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30, 2012

VW Golf TDI - Day 30: 블랙박스


어떤 블로거의 포스트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블랙박스의 보급이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여러가지 사유가 나열되었지만, 아무래도 그 블로거가 꼽은 것은 사생활 침해이다.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유럽에는 범퍼 스크래치에 뒷목잡고 내리는 택시 기사 따위는 없겠지'.

며칠 전 비오는 밤 안개도 한 몫하는 상황에서 좁아지는 차선을 서로 배려하며 한 대씩 교차하여 두 차선을 한 차선으로 만들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 나도 앞차와 마찬가지로 옆의 한 대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 주고 가속패달을 밟았다 - 그 순간 내 뒤로 가야 마땅할 K5가 괴상한 엔진소리를 내며 쏜살 같이 앞차 뒤에 붙었다. 칼질 - 회를 뜨는 수준이었다. 난 급히 브래이크를 밟았다. 그 좁은 주행 공간에서 급히 K5가 들어가봐야 그 녀석도 감속해야 하니까, 완전 사고유발자. 순간적인 이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 다시 정상 속도로 가속, 나는 나의 감정상태를 K5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상향등을 깜빡였다. 그랬더니 급가속 중이던 K5 운전자 자신의 다리로 낼 수 있는 최대치의 힘으로 브래이크를 밟았다 - 나쁜 사람. 현대 기아차의 브래이크는 세상에서 최악의 브래이크 중에 하나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시차를 두고 브래이크를 밟은 나의 골프는 그 녀석을 추돌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분 동안 내 앞에서 벌어진 온갖 위협 운전. 마치 '제발 추돌만 해줘봐라 내가 널 잡아 먹을 터이니' 하는 상황이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도발에 응징하는 운전을 했겠지만, 끓어오르는 화를 참아내고 이 상황을 착실히 녹화하고 있는 블랙박스를 생각했다. 그 순간 만큼은 블랙박스가 나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K5를 엿먹일 수도 있겠다 - 라는 근거 약한 믿음으로 변했다. 얄팍한 위안도 얻었다. 위협운전도 신고를 통해 처벌 가능하다고 일간지에 났던 거 같던데...

한국에서는 블랙박스의 가치를 배가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차량 축전지에 블랙박스를 직접 연결하는 위험을 무시하고 주차시 '내 차' 주위를 감시하는 용도로 까지 진화하고 있다, 용감한 사람들. 각종 블랙박스 동호회 게시판에는 일상적으로 녹화된 영상을 마구 올려놓고 있으며 (함께 도로를 다녔던 많은 운전자들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내 주위 사람들도 도로 위 분쟁해결의 중심역할이 블랙백스라고 칭송하고 있다.

난 보험료를 할인해 준다는 사탕발림에 홀려 블랙박스를 장착했다  - 곰곰히 따져보니 연간 할인액보다 블랙박스의 가격이 몇십배 높다. 나의 사생활은 물론이고 도로 위 많은 사람들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는 이 도구는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도로 위 모든 사람들이 거짓을 행하거나 사리(私利)를 위해 남을 위해하려하지 않거나 공공도로(公共道路)를 써킷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블랙박스 따위는 보급되지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우리 조금 불쌍하게 살고 있다.

오늘도 시동을 키고 한 여성의 특징없는 목소리를 듣는다. '블랙박스 동작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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