했다는 보도는 제품이 아직 출시되지 않았음에도 이 기술에 대한 높은 가능성을 실증하는 사례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OpenPOWER 재단의 IBM과 Nvidia가 여는 새로운 컴퓨팅의 세계에서 우리는, 고성능 연산(HPC)과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보다 모호하게 만들 것이며, 먼 미래로 약속했던 발전의 이정표를 가까운 시간대로 수정하는 멋진 일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어느 회사의 온라인 잡지에 수록되는 것을 전제로 청탁받아 기고한 글을 여기에도 게시함)

Sunday, June 26, 2016

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장면 장면 ‘박찬욱’이라고 외친다. 내가 사랑하는 감독, 봉준호 감독은 반면, 재밌지? 나도 재밌게 만들었어! 라는 느낌이다. 이번 영화는 박찬욱이 '박찬욱'을 덜 외친 영화이다.


아가씨를 봤다.
엄청나게 아름다운 장면에 거의 압도되었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김민희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배우인지 여실히 들어낸 영화였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재밌다.

아가씨를 봤다.
너무도 친절해진 감독은 ‘박찬욱, 박찬욱’을 살짝 감추는 대신 불필요하게 친절해진 면이 있었다. 그렇다, 조금 지루했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그의 영화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쥐’ 뒤로 이 영화로 놓을 수도 있겠다. ‘아가씨’와 경쟁해야 하는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이다.

아가씨는 멋진 영화였다.
연출도 대사 한 마디도 컷과 컷 사이 스쳐지나 가는 백작의 말아 피운 담배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불필요하게 배치한 장치 하나 없이, 작고 큰 의미가 가득한 멋진 영화였다. 그 멋진 부분들 사이를 가장 아름답게 채워낸 것은 김민희의 연기였다. ‘화차’ 이후 그녀는 우리 영화사에 이름을 남길 준비를 마쳤고, 아가씨는 아주 오랫동안 김민희라는 이름과 함께 분명 언급될 것이다.



원작 소설, '핑거 스미스'를 읽고 있었다.
난 영화를 보기 위해서 책을 먼저 읽으려고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팟캐스트, ‘빨간책방'의 ‘핑거 스미스’ 편도 아직 듣지 않았다. 책을 모두 읽고 영화 보고 팟캐스트를 들으려 했다. 하지만, 책은 다 읽지 못 했고, 영화를 봤다 - 이번이 아니면 극장에서 못 볼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혹은 내가 너무 게으른 나머지 완독하지 못 할 것만 같았다. 원작 모두를 읽지는 못 했지만, 영화는 참 원작을 잘 각색했다는 생각을 했다. 간결하게 필요한 부분을 적절히 가져와 재가공하여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시켰다. 일제강점기로 시대를 이동시킨 것부터 일어와 국어의 혼용, 숙희 · 옥자 · 타마코 그리고 각 인물의 처한 현실까지 과감한 각색과 연출을 행한 박찬욱의 승리였다. 그래서 난 박수.

참, 봉준호 감독의 다음 영화는 '옥자'이며 내년 초에는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진출처: 영화 아가씨 공식 홈페이지)

Friday, June 17, 2016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Warcraft: the Beginning (2016)

원작이 있는 영화가 꼭 원작을 따를 필요는 없다. 영화는 원작을 모르는 관객도 상대해야 하고, 특히나 원작이 매우 방대하고 복잡하며 팬들 조차 해석에 따른 의견이 분분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극장에서 상영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적당히 잘라내고 중요 사건을 부각시켜 극적인 재미를 배가 시키는 것이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는 것이 또 다른 버전을 탄생시키는 - 그러니까, 재창조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관람하는 입장에서도.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이런 관점에서도 완전히 망한 영화이다. '워크래프트 팬들은 만족하겠지만…'이라고 누군가는 평론에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열렬한 팬인 나는 차원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실망했다.

이것은 영화이고, 앞서 말한 것처럼 각색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단 원작이라고 불러야 하는 ‘워크래프트: 오크 對 휴먼’부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드레노어의 전쟁군주’까지의 게임 스토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팬의 입장에서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속에 넣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게임은 게임이고, 영화는 영화이니까. 물론 소설도 있지만, 게임을 이끌거나 그 뒷 이야기를 다듬는 역할이니까...



그래도,
워크래프트 세계관의 절대적인 악의 축 역할을 하는 '간악한' 굴단이 너무 얕게 나온 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드'와 '얼라이언스'의 성립에 대한 설명도 없이 너무 빨리 그 설정을 가져다 쓴 것은 실수에 가까웠다 - 보통의 관객은 '오크'에 익숙해 지려 하는데 난데 없는 '호드'의 등장에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미국식 영화에서 흔하게 나오는 '엄청난 일을 겪다가 한가해 지면 센티멘탈해져서 자신의 과거사를 묻지도 않았는데 쏟아내는 장면'도 빠지지 않았다. 왜 항상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 앉아 그러는지.
특히나 이야기 전반을 이어가는 중심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가로나 하프오크'를 선택한 것은 과연 괜찮은 선택인가?에 대해서는 논란거리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녀의 역할을 탄생 비하를 뜯어 고치면서 까지(특히, 자식까지 낳게 된 그녀의 파트너인 메디브를 은유적인 방식으로 아버지로 바꾼 것 그리고 하프오크가 드레나이 어머니와 오크 아버지가 아닌 오크 어머니와 인간 아버지로 설정한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 '인간'과 '호드'의 가교 역할로 부여할 필요가 있었는가? 아마도 제작자나 작가나 감독은 언어가 다른 두 종족간의 통역과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이 들어나는 친근함을 이끌어 내는데 '가로나'라는 캐릭터를 활용 – 그렇게 하면 많은 고민을 해소할 수 있다 생각해서 그런 설정을 했으리라. 어쨌든 '가로나'가 '레인 국왕'을 죽이는 것은 결과적으로 원작과 같은 결론이라는 것은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살인은 모두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점도. (원터 솔저가 아니라, 가로나였어! 스타크! 아... 바리안? 아! 아니구나, 미안)


그런데,
‘스랄’의 본명, ‘고엘’을 아버지, 듀로탄이 지어준다고? (영화를 기준으로 하면) 홀홀 단신 서구의 어느 신화처럼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떠내려가 어느 인간 손에 길러지다 나중에 이름을 얻는데, 그 이름이 아주 우연히도 죽기 직전 아버지 듀로탄의 작명과 같다고? 아 이러지는 맙시다. 그냥 원작 설정처럼 이름없는 오크로 자라는 것이 더 좋다. 굳이 듀로탄의 아들이 고엘이라고 알려주지 않아도 되었다. 팬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보통의 관객은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니까.
다음 편 영화(가 제작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에서 스랄의 어머니이자 듀로탄의 아내인 드라카가 도주 중에 얼라이언스의 공용어를 신속히 배워 쉬지 않고 질주하는 동안 지필묵을 구해 ‘이 아이의 이름은 고엘입니다’라고 적어 바구니에 넣는 설정 따위가 들어가면 영원히 그 영화를 저주할 것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멋진 영상미와 잘 짜여진 이야기 박진감 넘치는 액션으로 채워졌다면 이런 불만 따위는 뒤로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딱 세가지로 추려 낼 수 있다.
  1. 배우들의 시선처리 혹은 없는 대상을 향해 흔들어버린 어색한 검.
    배우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질 ‘안 보이는 대상’ 앞에서 대사와 시선처리에 대한 어려움을 스크린으로 그대로 옮겨 주었다. 보는 내가 다 안스러워 걱정까지 했다.
  2. 어느 곳에도 엑센트를 찍지 못한 스토리.
    이런 식의 전개는 시종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원작으로 살리지도, 멋진 각색도 못 한 상태로 영화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3. 불편한 캐릭터 소비.
    앞서 언급한 스토리와 캐릭터의 설정에 덧붙혀서 메디브도 안타까운 캐릭터이다.
    로데론이 폐허가 되지도 않았고, 아서스가 서리한의 유혹에 넘어가지도 안은 상태에서 메디브를 퇴장시킨 것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메디브 만큼 갈등을 잘 유발시킬 캐릭터도 없는데, 메디브 만큼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을 만한 캐릭터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일리단이 불타는 군단을 막으려 했는데, ‘우리’가 공대를 꾸려 검은 사원으로 쳐들어가 일리단을 ‘잡아’버리는 바람에 일을 그르치게 되었다는 식의 설정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군단’ 확장팩에서 공식화 되고(WTF), 더 이상 새로운 반찬을 낼 수 없자 이미 끓여 먹은 사골국을 다시 끓여 조미료만 잔뜩 넣은 (그 놈의 시간여행) 드레노어의 전쟁군주에서 세계관을 뒤틀고, 첫번째 와우 확장팩의 배경이 되었던 아웃랜드와 일리단의 찌질한 모습도 사실 팬들에게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블리자드 너희들이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라 생각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신세계를 열어준 ‘오리지날’과 아서스 매네실의 가슴 깊이 요동치는 스토리가 묻어있는 ‘리치왕의 분노’가 가장 견고하고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고, 그 이전에는 워크래프트 3가 그러했다. (역시 나는 아서스 에피소드를 사랑하나 보다. '아서스! 나예요, 제이나!')
이렇게 원작이 되는 워크래프트-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도 자신의 설정을 뒤틀고 뒤집는 것이 빈번해서 어쩌면 영화의 스토리가 그리 되어버린 것에 대하여 뭐라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영화 속에서 카드가가 '양변'했을 때(미개한 생물에게만 통한다고? 무한 양변 당했던 난 ... 뭐?)와 메디브가 까마귀 옷을 입고 지팡이를 들었을 때, 꼬마 바리안을 보게 되었을 때 그리고 '아 카라잔 주위가 저렇게 황폐화 되었구나'라고 설득 당했을 때는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래도 무엇보다 가장 멋진 장면은 '블리자드' 로고가 등장했을 때였고 (얼어붙은 알파벳 속에 인간형상의 무언가가 들어가 있었다니) 영화 시작과 동시에 등장한 인간과 오크의 일대일 전투는 정말 멋졌다. 'For the Horde!'라는 외침은 가슴을 충분히 요동치게 했고 'Azeroth'가 '애저라'라고 발음될 때의 어색함은 또 다른 재미였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은, 게임에 등장한 '한국어판' 지명과 호칭 그리고 그 세계관 속의 언어들을 잘 가져와 썼다는 점이다. 영화가 다 끝났음에도 어색한 번역을 찾기는 매우 힘들었다.
참, 멀록이 나오긴 했는데 봤는가? 아옳옳옳옳 울어주는 덕분이 뒷태를 볼 수 있었다.

이 영화제작으로 블리자드가 경영의 어려움에 처해 더 이상 팬들을 만족 시켜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없게 된다면 '전쟁의 서막'이 아니라, '재앙의 시작'이 될 것이다. 내가 우려한 것보다는 잘 만들어졌지만, 팬으로서도 일반관객서도 만족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잘 다룰 수 있다면 그 어떤 소재의 대작 혹은 연작 영화보다 훌륭한 그래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수도 있을 터인데, 안타깝기만 하다.

극장을 나서면서 MCU를 생각하게 되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만들어 가는 마블 스튜디오는 정말 영리한 곳이다.

(스크린 샷 출처: UPI Korea Facebook)

Sunday, May 15, 2016

어쩌다 이 책 - 여행자의 책

책을 고르는 습관 중에 집어 든 책을 이리저리 무작위로 읽어보는 것이 하나 있다. 혹자는 목차를 천천히 살펴 보고, 어떤 이는 중후반의 완성도로 전체를 가늠하고, 또 누구는 표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책 고르는 습관은 서점에 갔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온라인으로 책을 고를 때에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지 아니한 시간 동안 나를 이끈 이 습관은, 온라인으로 책을 사고 나서도 유효하다. 어쩌면 이 습관은 책을 고르는 습관이기 보다는 처음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나타나는 습관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자의 책. 온라인으로 샀다. 그 유효한 습관에 따라서 책을 이리저리 훑어 보는데, 마음에 상당히 걸리는 부분을 발견했다. 아마 서점에서 처음 이 책을 만났다면 난 사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시력이라는 것은 참으로 큰 범위 내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거의 모두)가 몽골인의 후예인 것은 분명하지만, 몽골인처럼 길러지지 못 해서 좋은 시력을 가질 확률은 매우 낮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이 젊은 신체를 유지하며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책의 편집자는 고유명사나 그와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을 원문으로 표기하는 친절함을 베풀었지만, 정작 나는 이 원문을 읽을 수 없었다. 서체 크기가 너무 작았다. ‘여행자의 책'을 사면 돋보기를 끼워 주는 걸까? 아니면, 젊고 활력 넘치는 사람만 사 봐야 하는 제한을 교묘하게 서체 크기에 걸었는가?

나는 악(惡)한 사람보다 예의없는 사람을 더 싫어한다. 악이라는 개념은 절대 가치가 아니기에 우리의 시점이나 입장이 변하면 달리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의는 절대적 가치에 가깝다. 예의 없는 사람은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모두를 어렵게 만들며, 모두를 힘들게 만들고 - 그 사람이 퍼뜨리는 무례는 브라운 운동하는 입자처럼 넓게 무한정 퍼져 나간다. 악은 함께 대응이 가능하지만, 무례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무너진다.

이 책의 편집자도 무례했다. 그 무례를 서체의 크기로 범했다. 난 116쪽의 그 내용을 전화기로 찍어 화면을 확대하여 확인하다가 화가 났다. 나도 순간 무례한 사람이 될 뻔했다. 나는 짜증을 감출 수 없었다.

Tuesday, April 26, 2016

어쩌다 그 집 - P.F. Chang's

누가 뭐라고 해도 음식점은 밝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식이라는 것은 청결이 기본이 되어야 하고, 그 기본을 고객이 확인할 수 있는 첫번째 방법은 바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슨 스타일인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곳의 조명이 술집의 그것과 비슷하면 난 유쾌하지 못 하다. 조명의 두번째 중요성은 요리사가 정성들여 차려놓은 음식을 대하면서 느끼게 되는 시각적 즐거움의 최소 조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패스트푸드처럼 전자렌지로 조리가 완성되는 음식이라도 고객에게 보여주는 것을 신경쓰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적나라하게 보면 도저히 먹지 못할 음식이었던 걸까? 혹은… 그 곳은 술집이고 준비되는 음식은 안주인데 밥을 먹겠다고 무모한 도전을 내가 한 것인가? 일단 이 집은 나에게 정말 나쁜 인상으로 시작되었다.


P.F. Chang's. 미국식 중화요리집이다. 그들의 준비해 놓은 테이블 티슈에는 华馆(華館)이라고 인쇄하여 놓은 것을 봐서는 ‘중국집’이라고 부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미국식 중화요리에서 기대되는 맛은 일단, ‘달다’라는 것과 ‘짜다’라는 것이다. 세상에 튀긴 음식 다음으로 맛이 없기 힘든 음식은 달고 짠 음식이다. 이 집도 단맛과 짠맛을 일반대중이 거부하지 않을 수준까지 끌어올려 재료의 신선함과 요리의 정성을 가늠하기 어렵게 하였다. 조명도 그렇고, 조미도 그렇고, 뭔가 자신없어 보였다.


내가 먹은 음식은 ‘몽골리안 비프(mongolian beef)’와 이 집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알려진 ‘창스 치킨 레터스 랩(chang’s chiken lettuce wraps)’이었다. 일단 전자는 달고 짜서 쉽게 먹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밥이 같이 나왔는데, 그 양은 너무 적었다. 그리고 밥을 주문할 때 실소를 했는데, 차림표에 이렇게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흰밥(white rice) 또는 현미밥(brown rice)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웃기고 기가차서 불편한 마음을 이렇게 주문함으로써 달랬다. ‘백반으로 주세요’. 모든 차림을 영문 표기하고, 한글로 발음을 옮겨 놓은 것도 어이가 없는데, 처음 등장한 한국어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이 저러하여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치킨, 포크, 비프, 쉬림프, 콤보’ 한 번 더 웃자. 조금 더 심각하게 웃고 싶으면, 다음 문장이 좋겠다. ‘Chicken / Beef / Pork / Shirmp 주문 시, Egg Drop Soup 또는 Hot & Sour Soup이 제공되며…’.



음식점 이야기하며 차림표를 너무 따졌다.

후자, ‘창스 치킨 레터스 랩’은 짠 맛이 양상추로 감쇄가 되어서 비교적 먹을만했다. 이 먹을 만한 음식은 배를 채우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었고, 깊은 맛은 처음부터 없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무려 17,000원이었다. ‘몽골리안 비프’의 비극적인 맛이 15,000에 이루어진 것에 비하면 매우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혹은 먹을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차이는 2,000원에 이루어지는가?


우리 가까운 곳의 불고기 브라더스나 아웃백 하우스는 이곳과 비교가 된다. 딱 그렇게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은 이상한 우월감이 인테리어와 음식과 종업원과 심지어 가격표에서도 묻어 난다. 내가 이곳을 다시 찾는다면, 천장에 대패로 만든 듯 한 흥미로운 조명이 한 번 더 보고 싶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점 조명 치고는 먼지가 앉을 곳이 너무 많고 소재도 그랬지만, 침침한 조도 탓에 많은 고객들은 눈치 채지 못 할 것이다.

참, 청구서를 테이블로 가져다 주면서 고객 설문지가 같이 왔는데, 설문을 작성할 펜은 주지 않았다. 나도 안다, 그냥 형식적으로 그곳에 꽂혀 있는 것을 내가 괜히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Wednesday, March 23, 2016

어쩌다 그 집 - 카쯔야 かつや

일본의 NO.1 돈카츠의 한국분점들 중 하나이다. 한국법인 대표자도 일본인이다. 식당에 일하는 사람도 일본인이다; 나의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 준 직원도, 계산할 때 내 카드를 받은 직원도 일본인이었다. 주방에도 일본인이 있을 것만 같았다.

맛으로? 점포수로? 무엇 때문에 일본 NO.1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찾았던 점포의 맛은 기대에 정확히 부합하는 프렌차이즈의 맛이었다. 혹은, 그저그런 일본식 돈카츠 집들 중에 비교 우위에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근데, 돈까스가 맞는 건가? 돈카츠가 맞는 건가?


이 집은 일단 매우 청결하다. 개점한지 오래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집에서 흔하게 맡을 수 있는 말로 설명하기 매우 힘든 걸레 냄새가 식탁에서 나지 않았다. 식탁을 닦던 행주를 바닥을 닦는 걸레로도 쓰는 프렌차이즈 점포(난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가 있는 판국에 이 정도의 청결은 감사할 따름이다. 종업원들은 매우 친절하다. 한국어가 서툴지만, 영어만 잘 하는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더 정확히 구사하려고 애 쓰는 것은 확실했다. 주문하면서 기대했던 음식은 정확하게 내 식탁 위로 올려졌다. 그리고 이 점포에는 1인석이 있었는데, 매우 마음에 들었다.

같은 건물의 스타벅스에서 업무를 보다가 여기서 식사를 한다면 원격 근무자에게 좋은 조합이 되겠다. 내가 방문한 점포는 분당선 미금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Monday, March 21, 2016

어쩌다 그 집 - 비수구미

요즈음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나물을 주음식으로 차려놓는 집이다. 간판에는 ‘100% 국내산 산나물 정식 비수구미’라고 적혀 있다. 여기를 찾은 건 약간의 우연이었는데, 내 나이 즈음 된 사내가 한 번 꿈을 꿔 본다는 ‘내 집 짓기’를 나도 헛되이 꾸다가 허기져 만난 곳이다. 이 집이 위치한 고기리는 이런 저런 이유로 단독주택들이 전원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있다. 아무튼,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세상에 이 보다 맛있는 밥은 없었다. 물론, 엄청난 허기가 한 몫 했다는 것을 다음 방문 때 알게 되었다.

강원도 비수구미(이 이름은 지명이다) 즈음 어디에 본점이 있다고 들었고, 용인시 고기리(행정구역은 고기동이지만, 입에 붙은 건 고기리이기에 - 동네 사람들도 고기동이라고 흔히 말하지 않는다)에 있는 집은 분점이라고 한다. 가끔 종원원들 중 한 두 명 결원이 생기는지 어떤 날은 일하는 사람이 적어서 사장으로 보이는 분도 음식 나르는 일에 뛰어드는데 영 익숙치가 않아서 허둥대는 모양을 양해해 주어야 한다. 그 분 마음 쓰시는 것 보면 좋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 이 집의 특징은 식당 가운데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가 여러 개 모여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손을 닦는 용도의 수건도 아주 많이 마련되어 있다, 한 번 사용하고 옆에 모으는 통에 넣으면 된다. 이런 대중 음식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다. 하루 중 내가 가장 많은 하는 단일 행동이 손을 씻는 일인데 정말 세면대만 보아도 난 이 집을 세상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산나물들은 고유의 향이 사라지지 않도록 잘 마련되어 식탁 위에 올라온다. 그리고 각 산나물 마다 전분으로 만든 이쑤시개에 종이 인쇄된 작은 이름표를 깃발처럼 달아서 지금 젓가락이 가려는 그곳의 산나물 이름을 정확히 알려주는 특이함도 있다. 된장과 청국장 중간 어디 즈음에 위치한 맛을 가진 ‘청국장’도 함께 나오고 청어로 기억되는 구운 생선도 하나 따라 나온다. 구운 생선은 대체로 만족스럽지만, 이 생선 탓에 식탁에서 생선 비린내가 조금 나는 편이고, 공기 중에도 생선 구울 때 퍼져나가는 냄새가 틈틈이 박혀 있다. 기타 갖가지 반찬들이 함께 나오는데, 산나물 정식에 딱 들어맞는 조합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 어디에 가도 그런 일은 잘 없기에 이 집의 구성은 훌륭하다 말할 수 있다. 콘 샐러드가 안 나오는 게 어디인가!

산나물 정식의 가격은 (아마도) 1인분에 15,000원.
그리고 차림표에는 제육볶음부터 ‘산나물 정식’에 전혀 걸맞지 않은 어린이 돈까스까지 정말 다양한 차림이 준비되어 있음에 매우 놀랄 수도 있다. 난, 이 집을 여러 해 동안 여러 번 방문했지만, 언제나 산나물 정식이었다.

고기리를 관통하는 마을 버스를 (굳이) 타고 이 집을 찾아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자가 운전을 해서 갈 것이다. 주차장은 광활하여 걱정이 없는데 고기리 입구에서부터 이 집까지 오는 길이 참으로 험난하다. 평화롭던 고기리도 이젠 그렇지 않아서, 주말에는 아주 좁은 길에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자가운전자들이 서로 미친듯이 대가리를 들이미는 탓에 온 동네의 하나 밖에 없는 도로가 마비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다. 이런 꼴사나운 광경을 보고 싶지 않거나, 이런 상황이 되면 대가리 들이밀기를 무의식적으로 하는 운전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차라리 이른 점심을 목표로 얼른 가서 신속히 먹고 평화로운 동네가 지옥으로 변하기 전에 탈출하는 것이 좋겠다. 참, 평일에 가면 한가한 주부들의 여러 무리 사이에서 청각 피로를 이겨내며 맛을 음미해야 한다는 (높은)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Thursday, March 17, 2016

어쩌다 그 집 - 야마다야 山田家

다시 한 번 밝히지만, 난 맛집기행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분당 구미동 사무소 뒷편에 있는 일본식 면요리를 하는 '야마다야', 한자로는 '山田家'라고 적었더라. 우리식으로 하면, '김가네' 정도의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 집은 매우 우연히 들렸고, 그 이후로 꽤 오랫동안 - 기억이 맞다면 7년여 된 듯 하다 - 부정기적으로 가고 있다. 보통 평일 저녁에 가는 일이 많은데, 주말에는 기분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대기실에서 낯선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있어야 하는 불편이 있기에 피한다.

이 집은 정통일본식 사누키 우동을 지향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통일본식 사누키 우동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그저 입맛에 맞다는 생각에 방문하고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가격이 조금 비싸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워낙 식음료의 가격이 높아지다 보니 심리적 부담감은 덜하다. ‘수타’가 주는 면의 탄력은 사실 그렇게 느끼기 힘들다. 처음의 ‘괜찮네’라는 반응은 7년여가 지나면서 ‘나쁘지 않네’로 바뀌었고 각 차림의 특징도 조금씩 모호해진 것 같다. 혹은 그 시간 동안 맛을 느끼는 나의 신경들이 무뎌졌다.

단품 7,000 ~ 8,000원, 정식 10,000원 이상으로 기억하고 있다.

거의 모든 차림을 먹어봤지만, 자주 찾는 건 니꾸우동이다. 특별히 좋은 음식이거나 다른 차림에 비해 뛰어난 맛이라기 보다는 매번 기대에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대부분 맛이 일정하지 않다. 특히 국물은 그 차이가 있는 편이다. 이런 일정하지 못 함은 우동 보다는 ‘정식’ 메뉴에 함께 나오는 회초밥에서 더 크게 느낄 수가 있다. 어쩌면 내가 주로 방문하는 시각이 마감을 앞두고 있을 때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우리네 한국 사람들은 차를 만들든 프로그램을 만들든 음식을 만들든 기분에 따라서 시각에 따라서 그때 그때 주관적 상황에 따라서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증명하고 상호 양해하는 사회를 만들지 않았던가.

Tuesday, March 15, 2016

어쩌다 그 집 - 영광정메밀국수

수요미식회에서 소개되었다 하여 찾아가게 되었다. 가보니 지방민방부터 해서 공중파까지 이미 여러번 소개된 곳이더라. 그런만큼 사람취급 받지 못 하고 돈내고 밥먹어야 하는 상황은 당연한 것이며, 이상한 손님 무리에 휩쓸리면 기다리는 동안 · 먹는 동안 · 그곳을 빠져나오는 순간까지 귀가 피곤하고 눈이 아플 수도 있다. 이런 불편을 감안할 만큼 음식이 환상적이었나? 생각해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굳이 서너시간 운전까지 해서 그곳에 가볼 필요는 없다 생각했다. 가까운 동해안 어느 고장을 찾아 무심히 들렸다면 평가는 확연히 달라질 수 있겠다. 물론, 난 색소를 섞은 불량한 밀가루 면에 다대기를 집어 넣어 먹어도 엄지를 높이 들 수 있는 혀를 가지고 있고, 또 그런 음식에 매우 익숙해져 있기에 나의 평가는 공정하지 않을 것이다.


메밀국수는 7,000원으로 수도권에서 먹을 수 있는 그냥 그런 냉면에 비하면 가격대비 효율은 매우 높은 편이다. 수도권에서는 3,000원을 더 주고도 공장에서 생산한 고향의 맛만 잔뜩 느끼고 돌아서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집의 주요리는 메밀국수이지만, 사실 편육(20,000원)이 정말 맛있었다 기억되고, 메밀국수와 함께 나온 동치미가 꽤 괜찮았다.

Wednesday, February 10, 2016

레버넌트 The Revenant (2015)

당신을 완전히 압도하는 영상과 머리카락이 눈에 젖는 소리까지 전해주는 음향 시스템이 있다면, 이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불필요한 지루함과 어제 만났던 사람과의 대화를 혹은 극장에 들어서기 직전에 받았던 문자에 답하지 못 했던 사실 등을 일일이 기억해 내며 영화와 나와의 거리를 공연히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나는 영상에 압도되지도 못 했고, 이 영화를 지루해 하는, 옆자리 아저씨의 하품 소리를 주기적으로 들어야 했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나는 북미대륙의 야생이 피부와 닿는 듯 했고, 늙은 부족장의 상실감에 함께 아파했으며, 주인공의 분노에 같이 심장이 뛰었다.


200자 원고지 40매도 안 될 듯 한 주인공의 대사를 생각하면, 2시간 40분 남짓 한 시간을 박진감 있게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엠마누엘 루베즈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공이 컸다 생각한다.

Monday, February 01, 2016

IBM Power Systems - PowerVC/PowerVM NovaLink

IBM Power Systems는 UNIX 기기 중에 가장 완벽하게 OpenStack을 지원되는 서버 시스템이다. PowerVC라는 가상화 관리 도구에 OpenStack API를 지속적으로 갱신하여 포함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놀랍게도 OpenStack의 릴리즈에 맞추어 꾸준히 갱신되고 있다), 지난 12월에 발표된 PowerVM NovaLink는 마치 KVM이 OpenStack Nova API에 직접 연결되는 것과 같은 경험으로 PowerVM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PowerVC는 매우 뛰어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가지는 도구이다. UNIX 가상화 - 이 경우에는 PowerVM의 어려운 접근을 BUI(Browser User Interface)로 쉽게 운영할 수 있게 함은 물론이고, 여러 대의 Power Systems를 자원 풀(resource pool)로 간주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지원 목록에 등재된 스토리지 제품도 연결이 가능하고 FC 스위치 또한 그러한 연결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별도의 전문지식 없이 서버(가상화), 스토리지, FC 네트워크를 아울러 관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멋진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PowerVC는, 하지만, 기존의 IBM Power Systems의 운영방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 혹은 PowerVM과 Power Systems의 정해진 구성 및 운영방식으로 PowerVC 하위에 HMC(혹은 IVM)를 반드시 거느려야 하는 복잡함도 있었다. 엔터프라이즈급 서버 시스템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엔트리급에서는 불필요한 투자를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었다.

PowerVM NovaLink는 이러한 어려움을 일소하고 x86 플렛폼에서 일반적인 KVM과 같은 단계로 OpenStack에 연결되도록 IBM Power Systems를 변화시킨다. 물론, PowerVM NovaLink에서 PowerVC를 연결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IBM 하드웨어는 다양한 사용자의 운영방식을 존중하는 설계 철학이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IBM Power Systems를 보다 효율적이고 적극적으로 OpenStack과 연동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발전적인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아직 우리 데이터 센터에는 높은 수준의 가용성과 안정성을 추구하는 목적성에 부합되는 연산 플랫폼으로 UNIX/RISC 시스템만한 것은 없다. 여러가지 다양한 소프트웨어의 혁신적인 발전에 발맞추어 저급 저용량 저사양으로 저렴한 다수의 서버 시스템으로 새로운 방식의 데이터 센터를 꾸릴 수도 있겠지만, 엔터프라이즈급의 서비스의 요구에 부합하는 플랫폼으로써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러한 부분은 지금까지의 일시적인 제약일 수도 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가치의 구분일 수도 있다 -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이러한 숙제 앞에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컴퓨팅을 추구하는 계획에 있어, UNIX/RISC 시스템의 참여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숙제를 해결하는 가장 올바른 해법을 IBM은 Power Systems에서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다.

IBM은 OpenStack의 이사회에 참여하는 주요 회원사이다. 그리고 IBM은 수많은 오픈소프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적극 참여하고 있다.

Friday, January 29, 2016

OpenStack - Period - Legacy

클라우드 컴퓨팅. 프라이빗, 퍼플릭, 사스, 아이아스, 파스… 지겹게 듣고 있다. IT 인프라스트럭처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클라우드 컴퓨팅의 신기술로 세상을 선도하자고도 한다. 이런 저런 개념들이 모두 클라우드의 탈을 쓰고 소개가 되다보니 다이나믹 클라우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라는 말까지 들리어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이 혼란이 계속되다 보니 이제는 한결 익숙해지고 있다. 인지의 아이러니이랄까.

참, 하이브리드(Hybrid)의 원의는 아는가? 잡종이라는 뜻이다.

이런 클라우드 컴퓨팅의 난잡하여 잡종같은 개념들에서 겨우 빠져나온 IT 종사자들 앞에 놓인 한 단어는 아마도 오픈스택일 것이다. OpenStack. 美항공우주국(NASA)과 랙스페이스(Rackspace)가 주도하여 만들어낸 무엇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엇'은 어찌어찌 IaaS의 외로운 별이 되어 혼자 빛나게 되었다. 이제 ‘거의' 대안없는 프라이빗 클라우드 혹은 서비스 제공자의 클라우드 솔루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은 IT 인프라 종사자들은 이 오픈스택을 새로운 기술(new technology)로 지칭한다. IT 인프라를 다른 방식으로 관리하고 현업과 IT 부서 간의 효율적인 업무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것을 클라우드 컴퓨팅이라고 부르기도 적당하다. 그래서, 오픈스택으로 구현되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레거시(legacy)혹은 전통(traditional)적인 IT와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jump up)하는 첫번째 기술인가? 라는 질문에 절대 다수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말한다.

과연 그러한가?

오픈스택으로 구현된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을 설명할 때 가상화라는 개념을 빼놓을 수 없다. 그 가상화는 예전부터 우리 곁에 있어왔던 것이다. 물리 하드웨어, 하이퍼바이저, 가상 머신, 스토리지 가상화, 가상화된 네트워크 이 모든 것은 개별적으로 고유의 역할을 데이터센터에서 수행하고 있는 주요 컨퍼넌트이고, 이들의 쓰임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다만, 오픈스택은 API를 통하여 이들을 묶었을 뿐이다. 물론, 자동화(automation)와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을 가미했지만.

이런 시각에서 오픈스택은 종례 IT의 마지막 변형 혹은 진화라고 평가하고 싶다. 스마트폰의 꽃, 애플의 아이폰은 불현듯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것 같지만, Palm, Nokia 그리고 Research in Motion이 쌓아가고 있던 공든 탑을 새로운 시각에서 치장한 것 뿐이다. 즉, 변함없는 패러다임으로 같은 구조에 접근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폰은 지금까지 인류가 누리고 있는 손 안의 컴퓨터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블록 버스터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감독이라고 평가되어 왔지만, 어쩌면 지난 시대의 서사와 영화적 기법이 마지막으로 꽃을 피우게 한 감독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종례와 구분되는 새로운 IT 인프라는 어떤 모습일까? 마치 메인프레임의 시대에서 오픈 시스템의 시대로 전이되고, 연산을 수행하기 위해 터미널 앞에서 줄을 서는 시대에서 시분할 컨퓨팅의 시대로 전환되는 것 같은 그런 변화 말이다.

나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주목하고 있는 단체는 Cloud Native Computing Foundation이다. 이들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게 될지 혹은 그 시대를 앞당기는 촉매 역할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Thursday, January 28, 2016

Drink Me

그 직원은 내 컵이 선정적이라 말했고, 난 30초 동안 이유를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