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03, 2013

2013 올해의 책

2013년은 2012년보다 책을 많이 샀다(고 많이 읽은 건 아니다). World of Warcraft를 '잠정적'으로 그만두고, 교보문고 회원등급도 회복하게 되었으니,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여가시간은 WoW에서 책으로 옮겨졌다 말할 수 있겠다. 아, 아제로스는 안녕한지 - 정말 아제로스가 궁금하다.

2013년 두 권의 책이 나에게 '올 해의 책'이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르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광풍도 있었고, 존경하옵는, 움배르트 애코의 '프라하의 묘지'도 있었지만 - 참, 未生도 있었다 - 나에게 남는 책은 다음의 두 권이다.
  • 가장 재미있었던 책: 야구의 역사
  • 가장 머리 속에 오래 남았던 책: 피로 사회

야구의 역사: 응원 중에 외치는 'go!'를 '가라!'라고 번역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역자는 야구를 잘 모르거니와, 이 책의 바탕이 되는 매이저리그를 진지하게 본 적이 없다고 반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번역의 어색함과 야구 전문가가 아닌 관계로 빚어지는 안타까움 - 이 책은 대단히 흥미롭고, 눈을 쉽게 떼어낼 수가 없었던 책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고 글을 썼던 저자의 깊은 경험이 잘 들어났다. 그리고 내용에서 느껴지는 통쾌함도 그만의 유머도 구석구석 아름다운 장식이 되어 있었다.

'어색한 번역'이 동반된 이 책이 가장 재미있었던 책이 된 건, 한국어가 자국어인 작가들이 만들어낸 각종 '작품'들에게 실망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2013년은 그간 등한하였던 젊은 한국 작가들의 문학서를 찾아 보았지만, 읽고나서 '잘 봤다' 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은 없었다. 심지어 국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드는 작품마저 있었다.

여전히 '김수영'과 '김기림'이 나에게 최고이고,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만큼 마음을 빼앗은 책은 없었다.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자는 누구인가?'와 '영원한 제국'이후 글과 문장 사이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가는 속도에 가속을 일으킨 새로운 작가는 아직 발견할 수 없었다.

피로 사회: 그 동안 우리들이 느껴 왔던 -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봤던 것들을 무릎을 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게 되는 책이다 - 그리고 책을 읽는 시간보다 그 이후에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표되었던 글을 엮은 책이라, 동어 반복이 많고, 저자가 공부하고 가르치는 전문분야가 그 바탕이기에 뒤로 갈수록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느낌도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전달해 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쉽게 파악하고 싶다면, 36패이지까지만 읽어도 괜찮다. '신경성 폭력',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깊은 심심함'으로 충분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책 값에 대한 이야기도 있던데,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를 생각한다면, 이 128패이지짜리 문고판이 1만원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혹, 만약 누군가에게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을 '자랑'만 하고 싶다면, 한국어판 서문과 역자의 후기만 제대로 외워도 충분하다 - 이 책을 대하는 상대가 토론하고자 하는 의지나 역량이 부족하다면.


Wednesday, November 27, 2013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찌할 수도 없는

한국근대 문학작품들을 지금의 사람들이 읽기 어렵다고 한글로 다 바꾸고 괄호 속에 한자와 정립되지 않았던 옛 한글과 일본어를 집어 넣은지 오래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이 사실을 안타까워 하여 바로 잡아줄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李箱 시선집을 찾을 수 없어서 잃어버렸다 결론을 짓고 이 책 저 책 살펴보는데, 모두 괄호 남발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고, 심지어 어떤 출판사의 것은 각주를 쉴 사이없이 달아 '문학서'를 '참고서'로 만들었더라.

몇 해 전 손떨리는 값을 치루고 산 헌책, '김기림 전집'이 나에게 있고, 활자로 책을 만들던 시절 출간된 김수영 전집을 아직 잘 간직하고 있다 것에 큰 안도를 하였다. 그리고 한 때 내 것이었지만 지금은 없는 옛 책들이 매우 그리워 졌다.

Sunday, November 17, 2013

Late Autumn 晩秋

내가 낯선 도시의 시민이 되고 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은 처음이었다. 내가 낯선 도시의 시민이 되어 함께 노래하고 나서, 이렇게 긴 가을도 처음이었다.


가을은 그간 여름이 밀려, 가을은 그간 겨울에 순서를 빼앗겨 - 이파리들은 낙엽이 되기 전에 얼어버렸고, 일몰과 일출의 느릿한 변화를 보여주지 못 하였다.


십수년 만에 가을은 모든 잎들이 색을 바꾸고 대지로 내려 앉을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바람도 발 맞추어 가벼웁게 붉고 노랗게 산들거렸다. 가을을 가을이라 말할 수 있는 날들이었다.





고마웠던 이 계절은 '만추'라는 시간의 이름을 기억해내게 하고 떠난다, 안녕.

Friday, November 15, 2013

VW Golf TDI - Day 594: 배기팁과 타이어백

사치스러운 하나와 실용적인 하나를 샀습니다. 아우토플라츠 분당센터에서.

사치스러운 하나는 그저 장식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1,000 Km 마다 점검해 달라는 메뉴얼의 지시까지 있는 거추장스러운 녀석이기도 합니다.

Volkswagen Golf, Tail Exhaust Silencer Trim

보통의 사람들은 '배기팁'이라고 하고, 센터의 사람들은 '머플러팁'이라고 하고, 박스를 보니 정식명칭은: tail exhaust silencer trim 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오로지 독어와 그림(잘 그렸습니다)으로만 작성된, 한 번 접어 네 바닥이 되는 초록빛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으며,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의 배기팁이 있었습니다. SW10 규격의 렌치가 필요하다고 적혀/그려져 있습니다 - 음, 어디 있어도 여러 개 있을터인데, 찾으면 달아야 겠습니다. (이 포스트가 완성되기 전에 참지 못 하고 이리저리 뒤적이며 찾아내었습니다)

그런데, 1,000 Km 마다 조여야 한다니... (25 Nm로: 친철도 하셔라)

Volkswagen, Tyre Bag

이 것은 나름 사치와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며칠 뒤면 여름용 타이어를 탈거하고 겨울용 타이어를 부착할 예정입니다. 작년에는 타이어점에 맡겼는데, 마음이 불편하지만 지적질하기엔 애매한 상처들이 휠들에게서 발견되어 - 그냥 발코니 구석 어디서 처박아 둘 생각으로 '이동 편리' 및 '쌓아놓았을 때 공장분위기 안 나게' 하기 위해 샀습니다.

Tyre bag이라고 명찰을 달고 있더군요. 각 4개가 서로다른 위치에 초록색 마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백에 집어넣을 타이어의 위치를 알려주는 마크입니다. 다 포장하면 손잡이로 쓸 수 있는 것도 있고, 풀어해치면 타이어를 굴려 위치한 다음 위로 감싸는 형식으로 포장할 수 있게 디자인 되어 있습니다. 저처럼 휠까지 함께 있는 타이어를 생각한다면 적절한 방식입니다.

아무래도 배기팁 설명서에 1,000 Km 마다 조임이 풀렸는지 살펴라는 문구는 마음에 걸립니다. 주유 2번할 시간도 안 되어서 골프의 엉덩이를 살펴야 한다는 말인데, 마음에 안 듭니다. 너트를 두개 더 달아서 보다 견고히 고정하는 방법도 있을터인데 - 역시 용접인가? 라는 등, 짧은 시간 생각을 하게 하는 숫자, 1,000 Km 였습니다.



원래는 아래 것으로 조이고 말면 그만이겠다 생각했지만, 차 속에 두고 틈틈히 - 뭐 타이어 공기주입구 막아두는 것 한 번씩 돌려 조여보듯 - 점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여기저기 찾아 보았지만, 딱 맞는 건 위 사진의 저것 뿐이었습니다.

이쁘고 적절한 꺽임과 표면 재질이 마치 장신구 같았던 랜치+스패너가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랜치+스패너는 여직원이 가방에 걸고 싶다고 달라고 조른 적도 있을 정도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역시 용접이 답인지 아직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공구는 어디를 갔을까요?

Friday, October 11, 2013

나의 얇은 수집벽은 가끔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음반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여기 그리고 저기 무질서하게 쌓여 있던 음반들을 꽂아 두기로 한 것이죠. 알코홀에 살짝 정신을 맡길 때 나오는 습관 중에 하나가 음반을 마구 뽑아내어 한 곡씩 듣고 아무 데나 놓아 두는 것인데, 뭐 꼭 그런 습관 때문만은 아니라 요즈음은 취하지 않아도 정신상태가 그리 온전한 편은 아니라서 '정리'와는 거리가 먼 생황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년여 동안 샀던 앨범들은 모두 CDP 주위에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는데, 이것들을 하나 둘씩 들어내어 새로운 장식장에 꽂으면서 몇 가지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지난 휴일 아라아트센터 ECM 전시회에서 기분 좋게 산 Return to Forever는 역시 예전에 사둔 게 있었습니다. 듣고 싶을 때마다 찾았지만, 있지 않아 '기억이 잘 못 된 것일까?'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역시 예전에 사둔 게 있었습니다.

the Moody Blues의 앨범도 같은 기억의 착란과 정리의 미흡으로 다시 사게 된 경우이고, 'O' 앨범은 출장 갈 때마다 공연보고 나오면서 한 장씩 사왔더랬습니다. (심지어 두 번째 산 앨범은 뜯기도 전에 예전에도 샀었다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이 밖에도 이런 경우는 숱하게 있어 왔는데요,



Led Zeppelin의 첫앨범과 Physical Graffiti는 상당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샀다는 것을 변색된 속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Ocean's Thirteen은 아마존에 주문해 놓은 사실을 잊어버리고 - 책사러 들어간 교보문고/핫트랙에서 아무런 의심없이 사왔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이렇게 중복된 앨범들은 주위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도 하고, 멀리 있는 고마운 분께 '혹시 이런 음악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보고 보내어 드리기도 했습니다. 위 사진들은 그럼에도 남은 것들입니다.

특별한 취향이 있어 수집벽을 키워 가는 건 아니지만, 팬으로서의 당연한 행동으로 여기며 '소장'의 기쁨을 누리려는 것인데, 어쩌면 이런 행위가 나의 기억력을 측정하는 방식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생각해 봤습니다.

참, 그리고, 이렇게 사게 된 DVD도 몇 장 있답니다.

Monday, October 07, 2013

ECM :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展

문득 세상은 어느 하나에 몰입한 사람이 변화시킨다는 생각을 했다. ECM, 어느 라디오에서 무심히 흘러나온 문장 속에서 발견한 친숙한 이름 그리고 '전시회'라는 단어. 운전 중이었고, 잊지 않으려 라디오를 끄고 계속 되뇌-이-었다. '꼭 가야지'.

나의 게으른 기억이 늦 가을 낙옆처럼 쉽게 먼지가 되려할 때, 동료의 추천 '좋아하실 거예요'으로 '아! 아직 못 가봤구나' 깨달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놓친 것들이 어디 하나 둘이랴.

그래서 '꼭 가야지' 다짐이 있었던 날로부터 (적어도) 한 달 뒤인 어느 휴일 아라아트센터에 ECM 전시회를 보러 - 들으러 - 갔다.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 展






많이 행복했고, 열 밤을 자고 난 뒤 아빠 손에 매달려 처음 동물원이라는 곳을 가게 된 아이처럼 큰 눈과 맑은 미소를 얻게 되었다. 설명하면 뭐 하랴, ECM 레이블에 한 번이라도 마음을 빼앗겨 보았다면 저기는 좋은 시간이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난 항상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항상 내 방에서 찾아내지 못 했던, Chick Corea의 Return to Forever도 살 수 있었어 흥분했으며, Sound and Silence 블루레이 디스크도 기쁜 마음에 사서 왔다.

한 사람의 열정과 몰입에서 완성되는 가치가 세상을 이렇게 바꾸기도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였다.

인사동을 인간 통조림으로 만든 예의없는 사람들의 거침없는 어깨 부딛힘도 용서할 수 있었고, 맛집이라고 찾아간 곳은 위생과 친절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 하는 사람들의 소굴이라는 것에도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고, 집에서 아라아트센터까지 왕복 다섯시간이 걸렸음에도 하루가 복되게 느껴진 건 ECM을 만날 수 있어서 였다.

Thursday, October 03, 2013

문장에 대한 옹졸한 나의 집착

(혹은 기성작가의 화가 날만큼 무신경한 문장 다듬기)

그간 한국 작가의 소설을 찾지도 않았다는 점을 교보문고를 들어서면서 알게 되었다. 매번 책을 사서 읽을 때 마다, '역자의 한국어 실력이 형편없어 이 모양'이라고 혀를 차는 대신 한국 작가의 책을 찾아 보기로 했다.

지난 여름,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개가 되었다는 기억으로 선택한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


하지만, 이야기가 시작된 후 책장을 몇 번 넘기고 덮어버리게 되었다.

  • '엄청난 볼티지의 전율'
  • '어머니는 마음을 쉽게 바꾸지 않는 순정파였다'
  • '그것은 오히려 류의 아버지가 사로잡힌 맹렬한 불꽃에 산소가 포화된 바람을 불어넣었다'

  • 볼티지가 뭔지 한 참 생각했다. 아! Voltage. 이 문장은 '볼티지의'를 지워도 좋다 = '엄청난 전율'. '엄청난 볼티지의 전율' 원문은 아무래도, '어둠의 다크니스' 같은 느낌이다.
  • '어머니는 순정파였다' 혹은 '어머니는 마음을 쉽게 바꾸는 사람이 아니었다'라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마음을 쉽게 바꾸지 않는 순정파'는 '부산역전앞'과 비슷해 보인다.
  • 마지막의 문장은 3형식으로 간추려 내거나, 다른 것으로 전체를 바꾸는 게 아떨까 생각했다. 같은 주격조사가 두 번 등장하는 문장은 그냥 지우개로 지우고 싶어지니까. 

  • '엄청난 볼티지의 전률', '어머니는 ... 씨니컬해져 있었다', '주말은 프리였다' - 외래어도 아닌 것을, 문체에 특정 뉘앙스를 묻어내려는 의도도 없이 '태연하게' 집어 넣는 건 읽는 고통을 더해 준다.

시작과 함께 걸려나오는 문장들. 난 이야기보다 문장에 더 신경쓰는 사람인가 보다. 그리고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너무 신뢰했다. 그래도 사기 전에 좀 뒤적거려 봤다면. 문장의 늪과 단어의 암초를 견디고 '류의 서사'까지 읽었다. 열한 쪽. 이 책은 당분간, 내 방 어느 곳에 놓아두기로 했다.


차라리, 구석 구석 어색한 번역이 있지만 '야구의 역사'가 더 좋은 문장을 가지고 있다. 문예서를 이긴 비문예 번역서라니. 祝!

Wednesday, October 02, 2013

Bruce Springsteen - Devils & Dust

넓은 사막에서 걸어나온 듯 온 몸에 모래다, 모자를 벗어 두어번 털어내면 조금은 가벼워 진 것 같지만, 사막이 나에게 남긴 냄새는 가시질 않는다. 언제나 나의 퇴근은 이러하다.

사막을 지나오면서 오아시스 따윈 기대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이 되면 끝이 있다는 희망, 그것이 위안이기 때문이다. 태양이 아무리 높이 떠도, 거센 바람 속에 모래가 촘촘히 있다 하여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비켜갈 것을 알기에, 오아시스 따윈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모래를 털어내고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시면, Bruce Springsteen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시동을 걸고 하루의 두 번째 러쉬아워를 겪을 때, Bruce Springsteen의 목소리를 들으면,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닌 거야'라고 나에게 말하기 쉬워진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계속 차를 몰며 집으로 향하면, Bruce Springsteen의 목소리를 따라하게 된다.

바람은 속도를 늦추고 하늘에서 비가 올 것 같지만, 나를 덮고 있는 모래는 쉽게 떠나지 않을 것 같다. 퇴근은 내일을 기대하기 보다 오늘도 지나갔음에 안도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나의 퇴근은 잘 못 되었다, 그래서 Bruce Springsteen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시월 October

누군가의 어제는 지나갔고, 그 계절도 기억 속에서나 존재하려고 사라졌으며, 그리하여 올해의 일월 이월 삼월 사월 오월 유월 칠월 팔월 구월이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가끔 뒷걸음치는 여름을 끌어다 놓는 심술도 부리고, 스스로를 완연하게 들어내기 전에 겨울을 불러내어 사라질 시간이라는 건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러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내년이 올 거라는 것도 다들 알고 있다.

그 곳의 가을하늘은 멍이든 채 웃고 있는 얼굴 같다.

Tuesday, August 27, 2013

언어의 정원 言の葉の庭 the Garden of Words



'언어의 정원'을 봤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원제가 '言の葉の庭'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언어의 정원'보다 멋진 제목을 붙힐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불편했습니다.
감독, 新海誠[신카이 마코토]를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기대치가 너무 높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열광했던, 新海만의 연출은 영화 후반부, 남자가 여자의 집을 나갈 때 현관이 닫히는 장면, 몇 초 뿐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등장 인물들의 대사가 자세하고 표면적이며 친절하다는 크나큰 단점(新海식이 아니기에)과, 이야기의 흐름이 방송국 신입 PD가 처녀작으로 연출한 단편 드라마같은, 식상하다기 보다는 관객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익숙한 구조였다는 점(더더욱 新海식이 아니기에)이 내가 실망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순간 그의 전작들을 머리 속에 나열하면 불편함과 실망감은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흘러올라가는 문자들을 보니, 큰 자본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더군요. 그 백색문자들은 이 영화에 실망한 나에게 '新海'식이 아닌 이유를 늘어놓으며 마치 변명이라도 하는 것 같아 더 불편했습니다. 달라진 작업방식과 환경이 고유의 色을 바래게 했다면, 新海는 더이상 '천재'라는 수식어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Sunday, August 18, 2013

집에서 만든 키위 무엇 Homemade Kiwi Something


  • 키위 4개: 8개 들이 1팩, 4,880원 /2 = 2,440원.
  • 우유 500ml 1팩 = 1,350원.
  • 2스푼 (세상에서 가장 싸다고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칠만큼 싼 꿀, 그래서 불가산 비용으로)
2,440 + 1,350 (비용산출 불가능 꿀 그리고 1분 미만 믹서기를 돌렸던 운동 에너지에 들인 전기요금-도 불가산 비용으로) = 3,790원.

서너명이 마실 수 있는 담백한 키위 쥬스가 만들어 진다.



칠레산 키위가 있었고, 무척 저렴했다. 사왔다. 먹으려고 했다, 너무 시었고 덜 익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티비 프로그램을 보니까, 한 출연자가 그랬다, '어머니께서 그랬어요, 모르면 비싼 거 사라고' 그 출연자는 그 말이 틀렸다고 했는데, 나의 오늘에겐 맞는 듯 했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냉장고에 있던 우유와 신맛을 없애려고 꿀을 조금 넣고 믹서기에 맡겼다. 뭐, 괜찮은 음료가 만들어 졌다.

믹서기는 만능이다, 가끔 주방의 축복이 아닐까 생각도 한다.

Monday, July 29, 2013

robert de niro - lost in translation


Lost in Translation이 기억났다.

그도 양복 상의에 집게를 달고 저 사진을 찍었을까?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고 이름 부쳤던 누군가는 지금 반성하고 있을까?
그 영화도 벌써 10년이 되었다는 걸 사람들이 알까?
아니, 그런 (아름다운) 영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Monday, June 24, 2013

6 Days in Shanghai - Day 6

상해에서 여섯날을 보내면서 Searching for Sugar Man을 가장 많이 들었다. Sugar man은 줄곧 비가 온 이 도시와 어울렸고, 하루를 마칠 무렵 욕조에서 따라부른 Can’t Get Away는 도시가 준 묘한 스트레스를 잊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Radiohead의 음악을 가장 많이 들을 것이라는 예상은 이 도시의 요리가 역한 향을 뿜어내어 입조차 델 수 없는 상황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Bob Dylan이나 조영남의 목소리도 썩 괜찮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Doors는 와인 세 병을 비운 뒤에 좋을 것 같다.

화요일 오후부터 이상하던 날씨는 떠나는 순간까지 비와 적잖은 바람으로 채워지고 있다. 계속 날씨는 우울하다. 음식은 비싸도 입에 맞지 않았고, 만물과 만경이 청결하다 말할 수 없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오고 싶은가? 글세...


- 상해를 떠나는 공항에서 적은 노트를 옮김.

Sunday, June 23, 2013

6 Days in Shanghai - Day 5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청사를 들렸다. 근처 중공일대회지(中共一大會址)도 들렸다. 비슷한 시기의 역사적 찰라가 보존된 곳들이다. 상해임시정부청사보다 중공일대회지 건물 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더 흥미롭게 보내었다. 생각하고 느낀 게 많았다.


상해임시정부청사에서는 갑자기 밀려든 한국관광객들과 연변사투리 같은 안내원의 설명을 피해 좁고 불편했던 건물 속을 빠져나오듯 지나치게 되었다.

그 날 저녁 나의 행적을 간단히 적어본 노트.
田子坊을 坊子田으로 적어 놓았구나. 방자전...
상해의 거리는 시간과 문화의 뒤범벅이었다. 모던 아트가 눈 앞에 펼쳐지기도 했고, 옛 홍콩영화에서 봤던 뒷골목 풍경도 있었다. 세련된 사람들의 멋진 걸음걸이가 활기를 띄는 곳이 있기도 하지만, 삶의 무게에 내일 당장 쓰러질 것만 같은 사람들의 힘없는 혹은 무서운 눈초리도 있었다. 시간과 계층과 문화와 인간의 삶이 한 곳에서 섞여 부조화를 이루어 이것이 '조화'일 수도 있다고 변명하는 것 같았다.



인사동 거리 혹은 쌈지길과 비슷하다고 알려진 田子坊을 들렸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다른 인상을 얻게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중국 근현대 미술에 큰 관심이 없어 지나친 미술관 속에 어떤 감흥이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았다.









다만 거리를 구성하는 오래된 건물들의 모습은 건축에 아직 흥미가 남아 있는 나에게 볼만한 것들이었다. 이런, 오래되고 흥미로운 건물들은 상해 곳곳에 있어 이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의도하지 않게 하루 종일 걷게 되었다. 비도 왔고, 우산은 손잡이가 불편했으며 거리의 사람들과 잦은 부딛힘 · 불칠절 했던 지도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잘 잡히지 않았던 택시 - 택시가 잡힐 무렵 어디선가 뛰어온 현지인들에게 순서를 빼앗기는 일들까지 ... 날씨 탓인지 도시의 혼란 때문인지 방향감각과 거리감각은 잘 유지되지 못 했다. 덕분에 계속 걷게 되었다.


걷다가 신기하게 잘 정돈된 마을을 만나기도 했고, 한적한 거리를 찾기도 했다. 목적지는 계속 지나쳤고, 하지만, 돌아갈 마음이 없어서 그냥 직진을 선택했지만, 이래저래 마음도 몸도 불편했다.




상해에서 택시를 타야 하는데, 목적지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현지어를 알지 못 하여 난감하면,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좋은 선택일 수 있다. 그들은 '당연히' 북경어에 능통하며, 영어도 훌륭하다. 참, 이 곳 택시기사 중에 영어를 알아듣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스타벅스에서 파는 것들은 우리의 그것보다 다소 비싸다. 그렇다 상해의 전반적인 물가가 만만치 않다.


상해의 거리가 나에게 가치있다고 생각될 때는 이런 건물들이 아름답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의 시야에 들어왔을 때였다. 이런 건물들을 만나기 시작하면, 저 거리 끝 어디엔 가는 '와!'라고 말할만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 지사의 직원이 추천한 외탄(外灘)에 갔다. 와이탄이라고 하고, the Bund라고 하기도 한다.

상해에서 누구나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치를 제공한다. 황포강을 따라 오가는 유람선을 타도 좋을 것 같고, 오후 늦게 산책을 하면서 해가 지고 어두워져 야경으로 이어지는 것을 바라봐도 좋을 것이다. 청말(淸末) 외세의 지배에서 중국공산당 혁명 그리고 현재 중국의 무서운 경제발전까지의 자취가 이 곳에 나열되어 있었다.

외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어디 좋은 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사념에 잠기기 좋은 장소였지 않았을까?

상해 주요 중심지에는 애플매장이 하나씩 있다.
그리고 애장 안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빈다.

위 애플매장 근처의 버거킹.
맥도날드 점원들은 영어를 못 햇지만, 이 곳 매장 직원들은 유창했다.
그리고 매뉴에 모두 영어표기가 되어 있었다. 맥도날드는 그렇지 못 했다.
저녁은 버거킹의 치즈 와퍼로 해결했다. 정확히 내가 알고 있는 치즈 와퍼의 맛과 양이 동일했다. 현지 음식에 대한 도전은 그 동안 무모했고, 별 성과도 없었다. 낯선 도시를 가면 언제나 낯선 음식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는데, 상해에서는 완전히 반대 입장이 되어버렸다. 왜 그랬을까? 아무튼, 낯선 음식들은 항상 불편했으며 배를 채울만큼 먹지도 못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세 명 이상이 나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그 중 한 나이드신 분은 내가 상해사람처럼 생겼다고 껄껄 웃으셨다. 그 분은 제법 멋진 영어를 구사하면서 나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짧게 나누었다. 헤어지면서도 '당신은 이 곳 사람처럼 생겼어!' 라며 웃으며 가셨다.

일본을 갔을 때, 일본 사람이 나더러 일본사람 같다고 했다. 싱가폴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고, 상해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당연히 한국사람으로 인식된다. 곰곰히 생각해 봤다. 어쩌면 나의 생김새는 동양권에서 아주 보편적인 형상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덩치가 좀 클 뿐.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