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09, 2005

분홍신 the red shoes

난 영화에 몰입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어떤 장르나 주제의 영화든 그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아니, 다큐멘터리는 빼자. 아무튼, 영화를 맛나게 즐기기 위해서는 '몰입'이 전제 되지 않으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력을 해도 몰입하지 못한 영화가 몇 편 있었는데, 그 중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미안하다 그 때 성룡의 '턱시도'를 보자는 그대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이 목록의 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이 목록에 영화를 하나 더 추가한다.

한편 생각하면, 시간을 할애해서 이 글을 적고, 서버의 공간을 할당하는 행위 그리고, 메타 사이트에서 이 포스트를 목격하고 클릭하는 수고를 한 다음 이것을 읽는 노력을 하는 익명의 사람들의 노력도 그저 낭비일 수 있다. 사실 '남극일기' 정도였다면, 내가 이렇게 까지 불편함을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the red shoes

영화는 전체 스토리와 부과 스토리가 톱니바퀴 맞물린 듯 돌아가게 짜여져 있다. 역시 이것은 연출의 방식일 뿐, 사실 돌아가는 건 톱니바퀴가 아니라, 야바위꾼의 룰렛 같은 것이었다. 어디로 어떻게 전개될지 뻔히 알지만, 투자한 돈과 시간이 아까워 혹은, 설마 하는 마음에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중심 스토리는 뼈대를 이루다 말았고, 주변 스토리는 흔한 주말 연속극의 조연들이 주도하는 변두리 이야기 만큼 호흡이 맞지 않았다. 그저 DVD 본편의 영화와 의무감으로 제작한, 서플먼트(supplements)를 시간차로 섞어 보는 것과 다름이 없엇다.

이 영화의 절대적 실패는 관객의 반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분명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표방하였지만, 가장 다양한 계층이 모인다는 주말관객들이 놀라거나 공포에 떨며 내는 소리보다, 실소, 조소, 옆 사람과 잡담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난 가끔 영화가 지루해 지면, 과연 사람들도 그러할까? 하면서 극장 안을 둘러본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떠나버리면(잠시라도)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어서 힐끗 쳐다보는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한다. 혹은 그렇지 않다면, 동행자와 머리를 기우려 낮은 소리로 짧은 대화를 시도한다. 나의 관찰에 경험이 이번 영화에서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에 난 흐뭇해 할 수 있었다.

the red shoes

분홍신이 80년대나 90년대에 나왔으면 시리즈 물로 만들어 흥행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주장을 펴며 이 영화를 두둔하는 관객의 대화를 극장을 나오며 엿듣게 되었다. 난 그 관객에게 '애매부인' 시리즈가 그 시절에는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내가 비디오 대여점 주인이고, 손님이 만약 '분홍신' 과 '애마부인'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다면, 공짜로라도 '애마부인' 시리즈를 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만약 혹! 이 영화에 대해서 좋은 점을 꼽아주어라 나에게 요청한다면, 주연배우인 '김혜수'의 연기를 들고 싶다. 사실 다른 것은 언급할 수가 없다. 배우 김혜수의 연기는 나를 극장에 끝까지 앉혀 놓은 유일한 것이었다. 그녀의 연기는 기립박수는 모르겠지만, 나의 두 손바닥을 서슴없이 부딪히게 하며 칭찬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분홍신의 빈약한 모든 장치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돋보일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당신이 남는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기 위해 극장을 찾을 생각이라면, 스미스 부부(Mr. & Mrs. Smith),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 배트맨의 탄생(Batman Begins), 범죄도시(Sin City)가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에게 이 네 가지의 영화 중에 추천 순위를 말해 달라고 요청한다면, '범죄도시'를 제일 위에 올려 놓을 것이다.

the red shoes

* 영화가 다 끝나고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부분은?
"따른 개안습니다"
'딸은 괜찮습니다' 라고 발음해야 할 부분에서 단역으로 등장한 의사의 실소를 금치 못할 대사. 나도 혀가 짧은 편이다. 그 배우의 사소한 장애를 희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극적 긴장감을 유도해야할 부분에 이와 같은 대사가 그대로 쓰였다는 것에 난 웃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나 뿐만 아니었다. 이 부분에서 웃지 않았던 사람이 그 극장에 있었다면, 아마 졸고 있었을 것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