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03, 2013

2013 올해의 책

2013년은 2012년보다 책을 많이 샀다(고 많이 읽은 건 아니다). World of Warcraft를 '잠정적'으로 그만두고, 교보문고 회원등급도 회복하게 되었으니,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여가시간은 WoW에서 책으로 옮겨졌다 말할 수 있겠다. 아, 아제로스는 안녕한지 - 정말 아제로스가 궁금하다.

2013년 두 권의 책이 나에게 '올 해의 책'이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르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광풍도 있었고, 존경하옵는, 움배르트 애코의 '프라하의 묘지'도 있었지만 - 참, 未生도 있었다 - 나에게 남는 책은 다음의 두 권이다.
  • 가장 재미있었던 책: 야구의 역사
  • 가장 머리 속에 오래 남았던 책: 피로 사회

야구의 역사: 응원 중에 외치는 'go!'를 '가라!'라고 번역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역자는 야구를 잘 모르거니와, 이 책의 바탕이 되는 매이저리그를 진지하게 본 적이 없다고 반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번역의 어색함과 야구 전문가가 아닌 관계로 빚어지는 안타까움 - 이 책은 대단히 흥미롭고, 눈을 쉽게 떼어낼 수가 없었던 책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고 글을 썼던 저자의 깊은 경험이 잘 들어났다. 그리고 내용에서 느껴지는 통쾌함도 그만의 유머도 구석구석 아름다운 장식이 되어 있었다.

'어색한 번역'이 동반된 이 책이 가장 재미있었던 책이 된 건, 한국어가 자국어인 작가들이 만들어낸 각종 '작품'들에게 실망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2013년은 그간 등한하였던 젊은 한국 작가들의 문학서를 찾아 보았지만, 읽고나서 '잘 봤다' 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은 없었다. 심지어 국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드는 작품마저 있었다.

여전히 '김수영'과 '김기림'이 나에게 최고이고,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만큼 마음을 빼앗은 책은 없었다.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자는 누구인가?'와 '영원한 제국'이후 글과 문장 사이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가는 속도에 가속을 일으킨 새로운 작가는 아직 발견할 수 없었다.

피로 사회: 그 동안 우리들이 느껴 왔던 -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봤던 것들을 무릎을 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게 되는 책이다 - 그리고 책을 읽는 시간보다 그 이후에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표되었던 글을 엮은 책이라, 동어 반복이 많고, 저자가 공부하고 가르치는 전문분야가 그 바탕이기에 뒤로 갈수록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느낌도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전달해 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쉽게 파악하고 싶다면, 36패이지까지만 읽어도 괜찮다. '신경성 폭력',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깊은 심심함'으로 충분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책 값에 대한 이야기도 있던데,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를 생각한다면, 이 128패이지짜리 문고판이 1만원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혹, 만약 누군가에게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을 '자랑'만 하고 싶다면, 한국어판 서문과 역자의 후기만 제대로 외워도 충분하다 - 이 책을 대하는 상대가 토론하고자 하는 의지나 역량이 부족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