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24, 2013

6 Days in Shanghai - Day 6

상해에서 여섯날을 보내면서 Searching for Sugar Man을 가장 많이 들었다. Sugar man은 줄곧 비가 온 이 도시와 어울렸고, 하루를 마칠 무렵 욕조에서 따라부른 Can’t Get Away는 도시가 준 묘한 스트레스를 잊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Radiohead의 음악을 가장 많이 들을 것이라는 예상은 이 도시의 요리가 역한 향을 뿜어내어 입조차 델 수 없는 상황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Bob Dylan이나 조영남의 목소리도 썩 괜찮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Doors는 와인 세 병을 비운 뒤에 좋을 것 같다.

화요일 오후부터 이상하던 날씨는 떠나는 순간까지 비와 적잖은 바람으로 채워지고 있다. 계속 날씨는 우울하다. 음식은 비싸도 입에 맞지 않았고, 만물과 만경이 청결하다 말할 수 없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오고 싶은가? 글세...


- 상해를 떠나는 공항에서 적은 노트를 옮김.

Sunday, June 23, 2013

6 Days in Shanghai - Day 5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청사를 들렸다. 근처 중공일대회지(中共一大會址)도 들렸다. 비슷한 시기의 역사적 찰라가 보존된 곳들이다. 상해임시정부청사보다 중공일대회지 건물 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더 흥미롭게 보내었다. 생각하고 느낀 게 많았다.


상해임시정부청사에서는 갑자기 밀려든 한국관광객들과 연변사투리 같은 안내원의 설명을 피해 좁고 불편했던 건물 속을 빠져나오듯 지나치게 되었다.

그 날 저녁 나의 행적을 간단히 적어본 노트.
田子坊을 坊子田으로 적어 놓았구나. 방자전...
상해의 거리는 시간과 문화의 뒤범벅이었다. 모던 아트가 눈 앞에 펼쳐지기도 했고, 옛 홍콩영화에서 봤던 뒷골목 풍경도 있었다. 세련된 사람들의 멋진 걸음걸이가 활기를 띄는 곳이 있기도 하지만, 삶의 무게에 내일 당장 쓰러질 것만 같은 사람들의 힘없는 혹은 무서운 눈초리도 있었다. 시간과 계층과 문화와 인간의 삶이 한 곳에서 섞여 부조화를 이루어 이것이 '조화'일 수도 있다고 변명하는 것 같았다.



인사동 거리 혹은 쌈지길과 비슷하다고 알려진 田子坊을 들렸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다른 인상을 얻게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중국 근현대 미술에 큰 관심이 없어 지나친 미술관 속에 어떤 감흥이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았다.









다만 거리를 구성하는 오래된 건물들의 모습은 건축에 아직 흥미가 남아 있는 나에게 볼만한 것들이었다. 이런, 오래되고 흥미로운 건물들은 상해 곳곳에 있어 이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의도하지 않게 하루 종일 걷게 되었다. 비도 왔고, 우산은 손잡이가 불편했으며 거리의 사람들과 잦은 부딛힘 · 불칠절 했던 지도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잘 잡히지 않았던 택시 - 택시가 잡힐 무렵 어디선가 뛰어온 현지인들에게 순서를 빼앗기는 일들까지 ... 날씨 탓인지 도시의 혼란 때문인지 방향감각과 거리감각은 잘 유지되지 못 했다. 덕분에 계속 걷게 되었다.


걷다가 신기하게 잘 정돈된 마을을 만나기도 했고, 한적한 거리를 찾기도 했다. 목적지는 계속 지나쳤고, 하지만, 돌아갈 마음이 없어서 그냥 직진을 선택했지만, 이래저래 마음도 몸도 불편했다.




상해에서 택시를 타야 하는데, 목적지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현지어를 알지 못 하여 난감하면,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좋은 선택일 수 있다. 그들은 '당연히' 북경어에 능통하며, 영어도 훌륭하다. 참, 이 곳 택시기사 중에 영어를 알아듣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스타벅스에서 파는 것들은 우리의 그것보다 다소 비싸다. 그렇다 상해의 전반적인 물가가 만만치 않다.


상해의 거리가 나에게 가치있다고 생각될 때는 이런 건물들이 아름답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의 시야에 들어왔을 때였다. 이런 건물들을 만나기 시작하면, 저 거리 끝 어디엔 가는 '와!'라고 말할만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 지사의 직원이 추천한 외탄(外灘)에 갔다. 와이탄이라고 하고, the Bund라고 하기도 한다.

상해에서 누구나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치를 제공한다. 황포강을 따라 오가는 유람선을 타도 좋을 것 같고, 오후 늦게 산책을 하면서 해가 지고 어두워져 야경으로 이어지는 것을 바라봐도 좋을 것이다. 청말(淸末) 외세의 지배에서 중국공산당 혁명 그리고 현재 중국의 무서운 경제발전까지의 자취가 이 곳에 나열되어 있었다.

외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어디 좋은 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사념에 잠기기 좋은 장소였지 않았을까?

상해 주요 중심지에는 애플매장이 하나씩 있다.
그리고 애장 안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빈다.

위 애플매장 근처의 버거킹.
맥도날드 점원들은 영어를 못 햇지만, 이 곳 매장 직원들은 유창했다.
그리고 매뉴에 모두 영어표기가 되어 있었다. 맥도날드는 그렇지 못 했다.
저녁은 버거킹의 치즈 와퍼로 해결했다. 정확히 내가 알고 있는 치즈 와퍼의 맛과 양이 동일했다. 현지 음식에 대한 도전은 그 동안 무모했고, 별 성과도 없었다. 낯선 도시를 가면 언제나 낯선 음식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는데, 상해에서는 완전히 반대 입장이 되어버렸다. 왜 그랬을까? 아무튼, 낯선 음식들은 항상 불편했으며 배를 채울만큼 먹지도 못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세 명 이상이 나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그 중 한 나이드신 분은 내가 상해사람처럼 생겼다고 껄껄 웃으셨다. 그 분은 제법 멋진 영어를 구사하면서 나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짧게 나누었다. 헤어지면서도 '당신은 이 곳 사람처럼 생겼어!' 라며 웃으며 가셨다.

일본을 갔을 때, 일본 사람이 나더러 일본사람 같다고 했다. 싱가폴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고, 상해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당연히 한국사람으로 인식된다. 곰곰히 생각해 봤다. 어쩌면 나의 생김새는 동양권에서 아주 보편적인 형상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덩치가 좀 클 뿐.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Saturday, June 08, 2013

6 Days in Shanghai - Day 4

매우 촘촘했던 일정이 마쳐질 무렵, 한국에서 온 다른 팀 사람에게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고, 그러기로 했다. 다국적 발음이 카오스처럼 느껴지는 영어의 숲에서 벗어나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느긋하고 (누군가의 추천에 따라) 입맛에 맞는 정찬을 즐기고 싶었다.


함께 가기로 한 사람을 3시간 가까이 기다리게 되었다.

기다림은 멋진 결과로 귀결되면 잊게 되는 법 – 인내할 수 있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도시의 반대편으로 갔다. 한 시간 남짓 탄 택시에서 내렸을 때 우리는 알게 되었다. 우리가 가려했던 그 음식점은 문을 닫았다는 것을. 하릴없이 – 그 지역을 전혀 모르니 – 다시 (미친 듯이 달려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 앞으로 돌아와 평범한 그리고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완벽하게 잠에 빠져들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워 TV 채널 돌리기를 하였다. 어매이징 래이스 아시아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채널, AXN에서 Hannibal이라는 TV 시리즈를 관심있게 보게 되었다.

이 날의 최대 수확. Red Dragon을 원작으로 하는 Hannibal이라는 TV 시리즈를 발견한 것.


Wednesday, June 05, 2013

6 Days in Shanghai - Day 3

촘촘했던 하루 일정을 마치고, 많은 나라에서 온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상해 현지에 살고 있는 동료의 추천에 따라 상해요리를 하는 곳에서 만찬을 받게 되었는데, 그 정성이 미안하게도 내 입에서 전혀 맞지 않았다. 특히 어떤 과일 요리는 마치 자동차 엔진오일을 머금는 듯한 맛이 느껴졌는데, 중화권 동료들은 최상의 맛이라고 즐겼다.

맥시코에서 온 한 동료의 姓은 '꽃'이라는 뜻이었고, 유비와 같은 성을 쓰는 ‘劉’는 생각과 마음이 넓어보여 친하게 지내고 싶어졌다. ‘劉’는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외모에 미혼이기도 했다. 서울 사무실을 방문하면 사랑의 작대기라도 놓아주리라 – 라고 웃으며 농담을 건냈다. 상해에 근무하는 한 매니저는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날 이후에도 나와 마주하면 아주 반갑게 인사해 주어서 상해에 있는 내내 고마웠다.

마흔명 남짓한 그 모임에서 한국에서 온 사람은 나 뿐이었다. 사람들은 내 이름보다 ‘Korean Guy’로 나를 기억했다. 아, 중국 친구들은 ‘첸’이라고 나를 불렀다. ‘陳/陈’은 만다린어로 ‘첸’이라고 발음된다고 한다.


음식이 맞지 않았던 점, 비싼 요리를 갹출해서 비용을 내었던 점 – 만 제외하면 대체로 만족스러웠던 저녁식사였다. 이 ‘대체로’ 만족스럽던 그 저녁식사는 당연하게도 공복을 해결하지 못 하여,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려 커피 한 잔과 배이글을 사왔다. 상해의 스타벅스 가격은 우리의 그것보다 조금 비쌌다.


밤은 일찍 깊어갔고, 비는 계속 내렸다.

Monday, June 03, 2013

6 Days in Shanghai - Day 2

오후 일정이 모두 취소되었다.
上海博物館 상해박물관으로 갔다.
이 또한 어떤 도시를 이해하는 데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후덥지근한 날씨는 오늘도 여전했다.
박물관에 입장하면서 라이터를 압수 당했고, 박물관은 학교보다 소란스러웠다.  가장 소란스러웠던 사람은 보안요원들, 삼삼오오 모여 소리지르듯 이야기했고, 어느 곳을 보든 시선 안에 한 명 이상 있었던 그들은 그 무리의 수만큼 이 박물관의 실질적인 지배자들이었다.



고대 토기부터 明靑時代 그리고 근대의 도자기 · 서예 · 회화 · 다민족의 복장과 장식품 · 가구 그리고 모든 역사의 화폐 · 玉공예에 이르기 까지 상당량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었다. 그 중 도자기 바닥에 기입된 문자와 장식으로 도자기의 생산 시대를 알 수 있다는 정보는 익히 알지 못 했던 부분이라 매우 관심있게 보기도 했다. 박물관의 각종 전시실 전시물 중에, 공교롭게도 가장 흥미로왔던 것은 東京 박물관 소장 서예가 靑山杉雨 (한자는 기억하는데, 일본식 읽기가 되지 않아 그냥 이렇게 적어둔다) 선생의 특별전이었다. 어린 시절 서예공부를 하게 된 기억(잊고 있었다)도 되살아 났고, 靑山杉雨 선생의 그 특별했던 필체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저녁의 거리는 휘황찬란했지만, 내가 아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불쾌한 냄새와 조금만 대로를 벗어나면 범죄가 있을 것 같은 길, 이상하고 억압된 눈빛으로 쓸데없이 강한척 하는 호객꾼들로 그 거리들은 좋은 기억을 남기지 못 했다.



어느 상점에서나 王은 판매자와 종사자였고, 가격은 만족스럽지 못 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어렵게 찾아간 Shanghai Information Center for Visitors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다지 친절하지 못 한’ 무료 지도 하나였고, 안내원은 영어에 익숙하지 않았다.



Shanghai Information Center for Visitors를 찾다가 여러가지를 발견했다.


역사적인 중국공산당 첫모임이 있었던 장소[中共一大會址]는 바로 Shanghai Information Center for Visitors 맞은 편에 있었다. 그 주위를 신천지(新天地)라 부르던데 제법 이름이 어울렸다. 19세기 혹은 지난 세기초를 엿보는 듯한 건물들이 아름답게 어깨를 기대고 있었고, 그 사이엔 유럽 어느 도시에서 가져온 것 같은 카페들이 있었다. 길 남쪽 막다른 곳에는 대형 쇼핑 센터가 자리했다.






참, 그곳에 이르는 대로(大路)에는 제법 큰 애플 스토어도 있었다.

6 Days in Shanghai - Day 1


가까운 김포공항에서 출발했다. 김포공항 국제선은 국내선과 다를 바 없었다. 혹은 더 산만해 보였다. 면세점이 있긴 했지만, 무어라 평가하기가 어렵다.

처음 타본 중국동방항공 여객기. 오래된 국내선 비행기보다 불편했다, 여러가지로. 기내식은 먹을 만한 것이 아니었고, 함께 타고 있던 승객들은 꽤나 수다스러웠지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었기에 일종의 백색 소음처럼 느껴졌다.

내린 공항의 상태는 김포공항보다 나빴다. 처음 들이키는 상해 공기도 상쾌하지 못 했다. 엄청난 교통체증을 뚫고 도착한 호텔은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같았다. 다만 너무 많은 종사자들이 입구부터 곳곳에 서 있어 당황스러웠다. (대부분 서 있기만 하거나 동료들끼리 수다에 열중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 곳 상해의 어느 곳을 가도 시설과 장소를 위해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우리의 곱절 이상은 되어 보였다.


시간이 있었다. 호텔 가까운 거리를 걷기로 했다. 조금 걸었다. 한 도시를 느끼는 방법 중에 걷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난 생각하고 있다. 걸으면서 상해의 도심 풍경에 잠시 즐거워했다.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장면들 속에 내가 있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왜곡되어 과거와 현재가 이음매 없이 연결되어 보였다. 걸으면서 느꼈던 이러한 재미는 이 도시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혼돈에 가까운 무질서로 피로가 되어버렸다.





요상한 눈빛을 가진 제복입은 사람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걸인들, 쓰레기 더미 앞에서 파는 음식, 차는 연신 경음기를 눌러댔고 신호를 지키는 행인도 차도 자전거도 공안(公安)도 없었다.

모두 거만하게 생기거나 기형의 모습을 한 자동차들. 작부(酌婦)처럼 입은 여자 아이들. 모두 삶에 찌든 것을 자랑하는 표정. 5월에 맛보는 장마철 습도.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공기의 무게 그리고 곤란한 호흡.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세 시간이었지만, 거리를 걷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숙소로 돌아왔다.
호텔 안은 최상급 미소와 서비스가 넘쳐 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